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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n 19. 2023

첫사랑 1

2002년 월드컵

   그냥 첫사랑 이야기가 해 보고 싶었다. 이상하게 우울하면 첫사랑 생각이 난다. 이것도 병인 것 같다.

   남편에게는 미안하다. 내가 그의 첫사랑이 아니어서. 남편도 내 첫사랑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긴 하다.

  남편의 첫사랑도 내가 아니겠지만 한 번도 자기 첫사랑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내가 첫사랑이라고 한다.  입 참 무겁다. 무거워. 17년을 같이 살았으면 이제 그냥 무슨 무용담처럼 이야기를 풀 수도 있으련만 남편은 늘 내가 첫사랑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다.  


  나는 광역시에서 나고 자랐다.

  2002년 6월 그날 내가 사는 곳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오늘처럼 햇살이 뜨겁고 나른한 날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 근처 커피숍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왠지 가벼웠다.

  지금 MZ세대들에겐 결혼이랑 거리가 좀 먼 28 나이. 우리 세대에겐 28이 결혼하기에 결코 이른 나이는 아니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두 해만 넘기면 서른이 되고 마음이 답답해져 오는 시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답답했다.

  우리 부모님은 전형적인 옛날 분이시다. 결혼을 시키는 것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최후 임무로 여기셨고, 28이 된 나를 걱정하셨다.

  사실 난 결혼이 크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공부를 더하고 싶었고 교사로서 관리자도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 해에 대학원도 입학했고 여기저기 일을 벌이고 멀티를 할 만큼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 나는 결혼까지 생각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를 결혼시키는 것이 인생 최대의 마지막 의무셨다.


 여기서 글이 잠깐 삼천포로 빠지겠다. 결혼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학문적으로 논할 만큼 똑똑지는 않아서 그냥 내 생각을 몇 자 적어본다.

가정을 이루어서 나라를 짊어질 후손을 생산한다.

생산 인구를 증가시켜 국가의 발전에 이바지한다.

세금을 낼 후손을 양성해 나라를 안정되게 한다.

인간은 외로움을 견디기 힘든 존재이니 내 벗을 만든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손주를 안겨 준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결혼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 건지. 어른들은 말하곤 했다. 이왕 사는 거 안 해 보는 것보단 결혼은 한 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해도 할 후회를 굳이 힘들여 결혼하고, 속된 말로 지지고 볶고 싸우며 삶을 영위해 나가야 되는 것인가?


  난 결혼보단 일이 더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성취하고 싶은 인간이었다. 그래서 이전에 선을 보거나 소개팅을 해도 항상 심드렁했다. 분명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괜찮은 남자들이 많았건만 나의 결혼에 대한 심드렁함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나한테 차이신 분이 많았다고나 할까?(아 어휘력의 한계다.) 그분들께는 정말 미안하다.

  경기도에서 (본인 말로는) 고속도로를 170을 밟아서 퇴근 후 왔다는 남자한테는

  "내일 친구랑 부산 가기로 되어 있는데요."

  - 내가 미친 게 분명하다. 이땐 정말 친구와의 약속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0.1프로의 거짓말도 안 섞인 정말이다. 바보다. 바보.


  당신과 사귀고 싶다고 한 캐나다인 영어 선생님한테는

  "NO~~"

  사실 뭐라 말했는지 기억 안 난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아득한 영어들에 나의 비천한 영어 실력으로는 의사 전달을 정확히 할 수 없어서 아주 당황했던 기억밖에는. 그분은 캐나다로 돌아가서 아버님 가업을 물려받고 잘 살고 계신다. 나에게 자기 집 사진, 차 사진, 엄마 사진, 애완동물 사진 온갖 걸 다 보여주는 데도 난 그분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무지렁이였기도 했다. 심지어 내 사진도 두 장 가지고 가셨다. 얼마 전 MSN 메신저로 연락이 돼서 캡처한 사진으로 돌려받았다. 원본은 보내주신다고 했는데 중간에 분실되었는지 받지 못했다.


  아이러브 스쿨을 통해 만난 6학년 동기, 반장이었던 그 녀석에겐

  "난 네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

  와 정말 못땐 나였다. 어떻게 저런 막장 같은 말을 쏟아낸단 말인가?

  

  이런 일화들을 생각하면 지금 나한테 벌어지는 상황들이 지난날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음으로 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할 때도 많다.

 그렇다고 내가 막 나가는 인간은 아니다. 어른들한테 예의 바르고 아랫사람 배려할 줄 알고 도를 지키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다. 여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자랐고 너무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남자란 존재를 대하는 데 미숙한 점이 많았던 탓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여중, 여고, 여자가 북적대는 교대까지. 여자 천국에서만 살았으니 내가 뭘 알겠는가?


  아무튼 인간이 크게 뜻을 두지 않는 일에는 심드렁할 수밖에 없고 마음이 동할 수 없는 게 이치이다. 스트레스는 엄청 받고 있지만 결혼에 큰 뜻이 없었기에 나무랄 데 없는 분들이 나로부터 그런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이다. 이 글을 볼 확률은 0.0000001퍼센트도 안 되겠지만 사과드리고 싶다. 아니 어쩜 그분들 모두 나란 인간이 기억에조차 없을 수도 있다. 그럼 다행이고.


 그랬던 나에게 첫사랑의 그 사람은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이야기가 너무 곁가지로 가버렸다.   눈이 아파서 오늘은 그만.  다음 편에 계속


  나는 요즘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재미로 산다. 아무것도 즐거운 게 없었다. 아들 때문에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그나마 학교 아이들로 위안받고 동료 교사랑 수다를 떨고 남편이랑 산책하는 정도로 우울을 떨치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약의 도움도 받고 있다. (약을 먹고 싶지 않지만 내 모든 일화를 다 아는 의사 선생님은 00 샘은 감당하실 일이 너무 많으니 뇌 영양제 먹는다고 생각하고 드십시오라고 하셨다.)


  글을 크게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전문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브런치에 글 쓸 때가 너무 행복하다. 소수지만 내 글을 읽어주는 분이 계셔서 너무 기쁘다.

   내 소소한 행복을 찾아서, 아들과는 별개로(아들은 늘 걱정거리다. 생각하면 우울하다.)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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