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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May 13. 2024

닥치고 그냥 살아

산만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하나를 하면 거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걸 하고 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걸 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생각을 끊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3월부터 지금까지 무슨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5월 들어서는 극심한 우울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다. 거의 매일을 울고 있었다. 나이 50에 울고 있는 내가 한심하지만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산만하게 이런저런 걸 하는 가운데 나의 해방일지를 다시 보았다.

우울한 주인공의 상태가 나랑 같은 거 같아서 그만 봐야지 하면서도 또 정주행이다.

극 중 염창희가 말한다.

그냥 살아. 닥치고 그냥 살아. 그냥 살아져.

이 주 전에 손에 잡히는 종이에 휘갈겨 놓은 말이다.


지난주는 우울이 극에 달했다. 눈물만 나고 화만 나고 남편에게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다. 그래도 직장에선 그러지 않으니 그나마 덜 우울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편안하지 못한 마음이 어디 가랴. 아이들이 당연히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고 꾸중도 더 늘었다. 내 마음이 편하지 못해서 하는 행동들을 돌아보고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되지 않았다.


3월 말에 김창옥 쇼를 보러 갔는데, 뭔가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우울한 게 아니라고 하는 말에 맞네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동의하지 않는다. 우울하지만 살고 싶어서 쇼핑을 하고 폭식을 하고 있었다.

살고 싶어 한다는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


터질 것 같은 폭탄을 가슴에 안고 사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냥 닥치고 그냥 살려고 한다. 닥치고 그냥 살면 살아질 것이다.


5월 10일 자로 큰아들은 학교밖 청소년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밖 방구석 청소년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ELS로 1억 7000을 잃었다. 아마 앞으로 더 잃게 될 것이다.

생각하면 다 내 탓이라 견디기가 힘들었다. 투자도 내가 잘못한 것이고 자식도 내가 잘못 키운 것이다. 선생들이 흔히 하는 말 <그 자식에 그 부모, 문제 자식에 문제 부모>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학교밖 청소년이 될 아들 대신 살아줄 수 없는데도 살아주고 싶은 건지, 자퇴 때문에 속상해서 요 며칠 더 그런 거 아니냐는 남편 말에 아니라고,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아니냐고 그것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쌓여 있는 장작 더미에 던져진 불씨가 아들의 자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은 아빠에게 화를 낸다. 내가 자퇴한 게 부끄럽냐고 큰 소리를 지른다.

부모로서 자퇴가 부끄러운 게 아니고 슬프고 가슴 아픈 것일 뿐인데, 밝은 미래를 만들어주지 못한 부모로서의 자책감이 밀려올 뿐인데, 아들은 부끄럽냐고 큰 소리를 낸다.


이런 아들이 사실 미울 때가 많다.

슬픈 부모 맘과 달리 아들은 방에서 뭐가 즐거운지 웃고 있다.

이런 모습도 밉다. 

오늘 닥치고 살라는 생각을 하며 아들 마음을 되짚어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뀐다.

저인들 중졸인 자기 상황이, 미래가 안 보이는 18 상황이, 2년 뒤면 성년이 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 비록 1프로일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아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좀 지켜볼 줄도 알아야 되는데 속 좁은 엄마는 슬프면서도 나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그저 산만하게 이것도 저것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래... 그냥 닥치고 살 일이다.


닥치고 운동도 하고.

닥치고 공부도 하고.

닥치고 살림도 살고.

닥치고 웃기도 하고.

닥치고 행복해하고.

그냥 닥치고 살 일이다.

그러면 살아질 것이다.


친구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동료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브런치가 무슨 대나무 숲인양 떠들고 있다.

대나무숲에서 떠든 말도 결국 온 천지에 퍼졌건만. 브런치는 대나무 숲도 아닌 공개된 공간이건만.

하지만 대나무 숲에라도 떠들어야 살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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