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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향기 Jun 30. 2023

첫사랑 3

  소심하고 낯선 사람 앞에서 말도 잘 못하던 내가 그를 따라나섰다.

  고향의 000 거리는 온갖 차량과 태극기, 들떠도 너무 들뜬 사람들로 난리다. 차가 움직일 수가 없다. 열린 창문 사이로 누나 이뻐요 외쳐대는 사람까지 있다.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그야말로 경기 결과에 온 대한민국이 들떠 있던 날이었다.

  친구들은 5,6명이나 나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사를 나누고 다들 놀란다.

  "오늘 만났다고요?"


  무슨 용감함이었던지 모르겠다. 그냥 첫눈에 반한 거라는 상투적인 말밖에는 딱히 다른 표현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그 사람의 뭐가 좋았던 걸까? 그냥 좋았다.

  가끔 남편에게 묻곤 한다.

  "당신은 내가 뭐가 그리도 좋아? 좋아하는 이유가 뭐야?"

  "그냥 좋지. 이유가 어딨어. 그냥 좋아."

  난 늘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한다. 그냥 좋은 게 어디 있냐고. 내가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에 큰 키에 그럭저럭 괜찮은 인물에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서 그런 거 아니냐고.

  남편한테는 그러면서 누가 나한테 첫사랑이 왜 좋았냐고 묻는다면 그냥 좋았다고 할 것이다.

  

  그 만남 이후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첫 만남 이후 그 사람이 내 고향으로 교육을 오게 되었고 장거리에도 불구하고 잦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 그 사람은 아버지를 만났다. 흡족해하는 아버지. 그냥 우리는 결혼이 확정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은 메일에 앞으로 떨어져서 살아야 되는데 어떡하냐고 걱정을 했다. (카톡이 없던 시절이고 싸이월드가 유행하던 시절이고 친구들과도 메일을 주고받던 시절이었으니까.)

  대학원 첫 학기가 막 끝난 시점이었고 최소한 대학원 졸업을 하려면 5학기(교대 야간제 대학원은 5학기가 필수다)는 보내야 되니까. 그냥 주말부부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둘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잘난 체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착한 사람이었다. 순한 사람이었다. 목소리가 청명한 사람이었다.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보통의 연인처럼 시간을 보냈다. 고향집 앞에 그 사람이 졸업한 과학고등학교가 있어서 뒷산을 산책하며 이야기도 나누었다. 계곡물에서 내 발도 씻어주던 그였다. 그냥 보통의 연인들처럼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그 사람 종손이란다. 아버지도 지금 암에 걸려 아프시대."

  아버지는 딸이 종손집에 가서 고생할까 봐 걱정을 하신다. 소심함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친 나는 그때부터 걱정을 안고 산다. 아버지는 딸이 종손집에서 수많은 차례와 제사를 헤쳐나가지 못할 거라 생각하신다. 아니 그러길 바라지 않으신다.

   

 그 사람은 공부를 하고 싶어 했다. 회사를 관두고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허락을 했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인가. 그때부터 온갖 걱정이 밀려온다. 대학원 졸업을 해야 되고 떨어져 살아야 되고 혼자 돈을 벌어야 되고 종갓집 며느리가 되어야 된다.

 신경이 예민해졌다. 내 걱정을 그 사람이 납득해 주길 바라며 투덜거린다. 그 사람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하고 싶은 말을 다한다. 결혼을 의심해 본 적이 없지만 그냥 걱정을 말하면 그 사람이 다 받아줄 거라 생각했다.

  그 사람 고향에 놀러 갔을 때도 그 사람이 집에 가자는 걸 거절했다. 그 말이 그 사람이 날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소개해 주기 위한 단계라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저 그날 입은 민소매 의상이 신경 쓰이고 아무런 준비도 않게 급작스럽게 꺼낸 이야기가 당황스러웠다. 나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지혜롭지 못했다. 28의 나는 겨우 그런 사람이었다.

 

  종손이라는 역할이 결국 자기 발목을 잡을 거란 걸 알았다고 그 사람이 말한다. 상대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우선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냥 좋은데도 내 걱정만 한가득이었다.

 

 갈수록 다툼이 반복되었다. 우리 집에 인사를 온 날 아버지는 종손 이야기를 꺼내신다. 전날 전화로 다투고  사람이 집 앞에 와서 머리를 쓰다듬을 때 헤어지게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 전날 싸운 건 다 생각나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이 마음을 다 녹이는 걸. 그 사람은 사랑한단 말도 좋아한단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쓰다듬어 주는 손길 하나, 나를 보며 웃어주는 표정 하나, 서울에 놀러갔을 때 뒤에서 반갑게 목을 감아주던 행동 그런 게 모두 사랑이었다. 그냥 표정과 눈빛만으로 난 그 사람의 사랑을 느꼈다.


  그런 사람과 결국 헤어지는 줄도 모르게 헤어졌다. 28이 되도록 시외버스 한 번 혼자 타보지 않았던 내가 그 사람 고향까지 찾아갔지만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무엇에 화가 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마지막 만남을 하던 날 그도 나도 쓸데없는 말들로 변죽만 울릴 뿐 왜 헤어지는 건지 왜 헤어져야 되는지 몰랐다.


 지금도 모른다. 종손 이야기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건지. 우리 아버지의 무슨 말이 그를 힘들게 한 건지. 아니면 예민하게 굴었던 내가 싫었던 건지. 나에겐 사랑이었지만 그에겐 사랑이 아니었던 건지도. 하나도 모른다. 정답은 모른다.


  한동안 그 사람의 고향인 00도 갈 수가 없었고, 2002년 월드컵 이야기가 나오면 텔레비전 채널을 돌렸다. 친정에 가면 그 사람이 다녔던 과고 앞을 매번 지나가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 사람과 같이 갔던 장소에 남편이랑 가는 것도 싫었다.


  그때의 나와 그렇게 살아온 나를 후회한다. 다가오지 않은 날들에 대한 걱정은 왜 그리 많은 건지. 해 보지도 않은 일을 왜 어렵다고 생각하는 건지. 왜 그 나이에 부모의 말에 인생을 담보 잡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한 건지. 지나간 일들을 왜 깨끗이 잊어버리지 못하는 건지.


 그리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결국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떠났을 거라고.

 지금 이 순간 눈물이 난다. 흐린 날이 눈물을 더 보태는 거 같다.

 약을 내 임의대로 중단했는데 또 털어 넣는다.

  

 마음의 방이 하나여야 되는데, 아들을 위한 마음의 방만으로도 벅찬데 이제 첫사랑은 정말 떠나보내야겠다.



  첫사랑 이야기를 끝맺고 싶었는데 서랍 속에서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될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될지 뭐 하러 이걸 시작한 건지 온갖 생각이 괴롭혔습니다. 나란 인간과 나의 우울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시작된 첫사랑 이야기가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쓰다 말고 쓰다 말고 반복하다 오늘은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늘은 흐리지도 않은데 눈물이 납니다. 이번 주는 눈물이 자꾸 나네요. 브런치를 시작하고 한동안 먹지 않았던 약을 어제오늘 다시 먹습니다.


  첫사랑의 싸이월드를 통해서 결혼하게 된다는 걸 헤어지고 1년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그 사람을 떠나보내지 못했죠. 급하게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고 상견례를 했지만 깨졌습니다. 그 뒤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요.

  헤어지는 것 같지도 않게 헤어지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 사람 고향도 가고 메일도 보내봤습니다. 헤어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 뒤 간간히 너무 힘들 때 일 년에 한두 번 메일을 보내곤 했습니다. 전화는 할 수 없었습니다. 숫자나 사람 이름 기억을 잘하는데도 이상하게 지워버린 그 사람의 번호는 그렇게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충격이 너무 심했던 건지. 인연이 아니라서 그런 건지.

 

  메일을 간간히 보낼 수 있었던 건 그 사람이 절대 읽지 않을 거란 걸 헤어질 때 알았으니까요. 마치 일기를 쓰듯 브런치 서랍에 글을 남기듯 그렇게 메일을 간간히 보냈습니다.


  2020년 겨울 그 사람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잘 들어오지 않는 메일인데 하마터면 쓰레기통에 들어갈 뻔했다고. 다행이라고. 너무 반가웠다고. 우리 처음 만나던 날 기억나냐고. 언제나 그때처럼 해맑은 웃음 가진 네가 되길 바란다고.

  20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뜻하지 않은 연락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결국 공부를 하지 않았더군요. 전 그 사람의 공부 이야기 때문에 예민해졌는대요. 시대 흐름상 종손이라도 제사는 아마 거의 다 없앴을 겁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왜 하필 아들이 한바탕 나를 울린 날 그 메일을 읽게 되었는지도. 왜 하필 그날이 남편의 생일이었는지도.

 인생은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불행을 맞닥뜨리고 뜻하지 않았던 행운이 오기도 하죠. 행운인지 불행인지 규정짓기도 힘든 메일입니다. 그 메일을 수십 번 들여다봐도 그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28.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인생의 결정도 스스로 내리지 못한 자신이 후회될 뿐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건지 알지도 못하고 눈앞의 걱정에만 매몰되는 모습도요. 그리고 과거를 쿨하게 떨치는 못하는 모습도요. 지금의 저는 그렇지 않은 건지, 그것도 의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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