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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몸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by 초록해

오랜만에 느끼는 편안함이다. 그 편안함 속에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어느 정도 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주는 그 편안함을 느끼고자 바닥에 몸을 붙였다. 몸에 텐션이 떨어지면 그 텐션을 끌어올리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5년 전과 달리, 요즘은 텐션을 무리하게 올리고 싶지 않다. 언젠간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또 올라갈 텐션이니까.




재즈에 몸을 맡기면,

나도 모르게 와인이 당긴다.


재즈와 와인은 뭔지 모르게 조화롭게 보인다. 재즈의 느린 템포와 와인의 향이 잘 어울린다. 그래서 그럴까. 집 주변의 와인바에 가면 그렇게도 재즈를 틀어준다. 제목도 모르는 재즈 음악을 들으면 순간 부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든다. 머릿속 저 끝에 해야 할 일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재즈 선율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와인에 손이 간다.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 속, 재즈는 나의 하루를 잠시나마 천천히 흘러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재즈에는 백색 조명 보단 황색조명이 더 어울린다. 황색 조명이 좀 더 나를 편안하게 해 준다. 황색 조명, 적당한 재즈 음악의 볼륨, 그리고 와인 한잔이면 오늘도 무사히 보내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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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도

빛이 잘 드는 집이었구나.


하루 3끼를 집에서 다 해결하는 게 이렇게 힘든 줄은 알았지만, 오랜만에 다시 해보니 하루 3끼를 집에서 해 먹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낀다. '2인 X 3끼' 인데도 이런데, 나중에라도 인원수가 늘어나면 얼마나 더 힘이 들까 싶다. 밥 먹고 치우고, 밥 먹고 치우는 게 하루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로 부상한다.


그렇게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베란다를 바라보면 졸음이 쏟아진다.

그렇게 나는 베란다 앞 바닥에 자연스럽게 눕는다. 집이 남서향이다 보니 늦은 오후에 해가 더 잘 든다. 오후 2시에 누운 나는 10분만 잠을 자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알람을 해놓지도 않은 채로.


그렇게 베란다에 가까운 바닥에 앉아 있던 나는, 해가 집안에 들어오면서 점점 집 안쪽으로 몸을 이동시킨다. 10분만 자기로 했던 나의 다짐은 벌써 집 대문으로 향했다. 눈을 떠보니 오후 4시, 나는 베란다와 거리를 꽤 둔 곳에 몸을 위치시켰다. 눈을 뜨고 나니 아메리카노 한잔이 먹고 싶다. 내가 내리는 커피가 아닌 누군가가 내려주는 커피 말이다.


"자기야, 커피 사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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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걷다 보니,

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커피를 사러 동반자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반팔, 반바지, 샌들을 입고 5분 정도 거리를 걷고 나니, 가디건이 생각난다. 해가 쨍쨍 인데도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달달한 것을 몸에 넣을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했다. 케이크를 식사하듯이 1분 사이에 해치웠다. 그리고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배고프다, 그치?"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는 각자의 때가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20대, 스스로에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나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마냥 몸이 시키는 것을 하기엔 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몸이 시키는 대로 살기가 쉽진 않았다. (뭐 그렇다고 지금 그 불안감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서인지, 때론 몸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당분간 몸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자기야. 몸이 시키는 대로 저녁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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