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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반차를 쓰고 갤러리로 향했다.

by 초록해

반복된 삶 속에

나에게 여유를 주는 방법


"자기야 이번 주 금요일 오후에 반차 내고 갤러리 갈래?"

"갑자기? 반차 낼 수 있어?"

"응 내야겠어. 나를 위해서라도."


1월의 중순, 2022년 새해가 밝았다는 것도 까먹을 정도로 회사에 새롭게 적응하느라 2주가 2달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1/1일부 인사이동으로 인해 변경된 팀원들, 또 누구보다 열심히 새로운 사람들과 잘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 좋게 웃고 있지만, 상대방을 맞추려고 노력하다 보니 엄청난 피로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누군가에게 쫓기 듯한 삶이 아닌 나 자신에게 여유를 주고 싶어, 반차를 냈고 우리 부부는 갤러리로 향했다.


막상 반차를 내고 나오려고 하다 보니, 오전 업무시간이 너무 빠듯하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업무를 마무리한 후 회사를 나오니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집에 와서 우리 부부는 서둘러 갤러리로 향했다. 항상 모든 사람들이 쉬는 주말에만 갤러리를 갔던 터라, 사람이 붐비지 않는 평일의 갤러리는 우리에게 마음의 안정감을 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온전히 작품을 즐길 수 있었다.


KakaoTalk_20220114_224119071_15.jpg 황도유 작가님 <서른-세 송이>




작품은 사진이 아닌,

실제로 봐야 한다.


"관장님~ 작가님 작품 리스트를 받아 볼 수 있을까요?"

"네. 해당 작가님은 리스트로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꼭 시간 되실 때 방문하셔서 작품 전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네. 꼭 시간 내서 방문하겠습니다!"


요새는 전시회나 갤러리 개인전과 관련된 자료를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상에서 무한히 검색해 볼 수 있다. 작가님의 인스타 계정 혹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고 올린 후기 글, 카페 내 개인전 안내 글들을 통해서 말이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전시를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상황일 때에는 미리 전시회를 다녀온 사람들이 찍어서 올린 후기 글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후기 글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작품은 사진이 아닌 실제로 봐야 한다. 사람들이 찍는 사진은 그 공간의 조명과 개인의 사진기기의 필터 등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왜곡된다. 그리고 우리는 작품을 실제로 보기도 전에, 왜곡된 이미지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을 온전히 즐기고 싶다면, 작품을 실제로 보기를 추천한다. 각 작품마다, 작가가 사용한 재료를 알 수는 있지만 사진만으로는 그 모든 질감과 분위기를 느끼기엔 역부족이다. SNS를 보고 실제로 갤러리에 가서 실망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인데 현장에서 보고 반해버려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던 작품들도 있었다.


KakaoTalk_20220114_224119071_06.jpg 황도유 작가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매년 보고 싶은

작가님이 생겼다.


우린 김리아갤러리에서 전시중인 황도유 작가님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서른-세 송이> 전을 보며, "황도유 작가님 작품은 실제로 현장에서 보셔야 합니다."라고 말해주셨던 관장님의 말씀이 온전히 이해가 갔다. 대부분 작가님들의 작품은 작업 단계의 여러 겹의 물감층의 흔적들은 거의 사라지고 마지막 붓질이 관객들에게 보인다. 하지만 황도유 작가님의 작품은 달랐다. 완성된 작품에는 최초의 스케치부터 마지막 물감층까지 중첩되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그런 희미하게 보이는 최초의 스케치가 너무 세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작가님의 작품을 보며 작품을 임하는 작가님의 솔직함이 느껴졌다.


작가님의 작품을 보며 한 공간에 붓을 덧칠한 느낌은 보이지 않았다. 특히 '서른-세 송이' 작품들은 손이 지닌 불완전한 기능이 오히려 회화적일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하시며, 가능한 붓질의 횟수를 줄이고 작업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붓질의 터치를 보니 작가님의 자신감이 느껴졌고, 내년의 작가님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반려자는 <서른-세 송이> 전시에 푹 빠졌다. 평소 인물에 관심이 많은 나는 앨리스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고, 반려자는 작가님이 구현해놓은 터치감 속 풍경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황도유 작가님의 다음 전시를 꼭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KakaoTalk_20220114_224119071_18.jpg 황도유 작가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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