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타이레놀을 달고 살았다. 순간 머리에서 열이 나서 타이레놀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머리에 열을 체크하려고 이마에 손을 자주 가져다 댔더니 나도 모르는 새 왕 뾰루지가 나 있었다. 그러다 진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코로나19는 아닐까 순간 겁이 났다.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내가 아픈 것보다 더 싫다. 열이 나는 건지, 내가 화가 난 건지 분간이 안가 다시 타이레놀을 먹었다. 시간이 지나자 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것도 다 사라졌다.
상대방의 목소리만 들어도 머리가 너무 아팠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일하고 싶을 정도다. 그 사람의 말이 귀에 박혀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출근 시간 30분 전에 온 나 자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분명 아침에 할 일을 정리하러 왔는데, 빌런은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쏟아내며 동의를 구한다. 내가 감정적으로 대응해주지 않으면 나를 사회성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그렇게 나는 출근 1시간도 되지 않아 빌런에게 내 에너지를 다 빼앗긴다. 빌런은 대단하다.
빌런은 나에게 뭐라도 하나 더 주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1을 보고하면 나에게 3을 알려주려고 한다. 오전 8시 빌런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오전 10시, 다른 1을 내가 보고하러 가면 빌런은 또 나에게 3을 알려준다. 오전 11시, 나는 또 보고를 하러 갔다. 내가 0.5를 줘도 그는 나에게 3을 알려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나면 나는 빌런에게 3밖에 주지 않았는데, 그는 나에게 30을 준다. 나는 빌런 앞 고개를 끄덕이는 꼭두각시가 된다. 처음부터 꼭두각시가 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움직이는 인형이었지만, 스스로 인형의 등 뒤 배터리를 자진해서 빼버렸다. 그렇게 빌런은 나의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빼먹는다. 빌런은 대단하다. 매일을 지치지도 않고 나를 포함한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의 에너지를 빼먹는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너네가 자신의 에너지를 빼먹는다고 말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빌런과 함께 하는 공간의 공기는 무겁다. 그 공기 속에 있는 나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다. 타이레놀이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잠시나마 타이레놀과 이별하기 위해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나는 종이 치자마자 그곳을 빠져나왔다. 빌런과의 잠시나마의 이별이었다. 집에 도착했다. '카톡!' 빌런은 수많은 회사 그룹 카톡방에서 활동한다. 빌런은 지치지 않는 호기심쟁이 고등학생이다. 분명 빌런을 어딘가에서 봤다. 넷플릭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