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관련된 카톡방이 족히 15개는 된다. 고작 6명 되는 우리 팀과 관련된 카톡방이 4개면 말 다한 것 아닐까. 이 내용은 이 카톡방에, 이 내용은 저 카톡방에 올려야 상호간에 오해가 발생하지 않는다. 거기에 내가 맡은 업무와 관련된 유관 부서 사람들과의 카톡방까지 합치면 회사와 관련된 카톡방은 족히 15개가 된다. 그 많은 카톡방은 오후 6시가 되어도 쉬지를 않는다. 파트리더 이상의 관리자 직위에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챙겨야 할 것들을 시간을 불문하고 카톡방으로 캡처해서 송부한다. 그게 7 시건, 8 시건 중요하지 않다.
"OO 대리, 이것 좀 내일 아침에 한번 바로 알아봐!"
내일 아침에 알아볼 거는 내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카톡을 보내도 될 텐데, 굳이 저녁 9시에 보내는 의도는 무엇일까. 사실 상사에게 의도 따윈 없다. 상사는 본인이 내일 아침에 그 내용을 까먹을까 봐 미리 전달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들에게 팀 카톡방은 서로가 대화하는 대화의 장이 아닌, 또 하나의 메모장일 뿐이다. 더 나아가 상사는 그 팀 카톡방을 메모장으로 인식한 후, AI 대답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팀원들을 압박한다.
회사 걱정에는 적극적
내 인생 걱정은 소극적
그렇게 우리는 퇴근을 하고 와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압박에 노출되어 있다. Work & Life Balance는 무너졌다. 사실 그걸 기대하고 있지 않아서인지 퇴근 후에도 내 머릿속에는 회사와 관련된 생각들이 쉽게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샤워를 하던 중 갑자기 내일 해야 할 일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렇게 빠르게 샤워를 하고 나와 핸드폰 메모장에 내일 해야 할 일을 급하게 기록한다. 내일 아침이 되어 해야 할 일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데는 아메리카노 벤티 한잔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24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그런 시간을 나에게 부여해도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회사에서 어떤 주제에 대한 워크숍 추진에는 적극적이지만, 내 인생에 대한 워크숍에는 왜 이렇게 소극적일까. 소극적인 게 아니라 자신이 없는 걸까.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또 금요일 업무까지 마쳤다. 토요일과 일요일, 나에게는 내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하지만 난 또 무의식적으로 그런 시간을 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