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도 진심으로 미안해요.

by 초록해

육아를 하다 보면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분노가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극대노'를 어떻게 해야 할까? 참 고민이 많다. 이 분노가 밖으로 표출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근원지를 알 수 없는 분노가 표출되면 분노의 현장에 있는 사람이 보통 피해자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 그 피해자는 아들인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들의 행동이 분노의 근원지 같지만, 아이를 재우고 잠이 들지 못하는 밤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분노의 근원지는 모두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잠 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다 보니 오는 번아웃 등.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내가 나를 다스리지 못한 것만이 남을 뿐. 그렇게 나는 시간을 내어 심리상담을 받았고, 그 분노를 조금 해갈했다. 심리상담을 받는다고 모든 분노가 단 한순간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빈도가 줄어들 뿐. 이건 내 평생 눈을 감는 그날이 올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할 나의 숙제이지 않을까.


아이에게 호통을 치고 난 날이면 항상 두통에 시달린다. 아이에게 소리치는 나의 부족함과 이제쯤 나라는 사람의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지점보다 더 깊어지는 나의 바닥, 그리고 인스타그램, 사회생활에서 좋은 아빠, 좋은 사람으로 비치길 바라는 나의 위선들이 뒤섞여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들을 낳기 전 나는 나에 대해서 다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있었고, 어른이 되면 더 어른스러워지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던 지난날의 내가 귀여워 보일 정도다. 그렇게 끊임없이 바닥에서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런 감정들을 느끼는 것이 나를 더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고 되돌아볼 수 있기에, 이런 감정들에 무감각하지 않기에 지옥불로 가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들이 5살이 되면서 이제 말도 어느 정도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놀면서도 서로 의견이 충돌하고, 그 의견들을 주고받으면서 아직 대화를 함에 미숙함이 많아, 서로 손이 먼저 나가 싸우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아들! 이럴 때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야."


"(건성으로) 미안해. 미안해. 됐지?"

"(마지못해) 괜찮아."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아들. 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빠가 시켰기 때문에 하는 사과와, 그 사과를 받아주고 싶지 않지만 주변 어른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 마지못해 내뱉는 친구의 한마디, "괜찮아". 이건 서로 사과를 주고받는 것이 아닌, 서로 사과를 세게 던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건강 잘 챙겨 드리며, 사랑 나눠 드림'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와이프가 오기 전 아들과 4시간 정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어느 날은 서로 너무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서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 투덜대는 날도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 같은 날은 서로 잘 지내다가 아이의 투덜대는 모습에 내 분노 버튼이 눌린 날이다. 가끔 내 분노 버튼이 눌릴 때면, 분노가 나가면서도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분노가 멈춰지지 않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내 안의 감정이라는 섬이 "멈춰! 멈춰!"라고 말하지만 브레이크가 없이 질주하고 만다. 질주를 넘어선 폭주다. 그렇게 서로 눈물과 분노가 한 시간이 넘게 공기를 에워쌌다.


"아빠, 나 바나나 먹고 싶어. 바나나 먹고 싶어!!!"


여기서 내가 말을 하게 되면 더 아이에게 상처만 줄 것 같아, -15도 정도 되는 매섭게 추운 날씨임에도 아들과 옷을 껴입고는 밖을 나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과일가게로 향했다. 그 추운 날씨 속, 손도 잡지 않은 채 그렇게 서로 허공에 헛소리만 날리며,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고 과일가게에 도착했고, 바나나를 사 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외투를 벗었다.



"아들. 옷 벗고 이쪽으로 좀 앉아봐."

(혼자 옷 정리를 다하고 내 앞으로 앉는 아들)

"아빠가 아까 감정 조절이 안돼서 아들한테 소리쳐서 진심으로 미안해. 이렇게 화낼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아들도 다 생각이 있었을 텐데 아빠 마음대로 판단하고 혼내서 진심으로 미안해. 다음부터는 아빠가 더 노력할게"

"아빠, 저도 기분 나쁘다고 소리 지르고, 장난감 던져서 죄송해요."


친구와 사과할 때와는 180도 다른 모습의 제대로 된 사과였다. 사과하는 방법을 아무리 설명해 줘도 아들이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진심으로 사과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똑같이 따라 하는 아들이었다. 처음부터 아이에게 소리 지르지 않았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제대로 닦지 않으면 그 물에 미끄러져 넘어질 것이 분명하다. 엎질러진 물을 닦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아들도 함께 그 물을 닦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 사과를 하며 뜨겁게 다시 사랑표현을 하는 아들과 나를 보며 오늘도 서로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나누고 있음에, 이런 감정을 나눌 아들이 있음에 감사하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