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해 Nov 11. 2019

퇴사할바엔 차라리 빨리 퇴근할래.

내가 누구 좋으라고 퇴사해. 그냥 빨리 종 땡치면 집에 갈래.

그렇게 나는 추가합격한 회사에 입사했다.

첫 대기업에 입사했던 것처럼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뭐. 나에게 대안은 없었다.


첫 번째 직장을 옮기기 직전까지 퇴사를 하고 싶다는 충동은 한 40,000번 정도 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회사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사람들은 한 곳에 오래 버티지 못하면 다른 곳에 가서도 버티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 계속 버티면 그 사이 내가 죽을 것 같아 살고 싶어 나왔다. 그렇게 나는 나를 컨트롤하는 법을 깨닫지 못하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첫 번째 회사에서 나의 첫 동기였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두 살  어린 친구였고, 대기업 준비를 2년 동안 하고 공채 4번째 도전만에 합격을 해서 들어온 친구였다. 인턴에서 정규직으로 넘어갈 때 둘 중에 한 명은 떨어질 수 있다고 들었지만, 둘 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했고 우리는 2명 다 당당하게 정규직으로 회사에 입사했다.


우리 둘의 성향은 비슷했다.

처음 해보는 일에 대해 무서워했지만 해보려고 노력했고, 내가 하고 있던 일의 끝이 안 보이면 저녁 11시까지 남아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대기업 일이라고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한 업무가 많았고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하루에 다 쳐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직군마다, 업무의 성격마다 다 다르겠지만 B2B 영업의 일은 하루에 30개가 생기면 내가 아무리 애써도 10개 정도 쳐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20개씩 일주일이면 100개의 나의 짐(일)이 쌓여만 갔다.


그렇게 고객의 클레임을 품은 핸드폰 벨소리는 쉴새없이 울려댔고,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는 흠찟 몸을 떨곤 했다.


그렇게 동기와 나는 6개월이 넘게 정신없이 일을 배우며 일을 익혀나갔다.

단순하게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이 되자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트레스는 계속 내 가슴속에 쌓였고 나는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 곳의 한 구성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무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았다. 대세를 따르려고 노력했고, 결과 퇴근 시간인 오후 6시에 회사 문을 나서지 못했다.

매번 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치보며 일하다 저녁 10시쯤 불을 끄고 퇴근을 했다.

회사생활을 처음 해봐서 비교대상이 없었던 지라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견뎌내지 못하면 나 자신이 나약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6개월 정도가 지나고 나서 나와 인턴 때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동기는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야. 결혼하고 아기 낳으니까 좋아?"

"오빠, 진짜 너무 행복해. 회사에서 하는 일이 인생의 다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세계가 있었어! 오빠도 빨리 결혼하면 너무 좋을 텐데."

"나는 요새 너무 퇴사하고 싶다 진심. 견딜 수가 없어!"

"오빠, 숨 막히고 답답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은 그냥 6시 땡치면 나와"

"어떻게 그러냐!"

"오빠 그러다가 숨 막혀서 나중에 진짜 못 산다. 그때 나와서 봐봐.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니까?"

"그래? 알겠어!"


그렇게 그 친구에게 알겠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첫 회사에서 제대로 된 퇴근을 해보지도 못하고 퇴사했다.


이 회사에 들어와서도, '이 회사는 좀 다르겠지?'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 기대는 언젠가 무너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기대는 현실이 되었고 회사 업이 변동되어 회사의 분위기는 달라졌지만 사람 간의 관계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여전했다.


어디를 가던지 나를 화나가 하는 존재는 강도의 세기만 달라질 뿐 언제든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끊임없이 퇴사를 생각한다.

다행히 전 회사보다 지금 회사를 더 오래 다니고 있으면서도 40,000번 보다 적게 퇴사를 생각했다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오늘도 바쁘게 일을 하다 보니 퇴근시간에 가까워졌다.

해야 할 일을 많았지만 이렇게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앵그리버드가 될 것 같은 직감이 스쳐 지나갔다.


"오빠. 퇴사하고 싶으면 그냥 퇴근을 빨리해!"

라고 말하는 동기의 음성이 뇌에서 종 치듯 울렸다.


"그래! 퇴사할바엔 차라리 빨리 퇴근할래!"

매거진의 이전글 끝이없는 직장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