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해 Jul 12. 2019

꿈꿔왔던 첫 대기업, 아니 첫 직장과 이별했다.

"난 더 이상 이 소속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퇴사까지 남은 시간은 4주.


어떤 이는 그랬다.

이제부터 뭐 안 나가도 그만이라고,

"너 나간다고 말했으니까 솔직히 내일부터 안 나와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어"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갑자기 회사를 안 나와버리는 건 도의적인 문제,

더 나아가 내가 나를 쓰레기로 단정 짓는 것 같은 생각에 4주 동안 더 잘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소속감이 주는 압박감이랄까...

'나는 더 이상 이 소속의 사람이 아니다.'

나로 인해서 이 소속의 사람들이 불편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나는 4주 동안 나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새로운 반에 가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긴장하고 있던 것보다

더 극한의 긴장과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인간적이지 못한 곳에 있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이 회사를 입사했다는 것 자체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기계처럼 단순 업무를 쳐내다 보면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동기 한 명 없이 어차피 외로웠으니 상관없다'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1년 3개월 동안 1명의 인연도 만들지 못한

나의 미숙한 사회생활이 더 원망스러웠다.


퇴사 결정만 하면 "도비는 자유예요"를 외치고 엄청나게 후련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렇게 나의 육체는 물을 안 줘 점점 말라 가는 고목나무 같았고, 내 정신머리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우주 속을 정처 없이 떠도는 이름 모를 행성과도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퇴사 3일 전이 되었다.


일을 끝내고 나선 나의 사수와 파트리더께 조그마한 보답을 하고 싶어 백화점을 나섰다.

흐리멍텅한 정신을 가진 채.


나는 걷고 있지만,

머릿속은 날고 있었다.


그렇게 선물을 사고 나는 운전대를 잡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채

소리 내며 무뎌진 내 감정을 깨우듯 소리 내 울었다.


'뻑.... 뻑......(이잉~)"

"괜찮으세요? 보험 불러야 되지 않아요?"


주변 사람들의 말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차의 본네트 왼쪽은 조형물처럼 찌그러져 있었고, 나와 부딪친 트럭은 멀쩡하게 나보다 앞에 서 있었다.


사고 당시 운전대와 내가 세게 부딪쳤지만 이상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사고가 났음에도, 무기력한 나의 정신은 100% 깨어나지 못했다.


우선 보험사를 불러 사고 현장을 수습했다.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고, 렌터카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 가운데도 직장 동료들 선물을 챙긴 나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져 눈물이 나왔다.


그렇게 원망하던 회사에서의 마지막 날.

나는 퇴사하는 그 누구가 그렇듯

인수인계서를 정리하고, 내 자리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유관부서와 동기들에게 퇴사 인사를 썼다.

그리고 위, 아래층을 돌며 영혼 없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회사를 떠났다.


후련했지만, 찝찝했다.

그렇게 나는 꿈꿔왔던 첫 대기업, 아니 첫 직장과 이별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