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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해 Jul 11. 2019

대기업 입사가 힘드니, 퇴사는 쉬울 줄 알았다.

퇴사도 컨설팅이 필요해!

"하.... 나 퇴사하고 싶다"


지난 1년간 매일 저녁 11시만 되면

나는 여자 친구에게 나의 퇴사 의사를 밝혔다.


너무 매번 말해서 그런지,

이제 나의 퇴사 의사가 내성이 생겨서 그런지,

여자 친구는 나에게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라고 습관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무기력에 가득 찬 나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무기력의 게이지가 99%가 되었을 때,

오전 회의 시작 전, 과장님께 상담 요청을 했다.

"과장님, 이제 더 이상 못하겠어요"


그렇게 나의 퇴사의 계획은 현실화되고 있었다.

나는 대기업 입사가 힘들었으니, 퇴사는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퇴사가 더 힘든 거구나.

"입사 컨설팅이 아니라... 퇴사 컨설팅이 필요해"


과장님에게 말한 나의 퇴사 의사는 팀장님께 잘 전달될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그래도 내가 따랐던 과장님이니까.

'멍청했던 거지..... 순진했던 거지....'


'내일쯤이면 팀장님이 부르시겠지?'

라는 순진한 생각에 빠졌던 나는 

3일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팀장의 모습에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여기서 나는 퇴사의 법칙 한 가지를 배웠다.

우물쭈물 중간에게 말하는 게 아니라, 바로 대가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걸.


그렇게 나는 3일 뒤 배웠던 법칙을 실행했다.

팀장님을 찾아가 퇴사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팀장님과의 퇴사 면담을 하자마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잘하다가 갑자기 왜 퇴사를 하겠다는 건가?"

"제가 더 이상 이 일을 할 자신이 없습니다.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퇴사를 밝히고 나면 퇴사를 바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팀장님의 답변은 토르 방망이로 내 머리를 두들기는 것 같았다.

"그건 퇴사 사유가 안돼."


What? What? What?

더 이상 여기 있는 게 힘들어서 나가겠다는 사람이

이제 내 발로 내가 나가겠다는데

왜 안 내보내 주는 건데!!!!!!!!!!!!!

더 이상 여기 오기 싫다고!!!!!!!!!!


그리고 첫 퇴사 면담을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퇴사도 내 맘대로 못하게 하는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내가 살고 있었다니....


하지만 퇴사라는 행사를 진행하는 내가

거지 같은 진행자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취업에도 명분이 필요하구나.

내가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팀장에게

내 퇴사 '명분'을 줘야 나를 놓아줄 수 있구나...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는 두 번째 퇴사 법칙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는 취업컨설팅을 하듯

나의 영원한 멘토인 매형과 '퇴사 명분' 만들기 프로젝트에 나섰다.

그리고 퇴사를 하기 위한 논리 로직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전의 날..

인턴에서 정규직 전환될 때 치는 PT면접보다 더 떨렸다.

나에게 호랑이보다 더  위협적인 팀장이었기에 나는 팀장을 만나기 전

살짝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면담이 시작되자,

나는 그에게 나의 명분을 던져 주었고,

드디어 그는 담당 임원에게 나의 퇴사를 보고할 명분을 받아 들고서는 '고생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나의 퇴사 행사는 한 고비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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