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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해 Dec 15. 2020

그래도 일할 회사가 있어 얼마나 좋니?

오늘도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시작하는 오전 7시. 아니 사실 오전 6시 30분.

3년을 넘게 일한 회사지만, 매번 적응이 안되는 시간이다.


6시 30분에 졸린 눈을 비비고 아메리카노 한잔에 의지하며 오전 환기를 한다.

12월 15일, 갑자기 너무 추워진 날씨에 '환기 할까? 말까?' 혼자서 수도없이 고민을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결국엔 나만 잠깐 춥고 말지란 생각으로 16개의 창문을 열기 시작한다.

1초도 안돼 후회하고 말지만, 요즘같은 시국에 코로나19를 위해서라도 환기는 필수다.

그렇게 나는 환기 후 문을 닫으며, 해 뜨기 전 하늘을 본다. 


어느 조직이든 가장 서열이 낮은 사람에게 아침 시간이란 준비할 것으로 넘쳐난다.

회사에 모든 방을 체크하며 난로를 키고, 커피 포트를 씻고, 커피를 내리고, 물을 채워 넣는다.

사소해보이는 이 하나하나가 귀한 아침시간에 은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사실 출퇴근 시간 10분이 엄청 크지 않은가.




어제 오늘 해야할 일을 다 써놓았지만, 주변 선배들과 유관부서에서 오는 돌발 요청들이 뒤범벅되어 나의 To-Do-list는 지워질 생각이 없다. 내 다이어리를 볼 때 마다 내 To-Do 들은 나를 지워달라 아우성친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보면 어느새 오전 시간이 다 가 있음을 느낀다.

"점심 먹으러 가자~"

어느새 나에겐 점심은 즐거움의 대상이 아닌, 살기위해 먹는, 눈치보며 먹는 밥이 되고만다. 코로나19로 좋아진 것은 딱 하나 있다. 굳이 점심을 먹으면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아크릴 판에게 이렇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다니. 코로나는 빨리 종식되어야 하지만 10분이 채 되지 않는 나의 밥 시간에는 입을 닫고 말을 해야한다는 강박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 있다.

보통은 커피한잔의 여유를 즐기지만, 커피 따위의 여유는 퇴근 이후로 넘겨두고 책상 밑에있는 약통을 꺼낸다. 비타민 B, 비타민 C, 엽산, 프로바이오틱스 등 내가 가진 모든 약들을 한 손에 털어낸다. 

"오늘도 내가 너 때문에 버틴다"


사실 이 약이 없었으면 벌써 입에 구멍이 수십개는 났을 거다.

특히 입 안에 난 구멍은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 신동엽 아저씨가 선전하는 입병 치료하는 약은 사실 크게 효과가 없다. 그보다 알보칠은 입을 마비시켜, 치과와 온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이런 귀찮음을 해소하기 위한 나만의 비책이 이 약통인 셈이다. 약통 없이는 나의 점심시간을 마무리할 수 없게 나는 내 바이오리듬을 맞춰두었다.




그러게 조금 쉬나 싶으면, 또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존재한다.

눈에 초점을 잃은지는 오래. 하지만 정신은 미어캣처럼 바짝 긴장되어 있다.

분명히 밥을 조금밖에 먹지 않았는데 어느정도의 포만감으로 몸이 긴장을 풀 기미가 보인다. 냉탕과 온탕을 왔다 갔다 하듯, 추운곳과 따뜻한 곳을 왔다갔다 하니 금새 피곤함이 몰려온다. 


오늘은 한마디도 안하고 싶었던 아침의 바램은 오전에 버린지 오래다. 말을 많이 하다보니 턱 주가리가 매우 아픔을 느낀다. 그리고 회사 사무실은 왜 이렇게도 시끄러운지, 내 턱주가리는 내가 말한다고 아프고, 내 귀는 다른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느라 이명이 들릴 것만 같다.


사람들 많은 카페에서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고, 거기서는 과제든 공부든 뭐든 너무 잘되는데, 왜 회사에서는 다른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묵음처리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떻게 나는 그 순간에도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를 시간의 반복. 그러다 시계를 쳐다보면 3시 45분.




이 시간부터 나의 머리속은 일을 마무리 해야 함을 느끼고 있지만,

왜 선배들은 지금까지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자리로 와서 타자기를 미친듯이 두드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다시한번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다. 하..... 미리줘라 미리... 제발 미리줘라...


뭐 인생은 포기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내 눈은 벌써 포기했고, 내 몸도 포기했다.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쯤 되면 종소리가 울린다. 집에 가라고 알려주는 종소리. 하지만 가지 못하는 내 몸뚱아리.




답답한 마음을 치료해줄 사람은 역시 가족뿐이라고 했던가.

해 뜨기 전에 회사에 와서, 해 질 때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회사에 있는 나.

난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옥상으로 올라가 아버지께 연락한다.


"아빠. 나 힘들어 못해먹겠다. 집에 가고 싶어"

"그래도 일할 회사가 있어 얼마나 좋니?"


이런 말을 들을 마음의 여유가 있는 날이면 오늘은 그나마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다.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으로 익숙해져온 소속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오늘도 회사라는 소속으로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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