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흔들릴 땐 몸부터 숨을 쉬게 한다
발리 남부의 태양 아래, 깊고 푸른 인도양을 따라 펼쳐진 절벽 위를 나는 천천히 걷고 있었다.
살갗을 간질이는 바닷바람, 바람에 나부끼는 얇은 시스루 셔츠, 뜨겁게 달궈진 대지를 맨발로 느끼며 나는 오늘도 요가 수련을 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수련장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모였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매트를 깔고 앉았다.
잠시 후, 구루가 등장했다. 190cm는 넘어 보이는 큰 키,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깔끔하게 밀어버린 두피, 민소매 사이로 드러난 탄탄한 근육, 그 강한 인상과는 다르게 눈빛은 참 평화로웠다.
"Close your eyes."
그의 안내에 따라 눈을 감았다.
3월의 발리는 우기가 막 끝난 참이라 공기가 축축하고 무거웠다. 정수리 위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뼈저나온 잔머리가 바람에 살랑였다. 땀은 이마를 타고 뺨 위로 흘렀다. 익숙하지 않은 날씨 때문인지, 마음속 긴장 때문인지, 나는 눈썹 사이에 힘을 꽉 주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 그 사이에 긴장을 놓으려 애썼다.
그 순간, 구루가 말했다.
"Let it go."
그저 흘러가게 두라고.
머릿속을 떠도는 수많은 생각 주머니들, 그걸 이제 놓아주라고 했다. 그때,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가 마음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다.
‘괜찮아.’
그건 누군가의 말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웅크려 있던 내 마음이 처음 내게 건넨 위로 같았다.
‘지금 이대로 괜찮아.’
마치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토닥여주는 듯 한없이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내 곁에 아무도 없었지만, 고개만 돌리면 누군가 거기 있을 것만 같은 따스함이 전해졌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차마 흘릴 수 없었던 슬픔이, 말로 꺼낼 수 없었던 불안함이, 어디에도 두지 못한 외로움이 두 뺨을 타고 줄줄이 흘러내렸다.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지금, 이 울음은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구루가 눈을 뜨라고 했으나, 나는 한참을 더 울고 싶었다. 마음에 꽁꽁 쌓인 답답함을 눈물과 함께 좀 더 흘려버리고 싶었다. 겨우 눈을 뜨자 끝도 없이 펼쳐진 하늘과 바다가 내 눈앞에 쏟아졌다. 옆 수련생에게 방해가 될까 싶어 손수건으로 조심스레 눈물을 닦고, 인중에 맺힌 콧물도 쓱 닦았다.
숨을 가다듬고,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을 타고 흐르듯, 동작 하나하나에 나를 실었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무게가 옅어졌다.
며칠 전, 나는 발리로 한 달 살이를 떠나왔다.
오전 4시에 일어나고, 저녁 8시에 잠드는 루틴을 반복했다. 새벽 다섯 시, 고요한 새벽의 에너지로 요가를 시작한다. 과일과 달걀 요리, 따뜻한 차나 과일 주스로 아침 식사를 한다. 그 이후엔 햇살을 느끼며 멍하니 앉아 있거나,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한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음 할 일을 고른다. 헬스장에서 고강도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마사지를 받는다. 저녁이 되면 영화 한 편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혼자만의 평화로운 휴가였다.
하지만 나는 도망쳐 온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연애는 점점 숨이 막혀갔다. 당시 만나던 연인은 내 스마트폰을 매번 훔쳐보았다. 나를 감시하고 의심하는 태도는 불신과 불안으로 나를 짓눌렀다. 괴로움을 견디지 못한 나는 결국 이별을 고했지만, 그 끝은 데이트폭력의 두려움이었다. 나는 도망치듯 이곳에 왔다.
사랑은 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연애를 할 때마다 모든 에너지는 상대에게 쏟아졌다. 그래서 연애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중심을 잃고 무너졌다. 이번엔 더 깊이 가라앉았다. 서른이 넘어서 시작한 연애는, 더 이상 사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나는 결혼을 기대했고, 진지한 관계를 원했고, 그만큼 상처도 더 컸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사랑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매번 이별이 남긴 절망과 자책은 나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발리에 왔다. 다시 숨 쉴 틈을 만들기 위해. 다시 나로서 살아보기 위해.
당신은 언제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나요?
지금, 어떤 위로가 필요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