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연애, 나를 잃어가며 사랑했던 시간
20대의 연애는 그야말로 감정의 롤러코스터였다.
확 끌리고, 금세 사랑에 빠졌다가, 또 툭하면 식었다. 그렇게 쉽게 시작하고, 쉽게 끝났다. 하지만 30대의 연애는 달랐다. 그땐 '어른스러움'이라는 말에 목을 맸다. 연애는 서로 이해하고 맞추는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애썼다. 정말, 말 그대로 ‘애쓴’ 연애였다. 나 다움을 잃어가면서도,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으니까.
나는 타고나게 외향적이다. 낯가림이 없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낯선 환경도 즐긴다. 그런 나의 모습이, 나와 민닜던 남자들에겐 불안 요소였다.
특히 한 남자. 유교 사상이 짙은 그는 나를 ‘여자답게’ 교육하려 들었다. 노출 있는 옷은 당연히 입지 못하게 했다. 택시 기사님과 소소한 일상 이야기 같은 날씨에 관한 대화도 불쾌하다며 언성을 높였고, 혼자 등산을 간다거나 요가원 남자 대표와 밥을 먹는 일도 안 된다고 했다. 심지어 술집에서 화장실 위치를 사장님께 묻는데, 그 말투에 애교가 섞였다며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나는 이해하려 했다.
그에겐 아픈 과거가 있었다.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와 여자친구가 바람났던 기억, 어릴 적 어머니가 외도하는 장면을 본 트라우마가 짙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해하고 싶었다. 어쩌면.. 구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성애인지 연민인지 모를 감정으로, 나는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옷도 그의 눈치를 보며 입고, 모임도 줄였다. 심지어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려고 지인의 메시지까지 지웠다. 그렇게 나의 자유는 하나씩 사라졌다. 쾌활하고 에너지 넘치던 나는 점점 어두워졌다. 우스운 건, 내가 그렇게 노력해도 그는 고마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간섭했고, 더 의심했다. 몰래 내 스마트폰을 열어보고, 메일까지 뒤져서 몇 년 전 연애 흔적을 들춰냈다. 나는 점점 피폐해졌다.
그의 상처를 감싸주려 했던 나는, 결국 그의 상처에 잠식당했다. 헤어지자고 말했지만, 그는 나를 놓지 않았다. 지속적인 연락과 위협적인 말투 모든 게 무서워졌다. 그래서 도망쳤다. 발리로. 20대엔 단순히 사랑에 빠졌고, 30대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나를 잃었다.
나를 지우고 맞추는 것을 ‘성숙’이라고 착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니었다. 그건 나이 때문에 겁이 나서 애써 붙들었던 관계였을 뿐이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 지금 헤어지면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불안이 날 조급하게 만들었다.
나를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 애썼다. 나는 ‘유연한 사람’, ‘이해심 많은 여자’로 남고 싶었지만 그건 진짜 내가 아니었다. 사랑은 맞춤형 옷이 아니다. 억지로 조이는 옷을 잠깐 입을 수 있겠지만, 결국 숨 쉬기 힘들어지면 결국 벗어야 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나를 감추면서까지 지속되는 관계는, 결코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연애는 부모가 아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보호자도 아니다. 각자 완전한 사람이, 동등한 입장에서 손을 잡고 걷는 것. 그게 진짜 사랑이고, 연애다.
내가 사랑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5살 꼬마 아이처럼 유치하게 장난칠 때, 막 자고 일어난 퉁퉁 부은 모습도 귀엽다고 해줄 때, 속상해서 누군가의 뒷담화를 마구 할 때 혹은 실수를 감당하기 버거워 자책할 때 같은 못난 모습을 편하게 보여줄 때 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받았을 때였다.
발리로 도망온 날, 마음은 해방감과 동시에 텅 빈 공허함으로 가득했다. 혼자인 게 외로웠고, 서른 중반이 넘은 내 나이가 더 무거웠다. 한국 사회에서 30대 중반의 싱글 여성은 결혼 시장에서 ‘늦은 사람’으로 분류된다. 말 그대로 노.처.녀.
괜찮은 남자는 다 결혼했고, 지금 남은 시장엔 이상한 사람밖에 없다는 냉소가 들려왔다. 그 안에 나도 포함된다는 현실이 씁쓸하고,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제는 알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 나를 버리는 연애는 결국 나도, 그 사람도 지치게 만든다는 걸.
혹시 지금의 당신도, 누군가에게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진 않나요?
지금 연애 속의 ‘나’는, 당신이 원하던 모습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