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을 찾아서
발리 살이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내가 발리에 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인도네시아 현지 친구가 만나자고 d연락이 왔다. 오리 고기로 유명한 꾸따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나 안부를 나누었다. 리조트 사업을 하는 이 친구는 숙박업소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에 올 때, 인사동의 전통 한옥 숙소나 강원도의 명상 치유 리조트에서 묵기도 했었다. 그는 다음 일정에 대해 물었다. 나는 발리살이의 마지막 일주일은 우붓에서 보내기로 했으며, 요가 수련을 할 거라고 했다.
"숙소는 어디 예약했어?"
"뭐더라. rouge 인가?"
"아, 이름 들으니 생각나네? 이름이 똑같은데, 내가 아는 풀빌라가 있어. 거기가 훨씬 좋아. 너 조용히 수련하기 좋을 거야. 네가 한국에서 좋은 곳 많이 소개해줬으니 이번엔 내가 선물할게."
다음 날, 우붓의 빌라로 이동했다. 도착해서 짐을 내리는 동안 나는 숙소를 구경하러 들어갔다. 그런데, 숙소가 작아 구경할 것도 없었다. 가운데 겨우 한 명 들어가 놀만한 수영장을 두고 문이 다닥다닥 붙은 작은 모텔 같은 구조의 방은 8개 정도였던가. 어제 친구가 말한 분위기치고는 실망스러운 규모였다.
체크인을 하려는데, 직원이 내 이름이 없다고 했다. 친구 이름으로 했을까 싶어 다시 물었지만 역시나 없단다. 이상해서 친구가 보내준 예약 내역서를 보여줬더니, 직원이 말했다.
“이름이 같은 다른 리조트가 있어요. 아마 그쪽일 거예요. 제가 확인해 볼게요.”
직원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미라라는 손님이 여기에 와 있는데, 혹시 너희 리조트에 예약돼 있니? 잘못 온 것 같아. 응, 알겠어. 지금 보낼게.”
기사가 이름이 같아 헷갈린 것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오려고 한 숙소가 방금 본 숙소인 것 같았다. 기사는 새 주소로 차를 돌렸다. 우붓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로 한참을 달렸다. 드문드문 집이 보이고, 길은 울퉁불퉁했다. 그렇게 한적한 어느 골목, 나무문이 달린 전통 가옥에 도착했다. 문을 열자 사롱을 입은 발리니즈 여직원이 나를 반겼다. 정원이 크게 펼쳐진 로비에서 체크인을 하고 웰컴 티와 과일로 나를 환영해주었다. 기사는 짐을 내리고 돌아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방 안내가 없었다. 이상해서 물었다.
“제가 묵을 방이 어디예요?”
“여기요. 지금 이 공간이요.”
‘엥? 여기? 맙소사…’
내가 앉아 있던 그곳이 로비가 아니었다. 바로 내가 묵을 숙소의 거실이었다.
“그럼 제 방은요?”
직원이 하얀 커튼이 처진 커다란 문을 열었다. 넓은 침대, 바깥 전경이 훤히 보이는 욕실과 샤워부스, 따로 분리된 화장실. 한쪽엔 길게 늘어진 드레스룸까지. 얼핏 봐도 서울의 우리 집보다 컸다.
‘오 마이 갓.. 나 혼자 여기서 지내라고?’
흥분이 밀려왔지만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직원이 불안한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이어서 설명해 주었다. 경비원이 매일 오후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대문 옆 부스에 근무한다고 알려주었고, 무엇이든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본인의 연락처를 남기고 떠났다.
밤 8시, 풀빌라는 깜깜했다. 희미한 조명 아래 풀벌레 소리만 가득했다. 에어컨 바람도 왠지 싸늘하게 느껴졌다. 큰 공간에 덩그러니 있으니 기분이 영 혼란스러웠다. 외로운 건지 무서운 건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자 방 안으로 햇살이 환하게 들어왔다. 잠옷 바람으로 빌라를 구경했다. 커다란 거실, 식탁, 티 테이블과 소파, 널찍한 주방, 10명도 충분히 요가할 수 있는 넓은 정원, 시원한 그늘의 정자, 그리고 프라이빗 수영장. 나는 토끼처럼 정원을 맨발로 뛰어다녔다.
조금 있으니 직원이 아침을 가져왔다. 과일, 나시고랭(볶음밥), 커피, 주스를 준비해 주었다. 서빙을 받으며 마치 궁궐의 공주님이 된 듯한 기분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수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유튜브 영상도 찍었다. 발리살이 첫 숙소에서 유튜브 촬영할 때, 경비원한테 대차게 쫓겨난 걸 비교하면 지금은 완전한 내 세상이었다. 눈치 볼 사람도, 소음에 예민한 이웃도 없었다.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밝았던 태양이 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정원에 나가 별을 바라봤다. 밤하늘에 수 놓인 별들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어제는 낯설어서 적막했다면, 오늘은 어딘가 모르게 공허했다.
‘나 왜 이리 허전하지?’
문득 화려하게 지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30대 초반, 재력 있는 남자와 연애하던 때였다. 1박에 백만 원이 넘는 숙소, 5성급 레스토랑에서 데이트하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본래 사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그를 만나면서 마치 나도 그런 삶이 자연스러운 듯 착각했다. 고급스러운 대접에 익숙해졌고, 그 편리함이 좋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 소박한 생활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의 데이트 문화는 인도네시아와 너무도 달랐다. 소개팅에서는 먼저 중간지점을 제안해야 ‘개념녀’가 되고, 데이트 비용을 조금이라도 덜 내면 ‘된장녀’라는 말이 따라왔다. 스펙이 심하게 차이나는 상대를 만나려고 하면 '취집'이라는 말도 나왔다. 외모와 나이의 기준 앞에서 서른을 훌쩍 넘긴 나는 연애 시장에서 점점 초라해졌다.
나는 승무원으로 일하던 해외 생활을 그만두고, 요가와 명상을 만나며 외적인 기준들을 놓기 시작했다. 인연에 집착하지 않고, 재력과 같은 물질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욕심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소소한 것에 감사하는 법도 알았다. 그렇게 편안해진 줄 알았는데. 아뿔싸, 풀빌라 하나에 이렇게나 흔들릴 줄이야.
그 시절이 그리웠다. 그런 생활이, 아니 그 편안함이.
사실 그와의 연애는 달콤하기만 하진 않았다. 그는 일하느라 늘 바빴고, 나와의 약속은 뒷전이었다. 연차를 내고 함께 가기로 했던 여행 당일, 그는 갑자기 생긴 회의 때문에 여행을 못 간다며 카드 한 장만 툭 건넸다. 친구랑 다녀오라고 했다. 그런 일들은 반복되었고 나는 물질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땐 마치, 나도 그도 돈의 노예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느꼈다.
그래, 돈이 좋긴 좋다!
돈이 주는 여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 궁궐 같은 숙소에서 내 마음대로 할 것 다 하고 밥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는 이 편안함. 왜 안 좋겠나. 나는 그동안 이 갈증을 잘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날 밤, 나는 까만 밤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 나는 돈을 좋아하는 여자였나?
- 내 행복의 기준은 뭘까? 정말 돈일까?
- 그 사람과 헤어진 건 정말 그 사람 탓이었을까?
- 내가 그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진 않았을까?
- 다시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 내게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지?
-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그 안에서 내 진심을 마주했다. 그리운 건 '그때의 나'가 아니라, '그때의 여유'였다. 외적으로 화려한 삶보다 내적으로 충만한 지금이 훨씬 마음에 든다. 어딘가에 끌려가는 삶이 아닌, 멈추어 나를 마주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지금,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나는 지금 발리에 있다. 내가 선택한 삶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당신의 행복 기준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