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법을 배우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까?"
결혼을 앞두고 나 자신에게 던진 가장 깊은 질문이었다. 나는 늘 사랑받고 싶었다. 그 마음이 지나쳐,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고, 눈치를 보고, 때론 나를 꾸며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조급했다. ‘이 사람마저 날 떠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밀려왔다.
사랑을 받는 일조차 시험에 통과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내가 누군가를 진짜 사랑할 수 있을까?
결혼은 로또라고 한다. 살면서 들은 실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실패담이었다. 상대의 가족 때문에 힘들고, 여자의 경력은 단절되고, 어느새 엄마라는 역할 외에는 내가 없다는 고백들이 많았다. 실제 내 친구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시어머님이 신혼집 가구뿐 아니라, 주방 수세미 하나까지 간섭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이 결혼이 괜찮을까 되물었다. 하지만 글을 쓰며 결혼에 대해 조사하면서 정말 중요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결혼 생활이 행복한 사람들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들은 티 내지 않는다. 질투받고 싶지 않아서다. 오히려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더 자극적이라서 쉽게 퍼지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들의 조용한 행복은 ‘절대 말하지 않는 로또 당첨자’와도 같았다. 그런 경험담을 읽으며 생각했다. 결혼이란, 죽어도 내 편이 되어줄 베스트 프렌드를 얻는 일일지도 모른다. 상처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사람, 그 사람과 함께라면 퇴근 후 함께 먹는 식사 같은 평범한 일상도 큰 기쁨이 된다. 나는 그제야 결혼이 왜 축복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이었다. 외식을 자주 하던 때라 속이 느끼해졌는지 얼큰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나의 한 마디에 남자친구가 직접 요리해 주었다. 저녁을 먹으며 티브이를 봤다. 요즘 인기 있는 이혼 숙려 프로그램이 나왔다.
이혼 숙려 캠프
갈등하는 부부가 서로를 탓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오 미라다. 너도 그렇잖아.”
처음엔 발끈했다.
“아니야! 내가 왜!”
그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나는 잘못을 하면 금방 ‘미안하다’고 하잖아. 근데 넌 돌아서, 돌아서, 이야기하다가 결국엔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더라.”
아, 내가 그랬구나. 다툴 때마다 그는 내 감정을 순차적으로 이해하려 애썼지만, 나는 내 서운함을 해명하느라 정작 감정의 핵심은 비켜가고 있었다. 내 안의 오래된 상처들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의 무책임함이 만들어낸 남자에 대한 불신과 ‘남자는 다 그래’라는 냉소가 지금 그에게 투영되어 있었다. 나는 마치, 미리 상처받을 준비를 하는 사람 같았다. 그를 믿는 것보다 내 불안을 더 믿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어서 남편과 아내가 역할극을 하는 모습이 나왔다. 미처 몰랐던 아내의 상처를 남편이 안아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이 아내의 과거 상처를 듣고 “미안하다”라고 껴안던 모습이 마치 내 마음을 대신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실은, 예비 시댁에 몇 번 다녀오면서 내 감정이 크게 우울했던 적이 있었다. 갈 때마다 가족 모두가 모여 식사를 했는데, 남동생 부부를 보며 부러움이 올라왔다. 7살이나 어린 동서는 참 차분하고 싹싹했다. 그 가족 안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 같은 며느리로서 나와 비교가 되었다. 아직 가족의 일원이 되지 않은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 애썼다. 시부모님의 예쁨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농담도 하고, 웃기려고 했다.
'나.. 사랑받고 인정받으려 너무 애쓰고 있잖아.'
내가 그냥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시댁 외식 자리에서 그의 부모님이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식사 후에 아버님이 어머님을 위해 누룽지를 떠다 주셨는데, 아버님께서 실수로 그릇을 떨어뜨리셨다. 식당에서 시선이 주목되자, 어머님이 놀라시며 귀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아이코. 여보, 미안해. 내가 괜히 부탁해서 여보 민망하게 했네.”
하시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버님의 기분을 풀어주셨다. 그냥 넘어갈 상황에서도 어머님은 진심 담아 사과를 하셨다. 그 짧은 한마디에서 오랜 시간 쌓인 애정과 배려, 존중이 묻어났다.
그날 밤, 샤워를 하다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시댁에 갈 때마다 동서와 나를 비교하며 나 스스로를 모난 돌처럼 여겼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 힘을 빌려 더 크게 목놓아 울어버렸다. 처음엔 애쓰는 나의 모습이 안쓰러워 눈물이 흘렀지만, 마지막엔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에 행복한 눈물이었다. 꿈꿨던 사랑의 한복판에, 이제 막 서있다니 감격에 벅찼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새벽에 출근을 하고 나는 느지막이 일어났다. 그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데워 먹었다. 어제보다 국물이 깊어져서 정말 맛있었다. 순간, 김치찌개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가 먹고 싶다는 한 마디에 바로 요리를 해주는 사람과 살게 될 줄이야'.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가 해준 김치찌개를 먹는데 눈물 날 정도로 행복해. 맛있는 요리 해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은 이렇다.
거창하지 않아도,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그저 나의 하루를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 그는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그리고 나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그 모든 평범한 순간들로 알려줬다.
결혼이란, 사랑받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알아가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넌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충분해”라며 바라봐주는 따뜻한 시선이 있는 관계 안에서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사랑은 결국, 함께 살아내는 용기라는 걸. 그리고 그 용기를 내고 싶다는 마음, 그게 바로 결혼의 시작이라는 걸.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