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나의 선택이 되다

내 마음을 움직인 사람

by 미라쌤

출근길, 늘 그렇듯 라디오를 틀었다.


귀에 익숙한 DJ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온 사연 하나. 출산을 막 끝낸 한 여자가 있었다. 회복실 침대에 누워 배가 너무 아프다고, 정말 힘들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갓난아이의 영상을 찍어 그녀에게 보여줬다고 했다.


“이 아기 봐. 우리 아기야. 얼마나 예쁜지.”


하지만 여자는 아이보다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엔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였다. 싸우기 일쑤였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서운함이 많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가장 간절하게 원한 건 엄마의 품이었다.


'죽을 것 같이 아플 때, 아기를 보고 싶다는 마음보다 엄마가 날 안아주길 바랐어요.'


그 말이 가슴을 쿡 찔렀다. 그 사연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엄마 생각이 났다.


한국에 들어온 후, 엄마는 서른이 넘은 나를 유통기한 임박한 유제품처럼 대했다.

“너 지금 몇 살이냐?”, “언제 결혼할래?”, “난자라도 얼려놔야지” 심지어 “미혼모라도 좋으니 애는 낳아라”는 말까지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이 뒤집혔고, 짜증을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도 있었다.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데, 왜 엄마는 자신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며 압박하는 걸까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느 날 임신을 주제로 엄마와 다툰 후, 힘든 마음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내 말을 조용히 들어주곤, 이렇게 답했다.



“엄마가 미라를 낳은 게 너무 기쁘고 소중했기 때문에, 그 경험을 너에게도 권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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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조심스레 건넨 말에, 나는 오래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렸다. 엄마의 잔소리가, 어쩌면 사랑일 수 있었겠구나. 그 오랜 오해를, 이해로 바꿀 수 있게 해 준 사람. 그가 내 곁에 있어 참 다행이었다.


그의 말투, 표정, 태도. 그 안엔 부모님에 대한 따뜻한 이해가 묻어 있었다. 부모님이 하는 말의 깊은 속 뜻을 보려고 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들의 서툰 방식까지도 품어보려는 시도라는 걸 나는 그를 통해 처음 배웠다. 그와 만나면서, 가족이 주는 따스함을 자주 경험할 수 있었다.




주말이었다. 그는 본가에 다녀오며 어머니가 싸주신 반찬을 가방 가득 들고 왔다. 직접 기르신 상추, 각종 나물 반찬, 계란 장조림, 진미채볶음이 있었다. 삼겹살을 구워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먹었다. 한껏 배부른 뒤, 상을 치우려고 보니 나물 반찬만 남겨져 있었다. 나는 물었다.


“왜 이렇게 나물을 안 먹었어? 나만 먹었네.”


그는 말했다.

“그건 미라 주려고 엄마가 해주신 거야. 난 채소 안 좋아하잖아.”


그의 어머니가 내가 주말마다 그의 집에 온다는 걸 알고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물으셨단다. 나물을 좋아한다는 말에 손수 무쳐 반찬으로 보내주신 것이었다. 아직 인사도 나눈 적이 없는데, 나를 챙겨주신 어머님의 마음이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배려 깊은 어머님의 마음은 그도 꼭 닮아있었다. 그의 집에 처음 인사를 간 날, 벽에 붙은 사진을 발견했다. 우리 둘이 찍은 네 컷 사진이 그의 가족사진 옆에 붙어 있었다.


“오잉, 이게 왜 여기에 있어?”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부모님이 미라 얼굴 익숙해지시라고. 그래야 처음 뵐 때 낯설지 않지.”


그 순간 알았다. 이 사람은 나를 ‘여자친구’라는 역할로만 보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가족이 될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따뜻함은, 그의 가족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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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런 따스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맞벌이 부모님이었기에, 나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혼자였다. 늘 혼자 밥을 차려 먹었고, TV가 친구였다. 혼자 숙제를 하다가 잠드는 게 대부분 내 유년 시절의 기억이었다. 외로움에 익숙했기 때문에 혼자여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와 그의 가족을 만나고 나니 난 자유보다 따스함이 그리운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따뜻함은 그렇게 나에게 스며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내 마음을 움직였다.


결혼이 누군가 나를 구해주는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함께 만들어가는 ‘따뜻한 방식의 삶’ 일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믿게 되었다. 나는 결혼하고 싶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지 못했던 사랑을 원망하지 않고, 그 사랑을 이제는 내 방식으로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와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랑은 때론, 아주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 사람을 가족이라 부르고 싶은 마음, 함께 늙고 싶은 마음, 그가 없던 날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매일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결혼은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을 믿고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 선택을 하려 한다.






당신의 결혼은 누가 정하나요?

누군가의 기준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마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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