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 평온한 시간들
과거의 나는 사랑이 늘 겉으로 보여지는 ‘확신’이어야 했다.
연락이 뜸해지면 애정이 식은 줄 알았고, 약속 시간에 10분만 늦어도 마음이 멀어진 걸로 느꼈다.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나 없이는 못 산다고 표현해 줘야 안심했다. 그 시절, 연애는 롤러코스터 같았다. 격렬하고, 들뜨고, 무너지고, 다시 기대했다. 사랑이 곧 증명이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내 짝을 만나 사랑을 새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서른 살 넘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젠 좋아하는 감정보다, 나와 맞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더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
몇 달 전, 발리에서 요가 콘셉트의 여행 사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발리에서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인천공항 도착장으로 나왔는데, 그가 환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기에 우린 그대로 서해 바다로 향했다.
최근 캠핑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우리는 캠핑 용품을 하나씩 사모았다. 원터치 텐트, 타프, 접이식 의자, 테이블로 쓸 수 있는 웨건, 작고 귀여운 휴대용 조리 도구까지. 주섬주섬 꺼내는 모든 물건들이 이 순간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바람이 솔솔 부는 바다 앞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텐트에 누웠다. 그는 금세 잠이 들었다.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눈을 감았다. 가족 나들이를 나온 옆 텐트의 대화 소리와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살짝 졸았다. 몇 분 뒤, 그릉 그릉 코 고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그가 대자로 뻗어 완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동그랗게 나온 배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평화로웠다.
그 순간, ‘그래! 이게 바로 내가 바라던 거잖아’ 싶었다. 소란스럽지 않고, 애쓰지 않고, 그저 그 사람 옆에 있다는 사실에 평온한 순간이었다.
20대 때, 남자친구와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둔 연애 버킷리스트가 었었다. 놀이공원 가서 무서운 것 타기, 커플 아이템 맞추기, 캠핑, 유기견 봉사활동, 번지점프 등.. 이 적혀있다. 신기하게도, 그와는 만난 지 100일도 안 되어 거의 다 이뤄졌다. 억지로 맞춘 것도 아니고, 내가 하자고 조른 것도 아니었다. 그는 항상 내가 좋아할 만한 걸 먼저 제안했다. 나는 ‘어, 나도 이거하고 싶었는데?’ 하며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우리는 생각과 말투, 반응, 심지어 즉흥적인 성향까지 거울처럼 닮아 있었다. 나만 튀는 것 같지도 않고, 상대를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의 사랑이 참 편했다.
그와 만나며 가장 좋은 점은 스스럼없이 장난을 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폰에는 내가 ‘중년마마’라고 저장되어 있다. 2살 연하인 그가 마흔 살은 중년이라며 놀리다가 지어졌다. 나는 그를 경도비만, 뚱땡이라고 놀린다. 나와 연애를 시작하고 20kg이 불어버렸다.
"너 나이 많잖아?"
"넌 뚱뚱하잖아?"
놀리고 싶지만, 아무리 공격해도 타격을 입지 않는다.
"넌 마흔 살 중에 제일 귀여워."
"네가 더 뚱뚱해져도 사랑해."
사랑 표현을 할 때에도 우리만의 표현으로 사랑을 키워나간다. 어렸을 적 친구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인 관계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연애의 모습이었다. 30대의 연애는 확신보다, 안정감이 주는 믿음이 필요하다.
“좋아해”라는 말보다,
“괜찮아. 천천히 가자”는 말이 더 깊게 스며든다.
젊음으로 덮었던 다툼, 설렘으로 참았던 불안함이 이제는 감춰지지 않는다. 그러니 서로가 얼마나 ‘같이 살아내기 좋은 사람인지’가 중요해진다. 취향을 존중하고, 가치관이 맞고, 감정 기복을 감당해 주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설렘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지만, ‘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내가 만든 리스트를 채워주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그림을 상상하고, 같은 속도로 걸어주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마흔이 되니 이제야 조금 알겠다. 설렘보다 안정이 더 필요하다는 걸. 그리고 그 사랑이, 지금의 나에겐 더 오래가는 위로와 용기가 된다는 걸.
당신이 원하는 사랑은, 나를 들뜨게 하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끝까지 함께 살아갈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