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센터 횟집
2000년부터 가락 시장에서 20분 거리의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가락 시장 근처에서 살다 보니 가족과 생선회를 먹고 싶으면, 일식집을 찾기보다는 가락 시장의 횟집에서 회를 포장해서 집에서 즐깁니다.
주말에 꼬맹이들과 TV의 먹방을 볼 때, 연예인이 제철 생선과 해산물을 먹으면서 '바다의 향이 난다', '쫄깃 쫄깃' 등의 여러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그 감탄사에 현혹되어 저와 꼬맹이는 서로 눈을 맞추며, '오늘 저거 먹자'라고 결정합니다. 저는 곧 인터넷에서 '가락 시장 민어', ' 방어', '꽃게' 등을 검색하여 가격을 확인하고 꼬맹이들과 옷을 입고 가락시장으로 나섭니다. 가락 시장에 도착하면 횟집을 몇 군데 돌면서 횟감이 1kg에 얼마인지, 가족 4명이 먹으려면 몇 kg을 사야 하는지 확인합니다. 어느 횟집이 더 쌀지, 아니면 더 많이 줄지 고민 후에 횟집 사장님과 흥정해서 가격을 조금 깎고 회를 떠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지난 10여 년 간의 가락 시장에서 제가 회를 구매하는 과정입니다.
2~3년 전부터 생선회를 인터넷 검색할 때, 새로운 검색 결과가 제 눈에 띄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생선회를 검색하면 가락시장에서 생선회를 드신 고객의 횟집 방문기, 생선회의 최근 시세 또는 횟집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카페 정도였습니다. 2~3년 전부터는 어떤 블로거가 가락 시장의 여러 횟집을 소개하는 블로그가 등장했습니다. 이 블로그를 살펴보면 생선과 해산물의 주간 단위 시세, 지역별 수산시장의 횟집 소개 그리고 각 계절별로 추천하는 생선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2년 전 이 블로그를 처음 접했을 때는 가락 시장을 방문하기 이전에 시세와 횟집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이 블로그에 소개된 가락 시장 횟집과 통화해서 미리 생선회와 가격을 결정하고, 가락 시장에서는 여러 횟집을 둘러보지 않고, 전화로 흥정한 횟집에서 값을 치르고 회를 찾아왔습니다.
얼마 전, 누나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으로 생선회를 먹으려고 다시 이 블로그를 찾았습니다. 여전히 이전과 같이 가격, 횟집 등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눈에 띈 것은 횟집의 메뉴 중에 2~3인분 생선회 또는 5만 원 모둠 회 등이었습니다. 7인분 모둠 회로 결정하고 횟집에 전화로 주문을 했습니다. 전화로 주문할 때, 가격 흥정은 없이 '많이 주세요'라고 끊었습니다. 횟감을 찾으러 가락 시장의 그 횟집에 가니, 저외에 많은 사람이 횟감을 찾으려고 기다리더군요. 다른 횟집보다 그 횟집에 손님이 두 배 정도 많았습니다.
나중에 제가 '회를 주문하고 찾아서 집에 돌아오는 과정'을 곰곰이 되짚어봤습니다. 뭔가 3년 전과는 그 과정이 달랐던 것입니다. 3년 전에는 손님을 모시려는 여러 횟집을 다니면서 시세도 확인하고 가격도 흥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편한 감정(싸게 사고 찜찜할 때 https://brunch.co.kr/@sjmsg/28)도 있었지요. 제가 이번에 방문한 횟집은 다른 횟집보다 대기하는 고객도 많았습니다. 과거에 방문했을 때는 횟집의 손님 수가 거의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가락 시장에서 회를 사는 과정(프로세스)'이 변한 겁니다. 제가 컨설팅 프로젝트할 때 많이 떠들었던 '표준화'를 가락 시장에서 회를 사면서 떠올렸습니다.
온라인에서 상품을 고르고,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은 흔한 일이기에, 제가 인터넷 블로그에서 횟집 메뉴를 보고 회를 사는 것은 큰 변화는 아닙니다.
횟집의 진짜 변화는 회를 '2-3인분', '4~5인분' 또는 10만 원 메뉴로 판매하는 것입니다. 생선의 종류에 따라서 1kg의 생선에서 뜰 수 있는 회의 양이 차이가 있습니다. 우럭 같이 머리가 큰 생선은 회의 양이 적고, 머리 작은 광어는 회의 양이 우럭 보다 큽니다. 몸통 중심으로 판매하는 연어회와 참치회는 1kg이 모두 회입니다. 우리가 회를 구매할 때, 몇 명이 먹을 것인가가 먼저 결정됩니다. 몇 kg 생선을 먹을 것인가를 먼저 결정하지 않습니다. 몇 kg의 생선이 필요한지는 횟집에 문의해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회를 '2~3인분', '10만 원 메뉴'는 소비자가 가격 흥정을 주저하게 합니다. 소비자가 일반 음식점에서 삼겹살 1인분의 가격을 흥정하지 않는 것처럼, 소비자에게 '10만 원'메뉴는 이미 그 값이 확정된 것으로 느껴집니다. 저희는 일반 음식점에서 삼겹살 가격을 흥정하는 대신, 사장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드립니다. '사장님, 많이 주세요!'. 생선 1kg = 00,000원으로 회를 사고 파는 것은 다른 맹점이 있습니다. 생선은 1kg 단위로 몸무게를 유지하지 않습니다. 가격은 1kg에 얼마인데, 정확히 1kg인 생선은 없습니다. 저희 가족에게는 1kg이 필요한데, 1kg 생선이 없으니 1.3kg 생선을 사야 합니다. 700g 생선을 사면 회가 부족해서 꼬맹이들끼리 싸웁니다^^. 삼겹살 1kg과 횟감용 생선 1kg을 구매하는 것은 똑같이 1kg이지만 사실 서로 다른 거였습니다.
소비자 관점에서는 구매 과정이 간단해졌습니다. 몇 명이 먹으려면 어떤 생선 몇 kg을 얼마에 사는 것이 합리적인지 고민이 덜 필요합니다. 이마트에서 포장된 생선회를 고르듯, 가락 시장의 횟집 메뉴에서 몇 인분의 생선회를 고르면 됩니다. 가락 시장의 횟집 메뉴를 '2~3인분', '5만 원 메뉴'로 표준화하여 소비자가 회를 구매할 때 발생하는 어려움을 제거한 겁니다.
판매자 관점에서는 판매와 재고 관리가 쉬워졌습니다. '2~3인분' 단위로 회를 판매하면, 고래도 팔 수 있습니다. 실제, 겨울철이 제철인 방어는 크기가 상당합니다. 겨울에 가락 시장에 가보면 10kg 나가는 방어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횟집 입장에서는 '10kg 방어'를 찾는 고객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회식이나 해야 '10kg 방어'가 필요하지요. '10kg 방어'를 한 고객에게 팔기는 쉽지 않지만, '2~3인분'으로 나누어 팔면 판매가 쉬워집니다. 횟집에서는 생선이 크던 작던 생선의 회를 뜨고 '2~3인분'에 맞춰서 포장하면 됩니다. 큰 생선의 고객을 찾지 못해 거의 죽어가는 생선을 떨이로 팔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무게가 각기 다른 생선을 kg단위가 아닌 '2~3인분', '5만 원 메뉴'로 거래하는 것이 바로 표준화이고, 이 표준화는 소비자와 판매자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찾은 블로그와 횟집들이 위에서 말씀드린 표준화를 의도적으로 계획했는지, 아니면 소비자의 요구를 자연스럽게 따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위와 같은 표준화가 오래전부터 수산물 시장에 있었는데, 제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알고 있던 것을 제가 늦게 깨달을 수는 있으나, 위와 같은 거래 방식이 머지않아 수산물 시장 거래의 표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드나들던 수산시장의 횟집들의 작은 비즈니스에서 변화와 개선을 상상하지 못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