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보고서
찌라시는 일본말로 선전을 위해 만든 종이쪽지, 낱장 광고입니다. 본래는 '지라시'라고 합니다.
아파트 우편물 통에 찌라시가 왔습니다. 제가 그냥 맘대로 손질합니다.
한 말 또 하는 것, 잔소리
제가 읽은 광고 전단지의 타이틀은 두 개입니다. '매주 월요일 알뜰시장', 그 옆에 '오픈 기념 대박 세일'. 그 아래 줄에 작은 글씨로 '매주 월요일마다 알뜰시장이 열립니다. 주민 여러분의 많은 이용 바랍니다.'
하고 싶은 말이지 듣고 싶은 말이 아닙니다. 큰 글씨의 '매주 월요일 알뜰시장', 그 아래 작은 글씨의 '매주 월요일마다 알뜰 시장이 열립니다.'
시장을 여는 분은 '앞으로 매주 아파트에서 알뜰시장이 선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같은 문장을 줄 바꿔 다시 씁니다. 어머니가 저를 꾸짖을 때, 제 대답이 시원하지 않거나 화가 풀리지 않으면, 하신 말씀을 반복합니다. 제가 알아들은 것을 뚜렷이 확인하고 싶으신 거죠. 저는 어머니 말씀을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 맘이 그렇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는 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솔깃한 말만 듣지요. 한 장 짜리 광고지에서 같은 말을 여러 번 쓸 필요가 없습니다. 같은 말을 다시 할 때는 잊을 만할 때 하거나, 요약할 쓰는 겁니다. 한 장 짜리 광고지는 크고 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월요일마다 알뜰시장이 옵니다.'
'매주 월요일 알뜰시장', '매주 월요일마다 알뜰시장이 열립니다.' 두줄의 두 문장을 하나로 줄여도 읽는 사람에게는 똑같습니다. '앞으로 월요일마다 알뜰시장이 옵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막내, 꼬맹이도 알아듣습니다. 오뎅을 월요일에는 집 앞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아파트 상가에는 없는 분식 가게가 월요일에는 아파트에 있다는 것을... 월요일 엄마 손을 끌고 가면 닭꼬치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홈쇼핑을 따라 하세요!
'주민 여러분의 많은 이용 바랍니다.' 의미 없는 문구입니다. 지하철 역에서 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는 사인판 중에 '이용해주세요!'라는 문구를 보신 적이 있나요.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화장실을 찾을 때가 있지만, 단언컨대 '이용해주세요!'라는 사인판을 본 적이 없습니다. 왼쪽, 오른쪽... 100m 정도죠.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할 때 돈을 받아도 필요한 사람은 이용합니다. 물론, '왜 돈을 받아!'라고 불평은 하겠지요.
홈 쇼핑은 '이용하세요!'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놓치지 마세요!' 또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라고 합니다.' 홈 쇼핑의 물건을 사지 않으면, 당신은 무언가 손해 본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논리를 따라 하면 '이용하세요'라는 것보다 '담주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오늘 저녁거리가 없다면', '이 추운데 가까운 곳에서' 등이 어떤지요.
세탁기 사용 금지 안내문
현재 한파로 인하여 동파된 세대가 있어 세탁기 사용시 세대 안으로 물이 역류하오니 세탁기 사용을 금하여 주시기 바라며, 최상층이나 복층 세대는 각별히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말부터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은 안내문이다. 세탁기 쓰지 말라는 말이다. 한 숨에 읽기에 문장이 길다. 소리 내어 읽으면, 두 번은 쉬어야 한다. 이런 문장은 짧게 끊어야 읽기가 편하다.
'추위로 동파된 세대가 있습니다. 세탁기를 사용하면 세대 안으로 물이 역류합니다. 세탁기를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최상층과 복층 세대는 각별히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동파'가 궁금하다. 뭐가 얼어서 깨졌는데, 세탁물이 역류할까? '동파'는 상수도관 또는 계량기가 얼어서 깨지는 것인데.. 세탁물이 역류한다면 하수도관이 얼었다는 의미인데. 또, 왜 최상층과 복층 세대는 신경을 더 써야 한다는 말인가.. 몇 층이 동파되었던 그 위층은 모두 세탁기를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상황이 이해가 되어야 협조를 할 것 아닌가..
도움을 요청하는 글은 읽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이유가 불분명하면 행동의 동기가 생기지 않는다. '7층이 동파되었습니다. 세탁기를 사용하면 7층에 물이 역류합니다.' 내가 세탁기를 사용하면 7층이 피해를 본다. 협조할 이유가 보다 명확해진다. 6층 이하는 걱정없이 세탁기를 쓸 수 있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본 공사 안내문이다. '시간이 걸려도 철저히 고치겠습니다!'. 정확한 워딩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전의 안내문과 다르다. 예전은 '공사로 인해 보행의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정도 일거다.
'죄송하다'고 써져있지만, '죄송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저 많이 본 형식적인 글이다. '시간이 걸려도 철저히 고치겠습니다'. 는 다르다. 뭔가 감흥이 온다. 이 사람들이 대충하지 않고 꼼꼼히 일하는구나. 불편해도 내가 조금 참자 하는 생각이 든다.
보고서 작성도 비슷하다.
한 말 또 한다고 전달이 더 잘되는 것이 아니다. 또 말을 길게 한다고 상대가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보고서는 짧고 간결해야 한다. '세탁기 안내문'처럼 쓰는 사람만 아는 글이면 안된다. 지하철 안내문처럼 예전과 다른 표현을 쓸 수 있으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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