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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전략

네덜란드로부터 배우는 하이테크 산업 생태계 조성의 지혜

by 권석준 Seok Joon Kwon

2018년 기준, 세계 수출입액 상위 국가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을까?

(출처: https://howmuch.net/art.../the-worlds-biggest-exporters-2018)


Total Exports of the World : $ 19,600B

1. China: $2,500 B (EA)

2. United States: $1,700 B (NA)

3. Germany: $1,600 B (EU)

4. Japan: $738 B (EA)

5. Netherlands: $723 B (EU)

6. South Korea: $605 B (EA)

7. France: $582 B (EU)

8. Hong Kong: $569 B (EA)

9. Italy: $547 B (EU)

10. United Kingdom: $486 B (EU)

11. Belgium : $467 B (EU)

12. Mexico: $451 B (NA)

13. Canada: $450 B (NA)

14. Russia: $444 B (EU)

15. Singapore: $413 B (SA)


Total Imorts of the World : $ 19,600B

1. United States: $ 2,600 B (NA)

2. China: $2,100 B (EA)

3. Germany: $ 1,300 B (EU)

4. Japan: $749 B (EA)

5. United Kingdom: $674 B (EU)

6. France: $673 B (EU)

7. Netherlands: $646 B (EU)

8. Hong Kong: $628 B (EA)

9. South Korea: $535 B (EA)

10. India: $511 B (SA)

11. Italy : $501 B (EU)

12. Mexico: $477 B (NA)

13. Canada: $469 B (NA)

14. Belgium: $450 B (EU)

15. Spain : $388 B (EU)

16. Singapore: $371 B (SA)


위의 자료에서 보다시피, 무역규모 부동의 1, 2위는 역시 미국과 중국인데, 수입과 수출 랭킹이 정반대다. 중국은 수출 1위, 수입 2위, 미국은 수출 2위, 수입 1위다. 특히,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는 $900B 정도로, 캐나다의 전체 수출입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세계 무역이 돌아가는 원동력 중 하나가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감당이라는데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만), 규모를 숫자로 확인하고 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작년 기준으로 세계 상위권 수출입 국가들의 분포는 1-4위까지는 수출-수입 순위가 같으나, 5-15위까지는 꽤 변동이 있다.


네덜란드 : 수출-수입 (5-7)

한국 : 수출-수입 (6-9)

프랑스 : 수출-수입 (7-6)

홍콩 : 수출-수입 (8-8)

이탈리아 : 수출-수입 (9-11)

영국 : 수출-수입 (10-5)

벨기에 : 수출-수입 (11-14)

멕시코 : 수출-수입 (12-12)

캐나다 : 수출-수입 (13-13)


대략 무역 규모 15위권 이내에서, 적자 규모보다는 랭킹 기준으로 수출이 수입보다 앞선 나라는 네덜란드, 한국, 이탈리아, 벨기에, 러시아, 싱가포르 정도다. 이중 아시아권은 한국과 싱가포르가 유이하고, 대부분 유럽이다. 반대의 경우는 프랑스, 영국, 인도, 스페인 정도가 해당한다. 역시 아시아권은 인도가 유일하다.


여기서 주목할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가 좁은 국토 면적, 적은 인구수, 부족한 지하자원과 유리하지 않은 지리적 입지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출입 모두 상위 10위권 이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는, 네덜란드의 강력한 제조업 기술력이 자리 잡고 있다.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입지는 특히 네덜란드가 이룩하고 있는 하이테크 기술의 풍족한 생태계에 기인한다.


이미 앞선 글에 네덜란드의 전 세계 노광장비 1위 업체 ASML, 그리고 그들이 이루고 있는 하이테크 생태계가 기술 경쟁력 확보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했다. 네덜란드에는 ASML 뿐만 아니라, 약 30개의 반도체 주요 공정 관리 및 설계, 반도체 부품, 초소형 정밀기계 기술 (MEMS, Micro Electromechanical Systems), 포토닉스 (photonics) 등 세부 분야에도 전문 기업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림 1 참조). 예를 들어,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기자재를 생산하는 ASMi (ASM International), Boschman Techonologies, BESI 등이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능을 통합한 혼성신호 집적회로를 개발하는 NXP는 지난 2015년 12월, 미국의 반도체 기업인 프리스케일 (Freescale) 반도체를 인수하며 세계 최대의 자동차 반도체 (ECU)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하기도 했다. 2018년 기준, 네덜란드의 반도체 소재 및 부품, 장비 중소기업들의 매출은 굉장히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VDL Enabling Technology의 경우 6.0억 달러,

ASM International의 경우, 0.9억 달러, BESI의 경우, 0.5억 달러, Assembleon의 경우 0.2억 달러 수준이다. 또한 제작 공정 관리기술을 연구하는 5개의 연구 기관이 업체들의 생태계의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응용과학 연구소 (TNO, Netherlands organization for Applied Scientific Research), 네덜란드 에너지 연구센터 (ECN, Energy Research Centre of the Netherlands) 등이 대표적인 기관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들.png 그림 1. 네덜란드의 주요 반도체 기업 (출처: dutchopticscentre.com)


2018년 3월, 네덜란드는 정부 주도로, 자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반도체 장비 산업 혁신 어젠다 3개년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어젠다를 들여다보면, 주로 차세대 반도체 공정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다양한 프로젝트 그룹이 TKI 프로그램이라는 산학 연계 리소그래피(노광) 관련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연구개발 비용은 TKI 펀드가 반도체 장비 관련 연구기관 및 대학의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조달한다. 또한 유로권 내에서 국제협력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특히 7 나노 공정과 300mm 웨이퍼 제조 장비에 국제 협력을 집중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를 위해 유럽연합의 전자산업 제조 역량 강화사업인 ECSEL 혹은 마이크로 및 나노 전자공학 시스템 클러스터인 PENTA에 노광 및 계측 공정 중점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궁극적으로는 유럽산 반도체 공정 장비를 갖춘 7 나노 이하 300mm 웨이퍼의 고수율 생산 라인 확보다. 어젠다의 주요 파트너는 ASM, ASML, Mapper, Thermo Fisher 같은 네덜란드 OEM 기업과 BESI, ALSI, SolMateS, Bronkhorst 등, 앞서 언급된 기업보다 더 작은 규모의 기업들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그림 1에 있는 각종 기업들이 긴말한 협력 관계를 이룬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 기간 동안 총 6억 유로를 투자하며 연구개발의 뒷받침을 담당한다.



ne01.jpg 그림 2. 한국의 하이테크 산업 밸류 체인 공급국의 분포도


네덜란드가 이렇게 첨단 하이테크 산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이끌어 갈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이테크 산업의 밸류 체인 (supply chain)을 강고하게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 그림은 2018년 기준, 한국의 첨단산업 밸류 체인 (서플라이 체인)의 분포 통계다. 예상했던 대로, 첨단산업에 필요한 핵심 부품의 1/3 정도가 일본에서 수입되고 있어,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예상외의 사실로 다가올 것은 아마도 핵심 소재 및 부품의 1/5 이상이 독일이나 영국이 아닌 네덜란드로부터 수입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사실 네덜란드는 풍차 국, 튤립 국, 간척지 개발해서 잘 살게 된 나라, 그 이상이다. 특히, 네덜란드는 전형적인 강소국인데, 일찍이 해상 교역과 금융 산업에 눈을 떠, 중상주의 정책 (예를 들어 동인도회사 설립 등)과 공업 입국 정책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광학 산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였다.)을 추진해 오던 나라며, 21세기에도 유럽의 제조업 강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첨단 산업, 예를 들어 전자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고부가가치 소재의 점유율은 네덜란드가 늘 상위그룹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2017년 기준으로, 세계 소재 시장 규모는 1조 유로를 넘겼으며, 이는 2008년 6,500억 유로의 시장 규모를 기준으로, 연평균 6%로 성장한 수치다. 이중, 네덜란드의 소재 산업은 200-250억 유로 정도인데, 이는 네덜란드 GDP의 27%를 차지하는 주종 산업이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전자기업 필립스가 세계 최초로 CD를 제조한 회사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 네덜란드는 플라스틱과 고분자 재료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눈을 뜬 나라였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이미 1990년대 초반, 고분자의 응용 가치에 눈을 떠, 정부 주도로 중합체 연구소(DPI)와 혁신 소재 연구소(M2i)를 설립하여 첨단 소재의 기초-응용 연구를 주도하고 있으며, 이후 기초과학연구원 (NWO), 물질 기초연구재단 (FOM), 하이테크 산업 소재 기업집단 (HTMS) 등이 파생되어 나와, 계속 양의 되먹임 체인을 이루며, 자국의 소재 산업 성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2017년 현재, 네덜란드에는 1,700 개에 달하는 소재 연구 개발 기업이 산재하고 있으며,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전자 재료 산업 육성이 시작되어, 2017년 현재는 전 세계 실리콘 칩의 90% 이상에 네덜란드 기업이 제조한 부품이 포함되고 있는 수준에 올라 있다.


ne02.jpg 그림 3. 네덜란드 전역에 분포한 산학연 클러스터의 중심지 및 그 구심점 역할을 하는 연구중심대학
ne03.jpg 그림 4. 네덜란드 전역의 반도체 관련 하이테크 산학연 주요 파트너사와 대학들의 위치

당연히 이러한 정부 주도의 소재 연구는 대학과도 긴밀히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연구 중심 대학들이 전국에서 클러스터를 이루며 이런 네트워크 기반의 소재 산업 융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세 번째와 네 번째 첨부한 지도에서처럼, 우리나라에도 이름이 잘 알려진 Utrecht Univ, Leiden Univ, TU Eindhoven, TU Twente, Groningen Univ, AMOLF, TU Delft 같은 대학 및 연구 기관들이 전국 곳곳에 산재되어, 구조 재료, 광학 재료, 전자 재료, 생체 재료 등 첨단 소재 산업의 기초부터 응용, 그리고 산업 수준에서의 연구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TU Eindhoven은 배후에 Brainport 나 High Tech Campus Eindhoven (HTCE) 같은 산업단지와 연계되어 있으며, TU Twente 역시 배후에 Knowledge Park Twente (Kennispark Twente) 같은 산업단지, 그리고 TU Delft는 Yes! Delft 같은 산업단지와 연계되어 있다. 특히, HTCE 같은 산업단지에는 필립스, NXP, IBM, 인텔 같은 첨단 IT 기업들의 연구소가 입주하여 산학 공동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톱클래스 산학 공동 연구단지로 손꼽히고 있을 정도다. 또한, TU Twente 주변에 있는 MESA+ 같은 산학 연구단지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나노기술 R&D 기관이 위치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세계적 경쟁력을 보이는 소재 산업은 거의 대부분의 영역이지만, 특히 고분자 기반 소재 기술에 강점을 보인다. 잘 안 알려진 고분자 기술 기업으로서, 수프라 폴릭스 (SupraPolix) 같은 회사가 있는데, 이는 접착제, 특수 코팅, 의료용 고분자에 적용되는 첨단 유기재료를 제조하는 회사다. 이 회사의 SupraB 같은 재료는 기존의 범용 플라스틱과도 섞여서 활용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재료가 범용 플라스틱 고유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크게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시에, 이 재료는 주 고분자 재료의 분자량을 감소시킴으로써, 가공성을 높일 수도 있고, 강도를 제어하여, 자기 회복능력 등의 추가 특성을 유도할 수 있어, 활용 범위가 상당히 넓다. 또한, Fokker Aerostructures 같은 회사는 구조재료에 특장점을 보이는데, 이 회사의 에이스 격인 제품인 GLARE는 성질과 구성이 벌크 알루미늄판과 유사한 복합재료지만, 벌크 알루미늄에 비해, 내식성, 내염성 그리고 항복 응력이 더 높은 동시에, 밀도는 더 낮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 재료는 Airbus A380에 적용되어, 이 항공기의 연비를 크게 개선시키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당연히 네덜란드가 추구하는 제조 입국은 자국에서의 소비보다는 수출을 타깃으로 하는 정책의 일환인데, 특히 완성 부품을 제조하는 한국이 네덜란드 소재 기업의 주 고객이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은 네덜란드 기업으로부터의 재료와 부품 수입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으며, 앞으로 AI, IoT, 자율주행차 등의 분야에 필요한 부품과 소재 역시 네덜란드 산학 R&D 기관들의 선점 효과가 당분간 이어져, 대 네덜란드 수입 비중은 계속 높아질 전망이다. 최근 한-일 경제 관계 경색 국면에서, 네덜란드는 아마도 이러한 국면에 대한 분석을 면밀히 진행하고 있을 것이며, 한국의 테크 회사들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한 네덜란드 제로의 대체 가능성을 동시에 면밀히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정부 및 민간 소재 관련 연구소들과 네덜란드의 산학 R&D 기관과의 면밀한 협조 및 공동 연구 기관 설립 등은 선제 대응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이미 네덜란드의 각종 첨단산업 연구단지에 입주한 국내 기업들의 R&D 파트도 규모를 더 확장시켜, 네덜란드로부터의 서플라이 체인 강화에 투자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40% 수준밖에 안 되고, 인구는 1/3 수준 밖에 안 되는 그야말로 소국이지만, 제조업 기반의 탄탄한 산업 경쟁력과, 첨단 기술에 대한 R&D 투자가 선순환이 되어, 첨단 기술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에 이른 강국이다. 처음에 언급한 통계치에서 자세하게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싱가포르 역시 한국의 수입 비중에서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제조업 강국 중에 하나인데, 싱가포르도 면적과 인구로 따지면, 네덜란드보다 훨씬 더 작은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경쟁력이 강력한 까닭은 NUS나 Nanyang Tech 같은 세계 수준의 대학들이 산업과 강력하게 연계되어 R&D를 드라이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네덜란드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와중에도, 이왕 대 일본 소재-부품 의존도를 낮출 요량이라면, 네덜란드 그리고 싱가포르 같은 강소국의 성공적인 산-학-연 네트워크의 강력한 첨단 소재 및 부품 R&D 드라이브 정책을 제대로 배워서 한국의 것으로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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