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은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2020년대 미-중 반도체 전쟁과 업계의 합종연횡으로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출렁이는 가운데, 앞서 언급한 엔비디아의 ARM 인수 소식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전략 수정을 강요하는 사안이 될 수 있다. 이미 ARM과 전략적 제휴를 하고 있기도 했던 삼성 입장에서도 굉장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삼성을 비롯하여 본격적으로 SoC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노리고 있는 다른 업체들 입장에서도 이는 시장의 본격적인 개편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제 과거 인텔과 AMD로 양분되던 시장의 판도 역시 예측을 불허하는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다. 관건은 엔비디아가 과연 ARM에 투자한 결정이 실제로 시장을 제대로 읽은 것인지, 시장의 변동성이 엔비디아의 경영 능력으로 통제 가능한 범위인지, 그리고 모바일 시장과 AI 데이터 시장의 성장이 지금처럼 충분히 시장의 이해 범위 내에서 지속될 것인지 여부일 것이다. 한국 기업들, 특히 SoC 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들은 엔비디아의 향후 로드맵을 주의 깊게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은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반도체 산업과의 커플링으로 인한 불확실성 요소를 줄여나가는 것에도 집중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 중국이 반도체 시장에서 고립되면 단기적으로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수익성이 약화될 것이고, 세계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어 반도체 시장의 불황이 찾아올 수 있다. 이미 2019년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미-중 반도체 전쟁의 산업적 영향력 평가 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 두 나라 사이의 반도체 기술 전쟁이 지속될 시, 중국뿐만 아니라 반도체 산업 전체적으로 매출 감소와 투자 저하로 인한 시장의 축소 및 활성도 저하가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중장기적인 부정적 요인과 더불어, 한국과 중국에 있는 한국의 반도체 소재/부품 업체들의 수익성 역시 대부분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미-중 반도체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중국 의존도가 높은 일부 업체들은 수익성 악화로 인해 적자 신세를 면키 어렵게 될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중국 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던 시장을 한국이 점유함으로써 다시 수익을 회복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이라는 시장이 고립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도 한국에 득만 되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 가급적 화웨이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IT 대기업의 장비와 소재/소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술적, 산업적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 하며, 공급처 대변화, 기술 격차를 위한 R&D 투자 집중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반도체 산업의 대기업 중심으로 업계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은 매우 유효하고 중요한 전략이다. 일례로 SK하이닉스는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 관련 수출 규제가 발효된 이후, 국내 반도체 산업 클러스터링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대만 등지에 분포한 반도체 제조, 장비, 소재 기업들을 한국으로 불러 모아 같은 지역에서 클러스터를 형성하여 한국에서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와 더불어 향후 하이닉스가 추진하려는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 공정 효율을 높이려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무역 제재를 피하기 위해 미국 기업이 만드는 반도체 소재나 장비보다는 일본이 만드는 소재나 장비 위주로 국산화를 추진하는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전략은 산업통상부와의 세심한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일본의 기업이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 주도의 클러스터로 들어오려는 것에 대해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 부여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고, 기업은 이에 기반하여 자사가 주도하는 산업계 클러스터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 기업은 이렇게 변동성이 증폭되는 상황에서도 핵심 기술 인력과 IP를 보호하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제재 압박 속에, 어떻게든 살아 남기 위해서 전방위로 공격적 비즈니스를 펼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계속 한국의 반도체 엔지니어에 대한 노골적인 스카우트 제의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TSMC로부터 인력과 기술 공급, 장비와 재료 수급에 난항을 겪게 될 처지가 된 SMIC는, 당연히 그다음 옵션이자 TSMC의 차선책인 삼성전자, 그리고 SK하이닉스에 대해 눈독을 들일 것이고, 특히 인력에 대한 부분에 더 공을 들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핵심 인력이 유출될 경우, 그 과정에서 일부 핵심 공정 및 설계 기술이나 차세대 반도체 소재 및 설계 기술들이 유출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최악의 경우 기술이 유출된 기업은 결국 중국에게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두 회사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럽게 상황을 모니터링하며 통제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이직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 인재가 핵심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이직하는지 여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AMD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다, 1994-2011년 TSMC에서 파운드리 부문 R&D 책임자로 재직 후, 2009년 성균관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로 영입되었다가, 다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시스템 LSI 사업 부문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재직 후, 2017년 SMIC의 공동 CEO로 영입되었던 량멍쑹 (梁孟松, 1952년생) 같은 인물은 SMIC가 오랜 기간 굉장히 공들여 영입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양 회장은 AMD는 물론, 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기업 방식과 반도체 관련 기술 정보를 상당 부분 가지고 있으니, 정말 SMIC 같은 후발 주자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핵심 인재였을 것이다. 실제로 양 회장 합류 후, SMIC는 28 nm에서 멈춰 있던 패터닝 공정이 14 nm로 갑자기 급진전되는 성과를 이룩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앞으로는 이와 비슷한 핵심 기술 인재 영입은 이제 미국의 제재 조치 하에서 상당 부분 제동이 걸리겠지만,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는 SMIC의 공격적인 영입 정책은 TSMC, 삼성전자, 그리고 여러 중소규모 반도체 설계/공정/소재/장비 업체로 공격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9월 초, 한국의 한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중국에서 근무할 D램 설계자를 모집한다”는 구인 공고가 올라왔는데, 자격 요건으로 “S, H 반도체 관련부서 근무자 우대”라는 문구가 노골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즉, 한국의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기술 인력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특히, 해당 구인 공고의 요구 업무로서, ‘10 나노 DDR4 설계’라는 부분은 중국의 반도체 업계가 지금 어느 부분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렇듯 인재 경쟁에 대한 분위기가 점점 노골화될 것임이 확실한 가운데, 한국 입장에서는 핵심 인재로 분류되는 반도체 엔지니어들과 R&D 공정 및 설계 인력에 대한 대우 수준이 반드시 SMIC 이상으로 격상되어야 할 것이며, 기술 보안에 대해서도 지금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중국 발 반도체 굴기는 핵심 장비는 물론, 주변 국가들의 S급 핵심 인재 쟁탈전으로 번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개별 회사 차원과 더불어, 국가 차원에서도 충분히 문제를 인지하고 현실적인 수준 이상으로 파격적인 기술인력 대우 및 기술 유출 방지 전략 수립 등, 다각도로 대응 전략을 짜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