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전략

한국의 연구자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by 권석준 Seok Joon Kwon

한국의 반도체 원천 기술 역시 이러한 반도체 신소재 분야의 선행 연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동일한 맥락에서 볼 때, 현 상황은 사실 걱정스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앞서 살펴보았듯, 중국의 연구개발 투자는 점차 가속화되고 있다. 그들의 연구개발 성과의 질과 양 모두 한국을 압도한다. 그렇지 않아도 신소재 선행 연구 관련하여 한국과 중국은 겹치는 포지션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신소재 관련 저명 학술지인 Advanced Materials이나 Advanced Functional Materials 紙 같은 경우, 한 호에 나오는 수십 편의 논문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 주저자/책임저자인 논문, 그리고 적어도 15-20% 정도는 한국인이 주저자/책임저자인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머지는 일본, 유럽, 미국 저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결국 신소재 연구의 파이 싸움은 한국과 중국의 양강 구도로 흘러가는 모양새인데, 점점 중국인들이 그 포션을 넓혀가고 있고, 한국 연구진의 성과는 점점 경쟁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아마 5년 내로 이들 신소재 기술 관련 저명 학술지의 중국인 저자 비율은 70-80%까지 육박할 수 있고, 나머지 신소재 관련 ACS Nano, Nature Materials, Nature Nanotechnology, Nature Photonics, Physical Review Letters, Physical Review B,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Chemistry of Materials, Small, Angewandte Chemie 같은 재료과학, 반도체 소재, 물리학, 화학 분야의 국제 저명 학술지들에서의 추세도 그리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재료과학뿐만 아니라, 사실 중국은 학문 전 분야에 걸쳐, 그것이 응용이든 기초든, 가리지 않고 학문을 할 사람이라면 천인, 심지어 만인 계획까지 내세우며 무조건 나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긁어모으고 있다. 특히 성과에 비례하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책정함으로써, 상상 이상의 고액의 연봉을 보장함으로써 A, S급 세계 수준의 학자들을 대거 채용하고 있다. 조교수급 교원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풍족한 연구비 수주를 통해 몇 년 안에 랩에 50명 가까운 대학원생, 박사 후 연구원들이 우글거리게 만들 수 있을 정도다. 잘 나가는 조교수는 그 해 받아 가는 인센티브가 자신이 속한 대학의 총장 연봉보다 많은 경우도 허다하다. 5명짜리 랩에서 나오는 쥐어짜 나오는 논문과, 50명짜리 랩에서 공장 돌리듯 나오는 논문이 맞붙는다면, 전투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는 굳이 따져 보지 않아도 된다. 규모와 투자에서 밀리는 경우라면, 결국 밀리는 쪽은 전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일부 잘하는 분야에 대해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고, 양보다도 질에 집중하는 전략만이 장기적으로는 살아남는 길이 될 터인데, 문제는 중국은 선택과 집중이라고 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전방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고, 그 퀄리티도 예전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매년 급상승 중이니, 한국은 이미 추월당한 분야는 점점 격차가 벌어질 것이고, 아직 약간이라도 앞서 있는 분야마저 몇 년 안으로 중국에 따라 잡히게 될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중국과의 반도체 기술 이전, 그 뿌리가 되는 학문의 전쟁에서 도저히 이길 방도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두려운 한국의 반도체 산업 위기 시나리오 중 하나는 한국의 이공계 분야 기초, 응용 연구가 결국 중국에게 점진적으로 학문적으로 종속되는 경우다. 앞서 이야기한 중국 정부의 연구비 펀딩 문제와 더불어, 각 저명 과학기술 학술지의 편집진이나 평가자가 중국 국적의 연구자들로 도배되다시피 했을 시, 중국과 어떤 식으로든 연계가 되는 학자들이 조금 더 유리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학문적으로 예속될 가능성이 보인다. 매년 급증하는 한국 내 중국 유학생, 특히 대학원생과 박사 후 연구원들이 학위나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하는 경우 역시 점점 늘어날 텐데, 그 과정에서 그나마 가지고 있던 한국 연구 중심대학들의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 경쟁력은 점점 저하될 가능성도 문제적 요소다.


중국은 자국의 재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기초 학문 연구에 막대한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쏟아부을 것이고, 이는 시차를 두고 세계 속에서의 중국의 학문적 포지션을 높이고 그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발현될 것이다. 불운하게도 우리나라는 이에 대해 군비경쟁을 중국에 맞춰서 무작정 따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정부와 회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연구개발에 매진하되, 고부가가치 분야로의 선택, 초격차를 위한 집중적인 전략 투자, 연구개발인력의 고급화와 정규직화, 세계 최고 수준에 맞춘 임금의 상향 보전 등으로 이 격차를 최대한 벌어지지 않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기술의 종속 이전에, 학문의 종속이 시작되면 결국 기술의 뿌리, 산업의 맹아부터 종속이 된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한국은 이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반드시 학문의 뿌리, 특히 기초과학의 뿌리를 지켜야 한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중국이 양으로 음으로 중국 회사든, 중국 정부든, 연구비를 한국 연구자들에게 개방 형태로 수주하게끔 허락하는 경우인데, 그렇지 않아도 연구비에 목마른 한국 연구자들이 이러한 펀드를 받을 경우, 연구 IP가 중국에 귀속되는 것을 막을 방도가 별로 없다. 지난 2020년 9월 초, KAIST의 교수가 중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연구 프로젝트 협약 조건을 잘못 이해하여 자율주행차 관련 첨단 센서 기술인 라이다 (Lidar) 원천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중국으로부터, 특히, 중국 정부 기관이 아닌 공산당 산하기관인 판공청이 관여하는 이른바 ‘천인계획 (千人計劃/The Recruitment Program of Global Experts)’ 프로젝트는 대부분 과제 협약 조건에 독소 조항이 있다. 그것은 연구비를 수혜 받는 연구자가 중국 측과 연구 성과를 공유해야 하며, 나중에 논문이든 특허이든, 기술이전이라도 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중국 회사가 그 협상의 우선권을 갖게끔 만드는 조항들이 바로 그것이다. 재주는 한국인이 부리고 돈은 중국 회사가 버는 구조가 21세기에 다시 재현될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국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반도체 차세대 연구 성과에서 나타날 가능성은 상존한다. 법을 잘 모르는 이공계 연구자들이나 교수들인 이러한 중국의 무차별적인 연구비 지원에 넘어가 한 순간에 기술 스파이로 전락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결론

한국에게는 이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미-중 간 첨단 하이테크 산업의 기술 전쟁은 이제 반도체를 넘어 통신, 이동수단, 생명공학, 우주개발, 에너지 등 모든 분야로 확장될 것이고, 한국의 핵심 이익은 이 모든 첨단 하이테크 산업에서 중국과 겹친다. 핵심 이익을 지키기 위한 산업 정책을 개혁하고, 인력 양성을 넘어, 인재 지키기, 그리고 확보하기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은 보다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분야로 집중되어 차세대 파괴적 혁신 기술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협상의 선수를 내어 줘서는 안 되며, 특히 그 상대가 중국 정부가 배경에 있는 중국의 IT 공룡들이어서는 더더욱 곤란하다.

keyword
이전 15화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