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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산업의 발전 전략

한국 정부는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by 권석준 Seok Joon Kwon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중 반도체 기술 전쟁이 이후 하이테크 산업 전반의 기술 전쟁으로 번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 미-중 기술 전쟁이 격심해지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선택의 여지가 점점 줄어드는 이런 급박한 상황일수록, 한국 정부는 첨단 하이테크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고유한 기술과 차세대 기술을 위한 잠재적 아이템을 확보하는 것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특히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는 한국이 주도하는 부분에 대한 격차를 초격차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초 당적인, 초 정권적인, 중장기적인, 그리고 집중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한 발 앞서 행동하고, 두 발 앞서 생각해야 하며, 세 발 앞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한국은 반드시 지렛대를 가져야 하며, 그것은 세계 기술 경쟁에서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요소 기술을 갖는 것으로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은 결국 바이오, ICT, 그리고 양자컴퓨터 같은 다양한 기술을 공통적으로 아우르는 대용량 데이터의 고속, 저전력, 초정밀 처리 기술의 혁신 싸움이고, 한국은 이 G2 거인들의 기술 혁신 싸움에서 어떤 표준과 어떤 로드맵을 구상할 것인지 매 순간 기술적 추이를 주의 깊게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미 한국 제조업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 (global supply chain)에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이로부터 분기되어 나갈 중국의 표준과 로드맵에 대한 모니터링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그 당시의 최고 수준의 첨단 기술을 반드시 여러 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ASML을 필두로 한 서유럽권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건실한 생태계 형성 노하우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ASML처럼 아쉬운 사람이 먼저 찾아 가 읍소할 수 있는, 그런 '수퍼을'의 지위를 갖는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국가 차원에서도 반드시 전략적으로 확보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인해 시작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 정책이 발효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필요하다면 재정적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을 잘 눈여겨보았다가 전략적 제휴를 핑계로 조금씩 그들을 인수하는 식으로, 사업의 다각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한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려는 일본의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도 더 선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들의 국내 투자를 유치하고 이들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에 편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또한, 최근 교체된 일본의 스가 정부가 전향적으로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철폐하는 등 화해의 제스처를 보인다면,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를 조금씩 회복시켜, 반도체 업계에 대해서는 상호 보완을 강화하여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공동 대응하는 전선을 펴 나가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차세대 반도체 산업 관련 기초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이미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및 부품 관련 수출 규제에 대응하여 한국 정부는 2019년 말부터 범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일명 소부장)의 국산화를 가속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증액해 오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 기술들의 더 아래 단계에 있는 차세대 원천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의 로직 반도체 아키텍처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기술에 대한 원천 연구가 산학연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구 장비 지원과 인건비 증액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인간의 신경계를 모사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멤리스터 (memristor) 기반의 뉴로모픽 컴퓨터 (neuromorphic computer), 자성 반도체 기반으로 전자가 아닌 양자역학적 정보인 스핀 (spin)이나 스커미온 (skyrmion)을 처리하는 스핀트로닉스 (spintronics), 기존의 탑다운 (top-down) 패터닝 방식이 아닌 나노재료의 자기조립 (self-assembly)를 이용하는 바텀업 (bottom-up) 방식의 초극미세 패터닝, 전자 대신 광자 (photon)을 이용하는 광 컴퓨터 같은 차세대 반도체 원천 기술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 이들 차세대 기술은 기업 입장에서 기술적 구현의 난도가 높고 투자금의 회수가 불확실한 기술들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기술 IP와 핵심 데이터의 확보에 주력하여 차세대 기술 개발의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ASML이 하루아침에 그러한 기술적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기술적 생태계의 심층을 이루는 기초 과학 투자를 더 다양하게 더 깊게 더 장기적으로 해야 함을 잊으면 안 된다. 규모에서는 중국과 상대가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기술력 중심 제조업의 경쟁력 유지에 대해 우리보다 작지만, 첨단 산업에 대한 기술적 경쟁력은 오히려 더 뛰어난 네덜란드의 케이스를 새삼 다시 한번 공부하고 우리의 것으로 취사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대외적 상황에 불확실성이 계속 증폭되고 있지만, 일단 정부는 산업의 중심을 잡으며 조금씩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며 반도체 산업의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는 장기적인 전략을 반드시 기업 및 연구계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유지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성균관대 같이 각 주요 공과대학에 반도체 계약 학과 같은 프로그램의 집중 신설을 차기 Brain Korea 사업 등을 통해 추진하고 반도체 과학기술 관련 석학에 대한 국립대 차원에서의 초빙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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