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대학 새내기 시절을 추억하며
Fourplay: Summer Child
https://www.youtube.com/watch?v=bjSAmgZf5nE&list=PLmBF17iCl3-3zq_NkI5uo5fE8YRo_wlDj&index=9
Earl Klugh: Days of Wine and Rose
https://www.youtube.com/watch?v=rMlwL8mtdxg&list=RDrMlwL8mtdxg&start_radio=1
음악에 취해 여의도의 그녀를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A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 시절 듣던 감미로운 선율의 재즈음악들이 연달아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내가 좋아하던 곡들은 이지 리스닝 계열의, 듣기만 해도 무척 행복해지는 그런 곡들이었는데, 지금 들어도 전혀 손색없는 곡들이다. 지금도 Earl Klugh의 Days of Wine and Rose를 들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대학원 시절에 지독히도 연구실에 적응을 못했었다.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르의 심정을 느꼈던 시기였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머신러닝의 많은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복잡한 선형대수학이나 확률론 베이스여서 수학을 웬만큼 잘하지 않고는 논문을 백 퍼센트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학원 입학 동기 중에 전기공학부 출신 친구가 있었는데, 내가 하루 종일 붙잡고 있었던 논문을 15분 만에 읽고 이해하고 교수님과 토론을 하던 녀석이었다. 비교되는 나 자신이 싫고 너무 지쳤었기 때문에 대학원 2학년 1학기 때 6개월 휴학을 신청했었다. 예전부터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꿈인 재즈 연주를 배우고 싶었던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였다.
아마 피아노를 조금 칠 줄 알았으면 재즈피아노를 배웠을 건데, 그 당시 그나마 가장 익숙한 악기가 독학으로 코드라도 조금 짚을 줄 아는 기타여서, 혜화동에 있는 서울재즈 아카데미의 주말 재즈기타 과정을 신청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이, 경쟁을 피해서 온 곳이 오히려 더 심한 경쟁의 장소였다.
나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의지가 많이 약했다고 느껴지는 게, 6개월 여의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성취를 이루려면 주중반을 신청해야 했는데, 한 번도 쉬지 않고 기차레일처럼 계속해서 앞만 보고 가다가 내 의지로 잠시 쉬어가는 이 소중한 시간을 온전히 기타에만 쏟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재즈아카데미 주말반에는 나와 달리 온통 독기만 가득한 수강생들이 모여있었다.
고등학교 때 레코드가게에서 우연히 Fourplay의 음악을 들었었다. 자유로운 재즈 선율에 홀려버린 나는 없는 돈 털어 다음날 바로 그들의 테이프를 사고 말았다. 빡빡한 수험생의 삶에서 음악은 어디 인터넷 유저의 유치한 표현대로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었다. 그때는 포플레이 앨범이 당대 최고의 재즈 뮤지션 4명이 모여 만든 실험적인 앨범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리더인 밥 제임스나 기타리스트 리 릿나워는 우리나라 티브이나 FM 오프닝 시그널에서 하도 써서, 한 번만 들어도 '아 나 이 음악 알아'라고 얘기할 많은 곡들의 주인이고, 베이시스트 네이썬 이스트와 드러머 하비 메이슨은 휘트니휴스턴, 퀸시존스 등 수많은 대가의 세션멤버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중에 베테랑이었다.
어째 재즈의 입문에 달콤함부터 발라먹어버린 느낌이었는데, 사실 재즈의 역사는 꽤나 복잡하다. 내가 들었던 포플레이의 음악은 퓨전재즈라는 장르로 기존의 재즈에 대해 왜 이렇게 어렵게 들어야 하는가라고 선언한 몇몇 뮤지션들이, 팝이나 락의 형식을 대폭 차용해서 다양하게 변형시킨 현대 재즈의 장르 중 하나이다. 특히 포플레이는 이지리스닝을 지향하는 음악으로, 듣고 있으면 굉장히 고급스러운 가운데 마음이 너무 평안해졌다. 대학에 입학하여 홍대 재즈카페도 다녀보고 했는데, 뭔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재즈가 아니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인 건 그즈음에 목동에 사옥이 있는 CBS FM에서 '이정식의 0시의 재즈'라는 재즈 전문 FM 방송을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도 지금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나라서 저 방송을 매번 듣지는 못했지만, 0시의 재즈 덕분에 재즈의 전반에 대해 많은 내용과 주옥같은 명곡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대표 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은, 사실 굉장히 어눌한 말투를 가지고 있어서 FM 방송의 DJ에는 어울리지 않는데 오히려 그런 면이 참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큰 향수로 다가온다. 목동에 새 사옥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CBS FM은 당시에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오픈 스튜디오, 요즘 말로 보이는 라디오였다. 재밌게도 'CBS 0시의 재즈'로 네이버 검색을 해보니 이런 CBS FM의 게시판 글이 검색된다.
특별한 사람들의 만남에 특별한 당신을 초대합니다.
0시의 재즈 오픈 스튜디오..... 이정식 진행자와 함께.......
아늑한 재즈의 노랫소리와 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하나의 공통점인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오랜만에 재즈에 폭빠져 보고자 합니다...
많은 신청 바랍니다.
나는 집도 가깝겠다 이 오픈스튜디오에 참가 신청을 했고, 당첨이 되었으며, 난생처음 뮤지션을 코앞에서 보고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재즈의 열망으로 참가신청을 한 뒤, 연주가 막 끝난 음악에 흠뻑 빠져 정신을 못 차리던 A를 만나게 되었다. 서울 소재 여대의 새내기였던 그녀는 어제 막 미용실에서 한 듯 한 곱슬곱슬한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나도 1학년때 예의 내 파마머리가 떠올라 웃음이 나면서도 좋은 인상이었다.
그때는 이미 소개팅으로 만난 와이프를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다른 감정도 없이 그냥 같은 음악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친근하게 느꼈을 뿐이었다. 오픈스튜디오를 마치고 목동의 지리가 익숙한 내가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준다고 했던 거 같고, 어찌어찌 연락처를 교환했던 것 같다.
사실 연애가 처음이었던 상황이라 모든 게 삐걱댔던 와이프와는 달리, A와는 어떤 긴장감도 없었기 때문에 이 음반 들어봤어요? 짱이죠? 뭐 이런 식의 메시지를 교환하며 서로 음악을 들은 감상도 나누고 대학 새내기의 고민도 들어주고 그랬었다. 나는 더 풀어지고 편해졌던 상황이라, A가 같이 영화 보자고 했을 때도 그냥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같이 갈 사람이 없나 보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대학원이던 시절이었으니 나이차가 4년은 났을 거라 나는 진짜 A가 너무나도 어린 여동생으로 보였고, 하는 행동들이 귀여웠을 뿐이었다.
영화 제목은 기억 안 나는데 굉장히 심각한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참 몰입해서 보는데, 어느 순간 피곤하다며 A가 나에게 머리를 기대 왔다. 그 뒤로는 영화 내용을 전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내가 A에게 소개팅으로 만난 여자가 있고 지금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제대로 얘기해 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너무 힘들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가슴이 쿵쿵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영화가 끝났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면서 나는 피곤했나 보네 하면서 어색하게 그녀의 고개를 다시 세워주었고, 그녀도 조금 당황한 모습으로 네 어제 과제하느라 피곤했나 봐요 라며 영화관 의자에서 일어났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해명하기에도 어색한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지하철역까지 A를 바래다준 뒤에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매사에 되게 희미하게 살았구나. 대학원도 여자친구도 내 의지가 확고하지 못한 채 떼밀리듯 누군가가 무언갈 해주겠지 하며 살았구나 라는 깨달음이었다.
그 뒤로 몇 번의 오픈스튜디오나 재즈카페에서 A를 만났지만, 나는 조금은 확고한 모습을 보였으며 우리는 다시 좋은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도 나처럼 대학 1학년 때의 아프고 달콤한 시행착오를 지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뒤에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A의 메시지에 축하한다고 연락한 게 마지막 메시지였던 거로 기억하고, 0시의 재즈 FM 방송도 한때의 불같은 재즈 유행이 차갑게 식어버린 어느 시점에 조용히 폐지가 되어버렸다.
대학원에서의 고통은,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워보고자 노력했던 상황에서의 6개월 휴학이라는 아픈 결말로 끝났고, 그 6개월 휴학 기간은 독기로 가득한 수강생들의 현란한 기타 소리에 또 다른 좌절로 끝나고 말았다. 몸도 마음도 못 버텼던 나는 허리디스크가 심하게 터져서 2개월간 걷지도 못하는 병원신세를 지고 말았고, 결국 그 당시에 막 국내에 도입되었던 내시경 수술로 신경을 누르고 있던 터진 디스크 조각을 제거한 이후에 가까스로 조금씩 나을 수 있었다. 그때 내 곁을 지켜줬던 여자친구를 보며 역시나 이 사람 없이는 못 살겠다 싶어서 결혼을 비교적 일찍 결심했고, 대학원 졸업 이후 지금 회사의 입사와 동시에 그해 겨울 결혼을 했다.
지금은 기본적인 재즈기타 코드도 제대로 짚지 못하지만, 음악이란 너무나 신비로운 것이라서 그때 한참 들었던 재즈 앨범을 들으면, 2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 하나에도 진심이지 못하지만 음악은 너무나 좋았던 그때로 돌아가곤 한다. A는 지금도 가끔 나처럼 그 시절 재즈음악을 들으며, 푸근했던 이정식 아저씨와 반짝반짝했던 CBS FM의 오픈 스튜디오와 나도 이제 여자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한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PS: 대학원 때의 모차르트 녀석은 지금 대학교수가 되어 컴공, 기계융합학과에서 로봇공학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고, 처음 0시의 재즈 오픈 스튜디오 행사 때 바로 현장에서 친필 사인과 함께 받았던 '이정식 in New York' 앨범은 이사하면서 CD를 잃어버렸다. 그 앨범의 수록곡 '뱃노래'를 유튜브로 찾아 듣는데 색소폰이 뽑는 구슬픈 우리나라의 판소리 선율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