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직장인으로서의 존경을 담아
나는 10년 넘게 목동 13단지에 살았다. 초등학교 5학년때 전학 와서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으니, 어찌 보면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우리 집은 양천구청 진짜 바로 코앞에 있는 아파트 3층이었는데, 공교롭게 아버지가 양천구청 부구청장으로 발령받았던 시기에 구청에서 아버지의 출근시간을 알리는 우리 아파트 관찰전담 당직이 있었다고 한다. 엄마가 매일 출근하는 아버지를 향해 구청 쪽 방 창문을 열어 손을 흔들어주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중에 그 얘기를 지금 하면 어떡하냐고, 자기 화장 안 한 민낯을 구청직원들이 다 보고 있었을 거 아니냐고 당황해하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직원들은 엄마를 자세히 보고 있을 새고 뭐고 없었을 거다. 우리 집 창문을 긴장하고 주시하다가 '부청장님 출근하셨습니다!!'라고 있는 힘껏 외쳤을 그 당시 구청 직원분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린다.
아버지의 양천구청 재직 시절에 민선구청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고, 그 시절 한나라당의 양천구 국회위원에게서 구청장 출마 제안이 들어왔다고 하셨다. 양천구는 보수당 텃밭이라 당선가능성이 무척 높았지만 아버지는 오랜 고민 끝에 고사를 하셨다. 좋든 싫든 구청장 출마를 하게 되면 본인이 정치와 엮이게 되고 가족이 평생 그런 정치의 부침과 함께하게 될 것이 싫으셨단다.
금전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당연히 들어갈 선거자금 외에 당에 헌납할 정치헌금을 요청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비슷한 루트로 다른 지역 구청장에 출마한 아버지 지인에게 들었다는 정치헌금 액수는 어마어마했다. 그분은 아까운 표차로 구청장 당선에 실패한 뒤에, 더 정치에 매달리기 시작하고 굉장히 안 좋은 말년을 사시다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약간은 보상성으로 보이는 다른 지역 구청장을 3개월 하셨고, 아직도 어디 가서도 구청장까지 하신 분이라고 소개를 받아서 그걸로 만족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부구청장으로 다른 구청에 보직을 받으셨고,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즐겁게 일하던 시기라고 하셨다.
민선구청장으로의 도전을 접은 이상, 아버지는 정말 진심으로 민원이 발생하는 곳마다 직접 찾아다니면서 그 지역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문제를 해결할 더 좋은 방법을 같이 고민하셨다고 했다. 이런 소문이 나면서 오히려 새로 당선된 민선구청장보다 아버지를 찾는 국장들이 더 많았고, 이게 오히려 아버지를 더 힘들게 하셨다고 했다.
몇 번이나 아니라고 얘기했는데, 민선구청장은 아버지가 인기를 얻고 세를 쌓아 다음 구청장에 도전하는 걸 두려워했던 건지 사사건건 아버지를 걸고 안 좋게 얘기하고 그러셨단다. 민선구청장 극 초기니까 그게 더 심했을 거라는 건 쉽게 상상이 된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 얘기가 더 공감이 간다.
아버지가 그렇게 힘든 걸 알았더라면, 대학시절 아버지 출근하시면서 차 같이 타고 가자고 할 때 많이 같이 타고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 들어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누가 알아본다고 대학교 근처 지하철 역 앞에서 기사가 모는 차의 차문 열고 내리는 게 뭔지 모르게 그렇게 부끄러웠다.
마지막으로 다른 지역 부구청장으로 발령받아서 거기서 공무원 정년을 거의 채웠던 아버지는 정년 1년 전에 서울 지하철 공사 감사직을 제안받으셨다. 당시 개인적인 친분이 없던 고건 서울시장이 추천했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고건시장이 관선 서울시장이던 시절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케이펙스라고 해당구청의 민방위 훈련 체계에 대해 고건 시장에게 설명을 해야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담당국장이 울렁증이 너무 심했는지 어땠는지 밑에 있던 아버지에게 그 역할을 떠넘겼다고 했다. 아마 아버지가 직접 보고를 했지 싶은데, 보고를 깔끔하게 잘하셨는지 이를 기억하고 있다가 십여 년이 지나 민선 서울시장이던 시절에 아버지를 감사역으로 추천하셨다는 거다. 고건 시장의 기억력도 놀랍지만, 그런 자리에서 떨지 않고 지적할 테면 지적해 봐라 하고 발표를 하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왠지 멋지게 느껴진다.
그렇게 아버지는 지하철공사에서 감사 역할로 마지막 근무를 시작하셨고, 나는 대학원을 마치고 한 IT 기업에 입사를 했다. 그때 방카슈랑스라고 금융 쪽 부서의 인기가 가장 높아서 입사한 동기들은 모두 그쪽을 가겠다고 손을 들었지만, 나는 내가 만들고 개발한 결과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지하철 요금징수 시스템 개발부서가 맘에 들었다.
그 부서에 자원한 건 나 밖에 없어서 쉽게 부서 결정이 되었는데, 재밌게도 원래 나는 그 부서 내정자였단다. 아버지가 서울지하철공사 고위직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신입사원이 되고 얼마 안 되어서 생전 처음 뵈었던 영업 부서 상무님께서 내 어깨를 치면서 아버지 잘 계시지?라고 말하고 지나가셨는데, 그때 부서 사람들이 나를 완전 낙하산 금수저인줄 아셨단다. 부서가 맘에 안 들었다면 회사생활이 힘들었을 텐데, 정말 내 적성에 잘 맞는 부서였으니 아버지와의 이런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여든을 훌쩍 넘은 아버지가 점점 어린아이처럼 투정도 많아지고, 단기기억력도 거의 없으시고, 벌써 수십 번 들었던 예전 얘기를 또 말하고 또 말하시지지만, 나에게 자랑하려고 열심히 방 서재를 찾아 홍조근정훈장 상패를 보여주시며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면 나는 얼마든지 또 감탄하고 감탄하며 그 시절 아버지 얘기를 들어드릴 수 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나도 내 가족에게 담담하게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회상해 보면 즐거웠다라고 얘기할 회사생활을 하고, 또 무사히 잘 마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