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맘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
마이즈 작가님의 브런치 글 (https://brunch.co.kr/@madmaiz/172) 에 댓글을 달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추억에 잠겨버렸다. 그때 목동의 '바다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을 이긴 나를 안 때리고 분한 마음에 애꿎은 의자를 발로 찼던 너무나도 마음씨가 착했던 그 형은 지금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까.
좋은 세상이라 요즘은 에뮬레이터를 이용해서 그시절 오락실 게임을 내 PC에서 마음껏 할 수 있다. 그 시절을 풍미했던 스트리트파이터2 게임의 전체 코드와 데이터가 8메가바이트를 넘지 않는다. mp3 곡 하나의 용량이 보통 그 정도 한다. 저 mp3 하나 용량의 게임에 나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의 수많은 추억이 서려있다.
처음 목동에 등장한 오락실은 아파트 주변 낡은 건물의 4층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컴퓨터 게임은 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컴퓨터를 활용한 응용장르일 뿐인데 그때는 왜 그게 그렇게 음침하고 불량한 이미지였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락실에 오는 초딩 -> 돈많은집 애들 -> 이 애들을 노리고 모이는 불량한 형들 뭐 이런 먹이사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형들에게 돈 뜯길걸 알면서도, 나는 안 걸릴 거야 라는 심정으로 콩닥콩닥 100원짜리 동전을 모아 찾아가게 할 만큼 오락실 게임은 매력적이었다. 이 부분의 설명은 마이즈 작가님 글 추천한다. 4층오락실로 불렸던 그곳은 너무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게임기를 모아놔서 공기도 안 좋고 숨쉬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은 조금 뒤에 생긴 바다오락실을 주로 애용했다.
바다오락실은 1층이 미장원인 건물 지하에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이 미장원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머리를 다 깎고 나면 야릇한 옷을 입은 아줌마가 냉장고에서 꺼내서 요구르트를 하나 주셨다. 요구르트에 무슨 마약을 탔는지 이걸 먹으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이 미장원만 다녔다. 그리고 지하 1층의 바다오락실도 PC에 본격적으로 빠지기 전까지는 정말 많이 다녔다. 돈도 없어서 소중하게 한 두 판을 하고 나서는 너무 아쉬운 마음에 그냥 다른 형들 게임하는 걸 뒤에서 한참 같이 보다가 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하교 시간이 조금씩 늦어지고 있는 걸 감지한 엄마가 수소문끝에 사랑하는 아들이 '바다오락실'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걸 알게되어 아버지에게 대책을 강구했고, 아들이 큰 비행에 빠지는 게 아닌가 걱정하신 아버지가 어느 날 큰맘 먹고 오후반차를 내고 나를 잡으러 바다오락실로 출동하셨다.
그날은 새로운 슈팅 게임이 나와서 그 게임을 해보려고 벼르고 별렀던 날이었다. 게임이 너무 어려워 보여서, 쉽게 소중한 백 원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형들 플레이하는걸 유심히 머릿속과 손가락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게임을 할 순간만을 기다렸다. 이제 어느 정도 됐다 싶었을 때, 차례를 기다려서 자리에 앉았고 백 원을 넣고 설레하면서 첫 게임을 시작했었다.
완전 초 집중 모드로 게임을 하느라 아버지가 뒤에서 보고 계시는 줄도 몰랐다. 게임은 온 사방에 포탄을 흩뿌리는 중간 보스에서 아쉽게 끝나고 말았다. 아쉬운 맘을 가득 앉고 일어서는데 아버지가 뒤에 계셨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가 오락실 다니는 거를 부모님이 모를 줄 알았기 때문에 더 놀랬던 것 같다.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정신 못 차리고 있는데 다정하게 웃고 있던 아버지가 한 마디 하셨다.
"재밌냐?"
그리고 집에 가자고 한마디 하시고 말없이 내 손을 붙잡고 밖으로 나오셨다. 어떤 원망도 매질도 없었다. 그때는 그저 혼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 뒤로도 몰래몰래 오락실은 계속 다녔으니까 정신 못 차린 것도 맞았다. 나중에 친구 컨닝하는 걸 도와줬다가 걸려서 학부모 상담으로 학교로 불려 가셨던 날, 나는 아버지에게 거멓게 붓도록 종아리를 맞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맞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참 지나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이때 일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저 어린 녀석이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게임을 준비하고, 또 그 게임을 몰입해서 하는 모습이 너무 어이없었다고 한다. 이해는 안 되지만, 소문과 달리 오락실이라는 게 불량한 공간이 아닌 느낌도 있었고 (아직 담배 피우는 불량한 형들이 출몰하기 전이었나 보다) 결정적으로 내가 너무 행복해 보였단다.
게임은 시들해지면 알아서 안 하게 된다. 심지어 게임을 통해 인생을 배울 수도 있다. 그냥 왜 그 게임에 빠지는지, 어떤 요소가 좋고 나쁜지 얘기만 잘 들어주면 된다. 중독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나쁜 게임만 잘 선별해서 그런 게임을 피하게 하면 된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말하는 나도 고등학교 때 공부시간을 너무 뺏겨서 PC를 다용도실에 처박아놓은 결정을 한 뒤에, 너무 게임이 하고 싶어서 추운 겨울에 콘센트를 길게 길게 연결해서 다용도실에서 추위를 참고 선만 연결해서 게임을 했었구나. 그래도 다행히 대학 잘 가고 잘 살고 있다.
뭔가 철학적으로 끝맺으려다가 내가 그런 글 쓸 위인이 못된 걸 자각하고 글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다. 이게 다 우리 시절 초딩이들의 마음을 뺏어갔던 캡콤 게임회사 너셕들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를 내고 있는 징한 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