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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15. 2024

쥐라기공원

내가 사진을 전공했던 캘리포니아의 ‘아트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 Art Center College of Design’에는 자동차디자인학과가 있다. 한 번은 모든 과가 함께 들을 수 있는 수업시간에 이 전공을 하는 학생과 쿠바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는 비록 아직 쿠바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쿠바는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가봐야 할 성지라는데 동의했다. 한 두대가 아니라 도로 위 거의 모든 자동차들이 클래식 모델인 나라는 쿠바 밖에 없기 때문이다.

       

쿠바는 자동차의 쥐라기 공원이다. 1959년 혁명 후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정부는 일체의 외제차와 부품 수입을 금지시켰다. 이때부터 사실상 쿠바 자동차 시장에는 빙하기가 찾아왔다. 새로운 자동차의 유입이 중단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주로 미국인들이 두고 떠난 자동차들이 60년도 넘은 지금까지도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멀쩡 하다기보다는 그냥 굴러다니고 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 것 같긴 하지만.


쿠바의 자동차 내부를 보면 아주 가관이다. 쉐보레 차체에 핸들은 닛산, 대시 보드는 현대, 배기구는 옛 소련제 라다 또는 중국제 지리 등 온갖 자동차 메이커 부품들이 뒤섞여 있다. 아니, 섞여 있다기보다는 그냥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총동원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심지어 농기계 등 다른 기계에서 떼어 오거나 직접 만든 부품들도 있다.


자동차용 부품이 아닌 것들도 쿠바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응용한다. 원래부터 손재주가 좋은 건지 아니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인지 몰라도, 이들은 대부분 국민이 거의 1급 자동차 정비사 수준이다. 그래서 쿠바의 거리 곳곳에서 자동차 수리하는 사람들을 언제나 볼 수 있다.


예전 쿠바에서 촬영한, 박보검과 송혜교가 주연한 <남자 친구>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거기에서도 그들이 처음 만나게 된 계기가 송혜교의 올드카가 갑자기 고장 나면서부터다. 송혜교가 차에서 내려 어쩔 수 없이 걸어가게 되면서 박보검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현실감 없는 설정이지만 쿠바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상이다.


쿠바의 차들은 또 너무 오래돼 거리 매연이 상상을 초월한다. 차 한 대가 출발하고 나면 순식간에 주변이 암흑으로 바뀐다. 몇 초동안 자동차 매연으로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 쾌쾌한 냄새에 한동안 속마저 메슥거린다. 아무리 국가에서 폴리코사놀을 공짜로 지급한다 해도 저런 매연을 매일 마시는데 어떻게 쿠바사람들 평균수명이 76세나 되는지, 그저 이상할 뿐이다.


      

그래도 쿠바의 올드카들은 멋지다. 특히 꼬리가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날렵하게 생긴 차들은 쿠바에 여행 온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시내 투어를 하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카피톨리오(옛 시청사) 근처에는 많은 올드카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쉐보레, 뷰익, 포드 등 클래식 자동차들이 많다.


그런데 그 차들의 관리상태들이 하나같이 훌륭하다. 그중 일명 ‘테일핀 (tail fin:꼬리지느러미)’이라 불리는 1959년식 ‘캐딜락 엘도라도’는 인기만점이다. 1950년대 미국에서 대유행했던 자동차 스타일이다.


이 차는 자동차 디자인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전설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할리 얼 Harley Earl 이 설계했다. 1948년 당시 GM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그는 2차 대전 중 이름을 떨친 전투기 ‘P38 라이트닝’의 꼬리 날개에서 그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처음 자동차에 적용된 꼬리는 그 크기가 작아 ‘생선꼬리(fish tail)’이라 불렸는데, 점점 크고 화려하게 디자인되어 1959년 캐딜락 엘도라도에서 그 정점을 이뤘다. 자동차 후미는 마치 상어 지느러미 또는 전투기 꼬리처럼 불쑥 튀어 올라오고, 후미등은 총알이나 불꽃을 연상시키는 형상이었다.


이 테일핀 스타일은 유럽에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미국만큼 유행을 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스타일도 1960년대를 지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1960년 후반에는 모든 자동차 디자인에서 자취를 감췄다.


1959년 혁명 당시 쿠바는 이 테일핀 스타일이 그 유행의 최고조에 있을 때였고, 바티스타 정권하 미국의 놀이터로 변한 쿠바에는 수많은 테일핀 자동차들이 굴러 다니고 있을 때였다. 지금 쿠바에 남아있는 테일핀 자동차들은 이때의 화려했던 향락의 낙원, 쿠바의 화석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클래식카는 말 그대로 오래된 차일뿐. 카피톨리오 근처, 잘 관리된 관광객용 차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쿠바의 차들은 폐차되기 일보직전이다. 특히 비 오는 날은 이 차들에게 최악이다. 아바나 시내는 배수시설이 좋지 않아 열대성 폭우가 한번 쏟아지면 금세 도로가 물에 잠겨 버린다. 그러면 여기저기 자동차들이 기다렸다는 듯 기절해 버린다.


한 번은 내 앞에서 자동차가 서 버린 적이 있었다. 나는 카메라를 재킷 품에 넣고 차 뒤로 가서 있는 힘껏 차를 밀어줬다. 하지만 차는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 그때 왁자지껄 길을 가던 젊은 친구들이 나를 보고는 뛰어왔다.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웃으며 차를 밀기 시작했다.


차는 금세 도랑을 빠져나갔고, 운전사는 손을 유리창 밖으로 뻗어 고마움을 표현하며 사라졌다. 쿠바 사람들은 남을 돕는데 익숙하다. 왜냐하면 그 결핍을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항상 나쁜 것은 없다. 쿠바는 그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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