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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Jan 22. 2024

미친년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노란색 버스가 들어온다. 서울 시내에 내놔도 손색없는 깔끔한 최신식 버스다. 대중교통수단은 수입이 허용되는 모양이다.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 몇 컷을 찍었다.


그런데 순간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였는지 뒤에 있는 할머니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무섭다. 혹시 나를 보는 게 맞나 싶어 좌우로 움직여봤는데, 몸은 미동도 안 한 채 눈동자만 나를 따라온다.


나도 모르게 버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진 찍는 흉내를 냈다. 한마디로 난 버스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란 해명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계속 노려보기만 했다. 옛날 괴기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 봤음직한 포스였다.


피하는 게 상책, 자리를 떴다. 50미터쯤 걸어갔나, 여자 둘이 한 손에는 우산을 든 채 어깨동무를 하고 합승하려 하고 있었다. 교통수단이 부족한 쿠바에서는 합승이 합법인데 둘의 모습이 정겹다.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돌아서는 순간, 다시 한번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이 할머니가 어느새 나를 따라와 내 뒤에서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거 아닌가.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대답이 없다.


내가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찍는 게 불만이신가. 아무래도 그냥 가는 게 나을 듯했다. 그렇게 자리를 벗어나는데, 몇 발자국 가다가 뒤돌아보면 그 할머니는 여전히 먼발치에서 흰머리 휘날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꿈에 나올까 두려웠다. 나는 땅바닥만 보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엄마로 보이는 여인과 딸로 보이는 20대 여자가 걸어가고 있었다. 아까 그 할머니가 아직도 있는지 잠깐 뒤를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이 20대 여자가 앞에서 나를 휙 돌아본다. 상반신의 반은 살을 드러낸 그녀는 내게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바로 코 앞이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오늘은 마가 낀 날인가. 당황스러웠지만 그저 여행객을 향한 호의라 생각하고 나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사실 바로 앞에서 웃음을 짓는데 뚱하게 있을 수도 없지 않나. 그리고는 그 여자를 지나쳐 가려하는데 여자가 걸음을 멈춰 선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골반에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인사를 보낸다. "헬로우우?". 그리고 깜찍해 보이려 애쓴 윙크가 뒤따랐다. 순간 뭐라 대응하기 난처했던 나는 머쓱하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손을 골반 위에 바꿔 올리며 미스코리아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서 내게 묻는다. “웨어 아 유 프롬?”

       

꼬레아..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갑자기 앞에 걷던 엄마가 엄청난 톤으로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는다. 가뜩이나 스페인어도 모르는데 그 말이 너무도 빨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만 욕설 몇 마디와 함께 얼핏 들었던 단어들에는 대충 이런 것들이 있었다. '오지 않다. 미친. 살지 않다..' 이걸 다시 부드럽게 문장으로 표현하면 아무래도 이런 뜻이었지 않나 싶다. "빨리 안 와 이 미친년아. 넌 대체 언제 정신 차릴래 아이고.. 내가 저 년 때문에 못 산다 못살아!"

       

실제 그분의 고성은 8 음계 중 시 아니면 도 정도의 높은 옥타브였고 내용 또한 이것보다 훨씬 길었으나 난 대부분 알아듣지 못했다. 지나가는 행인의 미소에 단지 예의상 응대했을 뿐인 나는 마치 엄청난 죄인이 된듯한 느낌이 들어 몸 둘 바를 몰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설의 고향 할머니를 벗어났는데 다시 졸지에 남의 집 귀한 딸에게 추파를 던지는 나쁜 놈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늘 듣는 소리처럼 전혀 감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를 보며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참 궁금했다. 도대체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거야. 나니?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 잠시 후 모녀는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길로 간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뒤를 힐끔거리며 내게 미소를 보냈다. 울고 싶었다. '제발 그냥 가..' 나 어릴 적, 영화 <빠삐용>을 패러디한 CF가 떠올랐다. 빠삐용 역할을 김인문이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전, 친구 드가에게 김인문은 특유의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드가, 어여 드가... ' 지금의 내 심정이었다. 나 역시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중얼거렸다. ‘드가, 어여 드가. 제발...'

       

어디에 가서 좀 쉬고 싶었다. 근처 호텔 1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작은 피자 한판과 콜라를 시켰다. 그런데 피자가 엄청 짜다. 이거 뭐 소금을 들이 부었나. 자세히 살펴보니 웬 멸치 하나가 시커멓게 치즈 속에 숨어있다. 그러고 보니 한 마리가 아니었다. 대략 예닐곱 마리. 정말 재료가 없으니 별 걸 다 피자 속에 집어넣는구나 참.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때 이후로 난 이 피자를 사랑하게 됐다. 사실 그 멸치는 엔초비였고, 엔초비피자나 엔초비파스타는 유럽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였다. 지중해 근처에서 나는 멸치처럼 생긴 작은 생선에 소금을 넣어 발효시킨 건데, 사실 우리나라 멸치젓과 다를 바 없는 식재료였다.


나는 엔초비와 피자가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처음 알았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일부러 엔초비를 주문해 피자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늘 그때 먹던 쿠바 피자가 생각난다. 물론 그 괴기스러운 사건과 함께.


맛있게 피자를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쿠바 영화 한 편이 생각난다. 1968년 만들어진 <저개발의 기억 Memorias del subdesarrollo> 이란 흑백영화다. 쿠바의 부르주아 세르지오라는 주인공의 이야기인데, 그는 혁명 이후 미국으로 도망가지 않고 쿠바에 남아 자신의 삶과 과거 여자들을 회상한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그의 가족들이 모두 마이애미로 떠나고 혼자 아바나 길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이 있다. 그는 지나가는 여자들을 쳐다보며 독백한다. "이곳 여자들은 사람을 쳐다볼 때 눈길을 마주치고 싶어 하듯이 쳐다본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훅 와닿았다. 그리고 아까 길에서 만난, 그 머리에 꽃을 꽂은 듯한 여자도 생각이 났다. 쿠바여자들은 한마디로 눈빛이 엄청 깊다. 단지 섹시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은 어떤 의도도 없이 그냥 일상적으로 쳐다보는데도 그렇다는 얘기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장난감을 파는 젊은 여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처음 인사 나눌 때만 해도 엄청 수줍어했는데,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사진을 몇 장 찍자 금세 눈빛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섹시함과는 무언가 다른 무척 묘한 눈빛이었다.


남자들도 그렇다. 쿠바남자들은 눈을 뚫어질 듯 쳐다보며 말한다. 그리고 대화가 끊기는 법이 없다. 설령 언어가 안 통해도 몸짓 손짓으로 끝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낯선 사람과도 절대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부담되면 그냥 내가 알아서 피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쿠바 남자들은 카사노바 기질이 많다. 이건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같으면 주책이라 욕을 바가지로 먹을 테지만 쿠바 할아버지들은 용감하다.


아바나 번화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길거리 저편에서 몸에 딱 달라붙는 빨간색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지나간다. 선글라스를 쓰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어 넘긴, 20대 초반? 많아야 중반 같았다. 쿠바여자들이 그렇듯, 키는 그리 크지 않은데 다리비율이 길고 글래머의 몸매를 가졌다. 그때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웬 할아버지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그녀를 향해 휘파람을 부는 것 아닌가.


여자는 쓱 한번 뒤 돌아보고는 대꾸도 안 하고 다시 걸어간다. 그 뒤에서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휘파람을 불어댄다. 그 사람들 북적거리는 거리 한복판에서, 주위 시선 전혀 아랑곳 않고 말이다. 여전히 그녀가 반응하지 않자 그 할아버지는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본다.


말 그대로 할아버지다. 나이가 최소한 60은 되어 보이는.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실버모델 같은 외모나 패션감각을 가졌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냥 동네에서 마주칠 수 있는 흔한 ‘할아버지’였다. 쭈글쭈글한 통 넓은 검정 양복바지에 지저분한 운동화, 그리고 불룩한 배에 걸친 목 늘어난 티셔츠. 한 손에는 무얼 사셨는지 묵직한 비닐봉지를 들고 있다. 그런 분이 길거리에서 손녀뻘 여자에게 휘파람으로 캣콜링을 한다.


더 황당한 건, 아니 도대체 뭐가 불만이시라는 건지. 그럼 그 손녀뻘 여자가 웃으면서 자신에게 반응했어야 했다는 얘기인가. 그런데 정작 그녀도 표정이 별로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우리 같으면 화를 내거나 112에 신고하거나 아니면 욕을 한 바가지 하고 벗어났을 텐데, 늘 일어나는 일상이라는 표정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긴 마찬가지. 그냥 한번씩 웃고는 관심도 없다는 듯 지나간다.  참 희안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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