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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Feb 05. 2024

패리스 힐튼

        

그래도 한때 이 호텔은 아주 잘 나가던 명소였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쿠바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호텔이다. 1958년 ‘아바나힐튼’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 때만 하더라도 남미에서 가장 크고 높은 호텔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건축사학자 피터 모루찌 Peter Moruzzi에 의하면 이 호텔은 “쿠바에서 미국 영향력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 같은 건물이라고, 그가 쓴 <카스트로 이전의 하바나: Havana before Castro>에서 말했다. 왜 그럴까.

        

오픈 당시 27층 높이에 630개의 객실을 보유했던 이 호텔은 카바레 무대가 있는 식당과 바, 수영장, 카지노 등 웬만한 편의시설을 모두 갖춘 특급 수준이었다. 1958년 3월 오픈할 때 무려 5일 동안 축하파티를 열어 미국의 정재계와 연예계 유명인사들이 대거 아바나로 건너와 파티를 즐겼다. 공식축하행사에는 쿠바의 퍼스트레이디인 바티스타 부인이 특별 연설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 호텔은 당시 쿠바 대통령이었던 바티스타의 야심 찬 계획이었다. 올드 아바나 부근, 즉 람파 La Rampa라 불리는 언덕 위에 호화로운 고층 호텔을 세움으로써 쿠바와 미국에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프닝 행사에도 미국 유명인사를 불러들여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고 미국 관광객들을 더 끌어모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안돼 일어난 혁명으로 그는 새벽에 야반도주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영화 <대부 2>에 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신년맞이 무도회장에서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함께 무도회를 즐기던 바티스타 대통령이 사임을 선언한다. 거리는 피델을 연호하는 군중들이 몰려들고 미국인들은 요트정박장 또는 미대사관으로 몰려들어 서둘러 쿠바를 빠져나간다.  

        

아바나힐튼 호텔은 혁명이 일어나고 며칠 뒤인 1959년 1월 8일, 혁명군이 아바나에 입성하면서 몇 달간 혁명 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호텔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된 로비 계단에 군복을 입은 혁명군들이 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에라 산속에서 생사를 오가며 전투를 했던, 덥수룩한 수염과 꾀죄죄한 군복 차림의 게릴라들이 화려한 미국 사교계 무대였던 이곳을 장악한 것이다.


<아바나힐튼호텔을 장악한 혁명군. 출처 미상>


카스트로는 그 자신이 2324호 스위트룸을 집무실 및 외교사절을 맞는 공간으로 쓰고 2224호는 주로 숙박용으로 사용했다. 지금은 ‘Castellana Suite’로 불리는 이 방은 박물관으로 바뀌어서 관광객을 맞고 있다. 카스트로가 이 호텔을 혁명 본부로 쓴 것은 이 건물이 갖는 상징성도 한몫했다. 미국 자본주의와 바티스타 독재정권이 결탁한 대표적인 '반동'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명군이 장악한 후 이 호텔은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아바나에 상경한 시골 농부 등, 소위 ‘프롤레타리아’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 관광객들의 숙박을 금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1960년 새해에 미국 복서 조 루이스 등 유명인과 언론인들을 불러 관광유치행사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혁명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성과를 내진 못했다.


그때까지도 아직 힐튼이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혁명정부에서 쿠바 노동자들의 해고를 법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적자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유지해야 했다는 것이다. 손님은 100명도 안되는데 직원 수는 손님들의 7배 가까이 되는 670명이나 되던 때도 있었다. 결국 호텔은 국유화되고 힐튼은 쫓겨나고 만다. 그리고 이름도 ‘아바나힐튼’에서 ‘아바나 리브레 Habana Libre (자유 아바나)'로 바뀌었다.


<상층부 중 유리 테라스가 없는 왼쪽 세 방이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 후 사용했던 Castellana Suite이다>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2015년 3월, 콘래드 힐튼의 증손녀 패리스 힐튼이 쿠바를 찾았다. 아바나에서 매년 열리는 시가 축제에 온 것인데, 이때 깜짝쇼로 피델 카스트로 아들을 만났다. 자기 할아버지 사업을 몰수하고 쫓아낸 앙숙의 아들을 만난 것이다.


묵은 감정이 있을 법도 한데 역시 패리스 힐튼.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카스트로 아들과 함께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마를린 먼로를 연상시키는 흰색 드레스에 선글라스를 낀 채, 아바나 리브레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녀다운 캡션과 함께.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1958년에 오픈한 ‘아바나 힐튼 호텔’ 앞에서 한 장~“


   <카스트로 아들과 셀카를 찍는 패리스 힐튼. 출처 Telegraph>

     

그렇게 아바나 리브레 호텔에서는 지난 여행의 추억만을 확인하고 오후 늦게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부터 숙소는 멜리아 꼬이바 호텔 Melia Cohiba Hotel로 옮겼다. 방에 들어와 먼저 따뜻한 샤워부터 했다. 이 호텔은 위층에서 화장실 물이 새는 일도, 샤워기 물이 졸졸 흘러내리지도 않았다. 모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정상적인’ 호텔방이었다. 쿠바에서는 이렇게 너무도 정상적인 상황에 행복해진다. 이런 상태라면 한국에서라면 거의 매일 매시간마다 행복해야만 한다.


밖에는 비가 퍼붓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는 온통 잿빛뿐이다. 멍하니 창 밖 풍경을 감상하다 화들짝 놀랐다. 발 밑이 흥건하다. 바닥을 보니 물바다 일보직전. 창문을 닫았는데도 그 틈을 통해 들어온 빗물이 어느새 침대 밑까지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젠장 여기의 문제는 이거구나… 방안에 있는 모든 타월을 동원해 물을 닦고 그래도 넘쳐나는 물은 수건으로 쌓아 임시방편으로 막았다. 나중에 다시 타월을 주문해서 한참을 닦고 나니 비가 그쳤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쿠바에서는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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