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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작 Feb 26. 2024

박물관 서비스


택시에서 내린 곳은 아르마스 광장 근처에 있는 레알 푸에르사 성  Castillo de la Real Fuerza. 아바나 항구로 들어오는 길목의 요새다. 이 지역은 먼 바다에서 들어오는 적군의 배나 해적선을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위치라서 스페인 펠리페 2세 명령에 의해 20여년간 노예들의 피땀으로 완공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막상 다 짓고 나니 항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그걸 짓기 전에는 왜 몰랐을까). 결국 요새로 못쓰고 대신 스페인 총독들이 거주하는 관사로 사용되었다는, 다리 힘 풀리는 전설이 내려오는 건물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조건물이다.


지금 이 건물은 항해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각종 배와 무기, 그리고 바닷 속에서 발굴한 유물 등을 전시해 놓았다. 이곳을 들어가는 입구에는 해자垓子가 있고 그 위에 내려진 다리를 통해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물론 적군이 침략하면 다리를 걷어 올려 성문을 잠그게 된다.  


그러고보니 해자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이나 유럽, 서아시아에서도 오랫동안 존재해왔었다. 이게 동서양 교류의 결과인지, 아니면 성城을 지키거나 운용하는데 너무도 상식적이기 때문에 다들 그런 생각을 해낸 건지는 모르겠다. 우리나라 경우 고대시대부터 자연적인 해자를 사용한 걸로 봐서는 아마 후자가 아닐까 싶다. 성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낼 때는 물론이고 성 내부로 물을 공급할 때, 그리고 작은 배 같은 운송수단을 이용해서 물자를 공급하는 할 때 등, 여러가지로 무척 쓸모가 많은 방법이었을 것 같다.


입장료 5쿡을 내고 들어서자 인상이 온화한 두 여직원이 나를 맞이한다. 두 팔을 벌리고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해서 난 내 뒤에 다른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돌아봤을 정도였다. 물론 뒤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를 위한 환영 인사였다. 오 여기 공무원들은 서비스가 참 좋네. 좀 과하긴 해도 퉁명스러운 것보다는 낫지.


그렇게 만족해 하며 내부로 들어가려는 찰나, 이 분들이 나를 막고 선다. 물론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자기들이 나에게 퀴즈를 낼 건데 그걸 맞춰야 통과할 수 있다는거다. 아니, 쿠바에서 이런 상큼한 자본주의 고객 서비스를 만날 줄이야. 기분이 좋아졌다.


나를 안내했던 레알 푸에르사 성 직원


그렇게해서 직원 한 분이 첫번째 퀴즈를 낸다. 콜럼버스가 처음 쿠바에 왔을 때 배 몇 대로 왔게? 에이 너무 쉽잖아요, 세 대! 딩동댕~.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분이 퀴즈를 낸다. 그럼 그 배 이름은? 에이 그거야, 산타마리아! 딩동댕~ 니냐! 딩동댕~ 그리고.. 그리고.. 아. 생각이 안난다.


두 글자였는데 뭐였더라. 옛날 프로야구팀 청보 핀토스랑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음.. 핀토! 땡!.. 판토! 땡!...판쵸? 땡!!.. 아, 그럼 못 들어가는거에요, 입장료도 냈는데? 그러자 역시나 마음씨 좋게 생긴 그 분들은 아주 후덕한 웃음을 짓더니 저쪽 구석에 가서 전시물을 보고 오라고 한다. 거기에 가면 정답이 있다고.


아니 이 친절함과 영양가를 두루 갖춘 안내는 뭐지. 종종 걸음으로 가서 보니 안내판에는 배의 모형과 이름, 설명 등이 유리 케이스 안에 잘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배 모형도 아주 실감나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다시 돌아와 정답을 얘기했다. 핀타! 딩동댕~~


서로 하이 파이브를 하고 기분 좋게 전시관으로 입장했다. 그런데 이 분들이 나를 따라 들어오며 전시물 설명을 해주는게 아닌가. 그러면서 내게 사진을 찍어줄테니 폼을 잡아보란다. 아니 관람객이 없어 심심해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그리 매력적인가. 아무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콜럼버스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동상 앞에서 똑같은 자세로 손가락질하고, 대포 앞에서 적군을 향해 용감하게 포를 쏘고, 요새 모형 뒤에서 빼꼼하는 깜찍한 포즈도 취해줬다. 이분들이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럴수록 이분들은 더 셔터를 눌러대며 내게 계속 다른 포즈를 요구했다. 사회주의는 아직 순진해… 라며 깊은 감명을 받으려는 찰나, 드디어 그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이제 팁을 달라는것이었다. 박물관에서 팁이라니. 그럼 그렇지... 정작 순진한건 자본주의 국가에서 온 나였다. 1쿡을 줬다. 그랬더니 자기들은 두 명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1쿡을 더 줬다. 그랬더니 더 달라는 표정이다. 과하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 그래도 덕분에 즐거웠으니까 뭐. 1쿡씩 더 줬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까 내가 했던 깜찍한 표정을 흉내내며 또 더 달라는거 아닌가. 아니, 그런데 이건 떡 하나주면 안잡아먹지도 아니고. 여보세요, 나 입장료 5쿡 내고 지금 팁으로 4쿡 줬어요. 그 정도면 내게 베푼 친절에 대해 충분히 지불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내가 당신들 재밌게 해줬으니까 나한테도 팁을 줘요, 자!


그러면서 돈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이 분들 또 깔깔대며 손사레를 치더니 알았단다. 아주 깔끔하게 단념한다. 어떤 나라에 가면 팁 안 준다고 얼굴 찡그리고 자기네 말로 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분들 거기서 딱 그만둔다. 환하게 웃으면서. 그리고는 나와 허그 한 번씩 하고 볼에 뽀뽀인사까지 해주고는 쿨하게 보내준다. 그래, 그래도 쿠바는 아직 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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