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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Feb 16. 2021

할아버지의 방

    

스타벅스에서 다크 초콜릿을 사는 이유는 초콜릿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양철로 된 통을 가지기 위해서다. 지름 6.5Cm, 높이 2Cm인 통은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지우개, 클립, 북다트, 포스트잇 인덱스를 담아 쓰면 디자인과 색깔도 예쁜데다 자리도 많이 차지 않아서 그만이다. 배스킨라빈스 블록팩도 먹고 난 뒤 바로 버리기엔 아깝다. 아이들 장난감 중에 구슬처럼 작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을 종류별로 보관하기에 딱 알맞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라고 통끼리 레고처럼 조립되어 쌓아지게 만들었다. 먹고 보니 쓰임이 있을 것 같아 재활용하는 게 아니라 제조사에서 처음부터 마케팅 전략을 그렇게 수립한 것 같다. 돈을 지불하는 이유가 초콜릿이 아닌 양철통이며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플라스틱 통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용물보다 외형에 원가가 더 많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요즘은 물건을 담을 용기가 있음에도 통이 예뻐 재활용하기도 하지만 80년대만 하더라도 경제적인 이유로 또는 꼭 맞는 마땅한 용기가 없는 실제적인 필요로 재활용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면 봉지는 도시락 쌀 때 김을 담는데 활용되었고 달력은 교과서를 싸는 커버, 소주병은 참기름병으로 쓰였으며 페트병은 약수터 갈 때 따라 갔고, 델몬트 쥬스병은 보리차가 채워져 냉장고로 다시 들어갔다.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분유깡통이다. 뻥튀기 장수가 오면 쌀과 옥수수를 담는 통은 어김없이 분유깡통이었다. 분유깡통은 나의 할아버지 방에도 있었는데 재떨이 겸 휴지통으로 쓰였다.    


할아버지는 3.1운동 전에 태어나셔서 서당에 다니다가 할머니를 만났고 돌아가시기 전에는 휴대전화도 상용되었으므로 전통사회부터 현대사회까지 두루 사신 분이었다. 사랑방이라 불렸던 할아버지의 방에는 그런 특징들이 잘 반영된 물건들이 섞여 있었다.    

사랑방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목침이다. 나무로 된 베개로 가로, 세로, 높이가 15Cm, 10Cm, 20Cm 크기였다. 옻칠이 되었는지 짙은 갈색이었고 오래 베어 머리 기름을 먹어서 반질반질했다. 할아버지는 목침을 주로 낮에 사용하셨다. 옆으로 누워 낮잠을 주무실 때나 신문을 읽으실 때 베셨다. 나도 몇 번 누워봤지만 쿠션이 없는 나무베개에 말랑말랑한 초등학생 머리는 5분을 견디지 못했다. 목침 두 개로 자동차 놀이를 하기도 하고 쌓아 봤자 2층이지만 의미없이 쌓았다 무너뜨리곤 했다.    


사랑방에는 전기냄비도 있었다. 할아버지의 식사는 안채에 있는 부엌에서 큰어머니가 소반에 준비해서 직접 들고 오셨는데 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반찬을 자체적으로 만들기도 하셨다. 전기냄비에 찌개를 끓이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주로 된장찌개였고 생미역을 넣는 것이 특징이었다. 점심식사 후에는 전기냄비에 계란을 4개 삶아 방문 앞 청마루에 냄비 째 식혀 두시고 형과 내가 학교 끝나고 큰집에 가면 2개씩 먹으라고 하셨다. 그때 붙이는 말씀이 ‘2개보다 더 먹으면 해롭다’ 였는데 그때 이미 콜레스테롤의 위험성을 아셨던 것일까 싶다.    

사랑방에서는 언제나 쑥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가 쑥뜸을 뜨셨기 때문이다. 쑥뜸은 뜸기에 마른 약쑥 잎을 넣고 성냥불을 붙여 연기를 낸 다음 배꼽에 대고 연기를 계속 내뿜는 방식이었다. 쑥뜸기는 쑥을 넣고 불을 붙이는 굵은 사과만한 본체에 공기가 들어오는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호스에는 큰 스포이드 머리가 달려 펌프질을 할 수 있게 했다. 할아버지의 배꼽은 쑥뜸 자국으로 늘 까맣게 되어 있었는데 훗날 삼촌들은 매일 술을 드시면서도 88세까지 사실 수 있었던 할아버지의 장수 비결을 쑥뜸에서 찾았다. 실제로 셋째 삼촌도 쑥뜸을 한다는 말씀을 들은 듯하다.    


서당에서 사서삼경도 공부하시고 노년이 되신 후에도 우체부가 배달해주는 신문과 신동아 같은 월간 정치저널도 읽으시던 할아버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쓰셨다. 일기장은 삼촌들이 가져온 회사용 다이어리였고 펜은 모나미 플러스 펜만을 쓰셨다. 한자를 절반정도 섞어서 세로로 쓰셨는데 그 일기장을 지금 찾을 수 있다면 좋은 글쓰기 소재가 되겠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사랑방 한쪽 구석에는 늘 화투가 있었다. 갓난아기 요만한 화투전용 담요와 함께 였는데 치지 않을 때는 담요 속에 화투를 넣고 두 번 접어 구석에 밀어 두었다. 화투는 주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혼자서 폐를 뜨는데 사용되었고 폐가 잘 뜨지는가에 따라 하루의 운세를 보기도 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고스톱 대신 민화투를 쳤다. 당시 할아버지는 고스톱의 개념을 아예 모르셨고 비를 네 개 모으면 비시마, 난초는 초시마, 청단, 홍단, 광의 개수 등으로 점수를 매겼다.

    

선풍기와 냉장고도 좁은 방 한 켠을 차지했고 겨울이면 화로가 들어왔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나오는 빨간 숯이 있는 화로에 가래떡을 구워먹었고 알밤도 터지지 않게 칼로 자국을 내서 숯 속에 묻어 두었다. 화로가 석유난로로 바뀐 뒤에는 떡이나 알밤을 더는 구워 먹지 못했다.    

사랑방은 사랑방만의 독특한 냄새와 풍경이 있었다. 공기는 쑥뜸냄새가 배어 있었고 작은 먼지도 눈에 띄면 분유깡통에 쓸어넣는 깔끔한 성격 덕분에 바닥은 언제나 말끔했다. 할아버지는 목침을베고 옆으로 누워서 신문을 보고 계시고 할머니는 화투로 폐를 뜨시거나 청자, 환희 같은 담배를 입으로 연기만 뱉으며 창밖을 보며 앉아 계시는 풍경이 많았다.  

  

냄새가 기억되고 노래가 특정 과거를 떠올리게 하듯 방의 풍경도 한때를 추억하게 한다. 할아버지 사랑방은 부모의 맹목적 사랑을 한 번 더 증폭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한 사랑으로 채워져 안전함과 합법적 나태를 주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숙제를 잠시 미뤄도 되고 삶은 계란이나 할아버지 술안주인 대구포 같은 먹을 거리가 늘 준비되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돌아가시고 큰어머니도 이사를 가시면서 큰집은 허물어졌지만 지금도 큰집 대문을 들어서면 부채를 들고 사랑방 창으로 밖을 내다보며 앉아계신 할아버지가 꼭 거기에 계실 것만 같다.    


작년 여름 폭염이 계속 이어지던 날 전기세 아끼려고 안방에만 에어컨을 켜고 네 식구가 모여 책도 보고 점심도 먹곤 했다. 올해도 여름이 되니 아이들이 묻는다.    

‘아빠, 이번 여름에도 안방에서 카레로 점심 먹을거야?’    

내가 사랑방을 추억하듯 아이들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안방을 추억하는 것이다. 늘 그랬던 것, 그래야 했던 것에서 잠시 벗어난 풍경이 곧 추억이 된다. 올 여름은 안방에서 또 무얼 해볼까? 너희들도 언젠가 그 풍경으로 글을 쓸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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