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우리들의 언어로 굉장한 산책이다. 작은 애는 중고 책방에서 학습 만화를 사고 큰 애는 잡화점에서 머리끈을 사서 최종 목적지인 재래시장 분식점으로 가기로 했다. 순차적으로 각자의 일을 보고 분식집에 도착해 튀김을 먼저 골랐다. 다섯 개에 2,500원. 기름에 다시 데우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김말이 두 개, 치즈 스틱 두 개, 고구마튀김 한 개 골라 놓고 어묵을 먹는다. 어묵 국물도 식으라고 종이컵에 미리 받아 놓았다. 주인과 고객, 누구의 편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분무기에 담아 놓은 간장을 위생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칙~ 뿌리고 어묵을 먹는다. 하나를 다 먹을 무렵 튀김이 가위로 잘라져 비닐 씌운 접시에 담겨 나온다. 튀김까지 다 먹고 국물은 손에 든 채 굉장한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생선가게에서 멈췄다. 내륙의 생선가게라 그런가 재래시장 안 네 곳의 어물전 생선 종류가 비슷하다. 전국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고등어, 갈치, 삼치, 오징어, 꽁치, 임연수, 가자미, 조기, 동태, 꽃게,바지락, 꼬막이 고정 멤버다. 그런데 시장 입구로부터 두 번째 가게에서 볼락을 만났다. 조피볼락인 우럭과 불볼락인 열기는 가끔 보았지만 원조 볼락은 처음이다. 얼마전 방송에서 본 음식 기행 프로그램에서 ‘여기 바닷가 사람들은 생선하면 볼락을 최고로 칩니더. 회도 그렇고 구이도 그렇고. 낚시대 넣어면 한 번에 세 마리씩 줄줄이 올로옵니더’ 라고 통영 주민이 했던 말이 생생하다. 볼락 옆에는 청어까지 있다.
볼락 세 마리 만원, 청어 두 마리와 오징어 한 마리 묶어서 만원. 이 만원 어치 사들고 집으로 오는데 작은 애가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를 건다. ‘어무이, 볼락도 사고 청어도 사고 오징어도 샀는데 외갓집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맛있게 구워서 저녁 먹고 오면 안 될까요?’ 애교 섞인 목소리에 안 쓰는 사투리까지 얹었다. 그렇게 토요일 저녁은 외갓집에서 먹게 되었다. 최근 4주 사이 벌써 세 번째다.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인 두 딸. 이렇게 효손녀가 있단말인가? 여기에는 모두가 아는 진실이 있었으니 외갓집에는 길냥이로 태어나 보살핌 끝에 외갓집냥이가 된 레몬과 참치가 있기 때문이다.
레몬과 참치는 작년 추석 무렵 외갓집 외양간 짚더미 사이에 길냥이가 낳은 아깽이 네 마리 중 살아 남은 두 마리다. 처음 외양간에서 ‘미야~ 미야~’하는 소리가 났을 때만 하더라도 장모님께서는 어미의 먹이를 갖다주며 그곳에서 잘 자라길 바랐었다. 일주일만에 한 마리가 죽고 어미 고양이가 어디론가 떠나버리자 집으로 들인 것이다. 이름은 아이들이 레몬,베리,참치로 지어 주었고 입양 일주일만에 베리가 죽고 레몬과 참치만 남아서 6개월간 잘 자라주었다. 고양이의 생장이 이렇게 빠르던가. 6개월만에 성체가 되었고 최근 한 달 사이 세 번을 봤지만 키는 더 자라는 것 같지 않다.
맞벌이를 하는 아내와 나는 주말이면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 하지 않는 편이다. 한창 세상을 봐야 할 아이들 때문에 가끔 당일 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집 주변 서점, 놀이터, 음료점을 돌고 아이들은 친구와 약속을 잡아 서로의 집이나 집 근처에서 노는 것이 대부분이다. 장모님은 끓여 놓은 곰국이나 철철이 담은 새 김치를 가져가라고 성화시지만 그마저도 부지런한 처형이 우리 것까지 가져와 전달해주고 가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4주 사이 세 번이라니. 갑자기 효자 가족이 되었다. 외갓집에 도착하면 아이들은 고양이 집으로 먼저 간다. 누런 빛의 레몬, 검정과 갈색이 섞여 있는 참치는 숫컷과 암컷 자매다. 성격이 더 활동적인 레몬이는 동네를 돌아다니느라 집에 없는 경우도 있지만 참치는 어김없이 집 주변에 있다. 아이들은 준비해온 닭가슴살 간식 템테이션도 주고 사진 찍고 잡기놀이도 한다. 친할아버지 할머니 집은 와이파이가 없어 외갓집이 더 좋다고 했지만 레몬이와 참치는 와이파이도 무색하게 만들었다. 지난 4주 사이 세 번을 다녀오는 동안 처음에는 방울토마토, 오렌지, 딸기를 사다 드리고 저녁으로 삼겹살과 민물장어를 구워 먹고 봄나물 민들레, 부추, 곤달개비를 얻어 왔다. 두 번째는 참외,딸기,콩나물을 사다 드리고 아귀찜을 먹고 쌀 20Kg과 삶은 오가피 새순 나물을 얻어서 돌아왔다. 세 번째인 이번 주는 청어,볼락,오징어 세 가지 생선중에 청어 두 마리와 후라이드 치킨 두 마리를 포장해서 갔다. 저녁으로 치킨을 먹고 간식으로 절편을 녹여 먹은 뒤에 새로 담은 열무 김치, 외할아버지가 애써 까놓은 호두, 옻나무 새순 나물에 곰국까지 퍼왔다.
한 번 다녀오면 이렇게 많은 것을 얻어 온다. 신선한 공기, 풍경과 함께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밤하늘 별까지 보는 것은 덤이다. 그럼 무엇할까. 레몬과 참치가 없을 때는 한 달에 한 번도 피곤하다는 이유로 찾지 않았다. 아내는 평일 업무로 인한 피로감, 주말에도 평일과 다름없이 책과 글로 씨름하는 나는 일이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지만 그렇게 다녀와도 생활에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일흔이 넘은 부모님을 뵈어서 좋고, 신선한 과일과 생선을 사다 드리니 좋고 시골밭에서 오는 제철 나물을 얻어 오니 좋다.
도시보다 시골은 밤이 일찍 찾아 든다. 자식들이 커서 떠난 집은 소란할 일이 없어 밤이 끌고 온 어둠이 더 짙을 수밖에 없다. 일주일에 한끼였지만 요 몇주간 소란한 식탁을 만들어 드려, 책 몇 장 못 읽은 것이 전혀 아쉽지 않았다. 주말이면 레몬이와 참치가 말하는 것 같다. ‘우리 보러 와야지. 효도는 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