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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Feb 04. 2022

로마에서 읽는 인문학

취준생을 위한

‘용산역 3층 안내 데스크 앞, 1시’     

모이기로 한 장소와 시간이다.


조치원 발 10시 52분 무궁화호를 타고 12시 30분 용산역 도착,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오니 안내 데스크가 보였다. 여기가 3층 맞나 두리번 거리고 있으니 마스크를 쓴 여성이 “손정 작가님 맞으시죠”하고 바로 알아 본다. OO대학교 온라인 교육원 김 연구원. 오늘 회의 진행 책임자로 이름은 낯설지 않았지만 만난적은 없었다. 어떻게 나를 알아봤을까 싶었는데, 이틀 전 학교에서 내 강의를 들어서 바로 알아 봤다고 했다. 1시가 다가오자 회의 참가자들아 모두 모였고 교육 영상 제작사인 OO방송국 PD도 직접 나와 주었다.      


방송국 차를 타고 40분을 가니 일산에 위치한 본사 건물이 나왔다. 이번 회의는 OO대학교와 고용노동부가 발주하고 OO방송이 교육 영상을 제작하는 ‘취준생을 위한 온라인 교육 콘텐츠 제작’ 프로젝트의 중간 보고였다. 3년 계획 프로젝트의 첫 번째이며, 영상은 취준생이 온라인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상파로도 송출되는 터라 방송국 사장님도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관심이 컸다.  직무기술, 인문학, 문화예술에 걸쳐 100개가 넘는 영상이 석 달 내에 완성되어야 하는 만큼 오늘 시연하는 영상에서 최종 피드백이 나와야 했다. 회의가 시작되었고 분야별로 준비한 영상을 10분씩 요약하여 시연했다. 내가 맡은 일은 인문학 콘텐츠를 자문하는 것이었다.      


시연한 인문학 강의는 유럽사 시리즈로 번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들의 성공 요인을 찾는 내용이었다. 오늘 살펴본 영상은 로마편으로 로마가 성공한 이유를 외부 민족에게 열린 기회, 실용성, 시민권부여에서 찾고 있었다. 웅장한 영상에 로마 현지에서 촬영한 현장감까지 더해 가히 방송용 다큐멘터리라 불릴 만 했다. 화려한 로마의 성공 요인을 세 가지로 가려낸 것도 대단했고 어떻게든 취준생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 영상 마지막에 Q&A를 넣고 요약 멘트도 준비한 세심함이 제작 과정의 고민을 알게 했다. 

    

자문위원으로 내가 할 말은 무엇인가? 영상의 고객을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다. 영상이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이라면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했다. 고객이 취준생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취준생이 로마의 성공요인을 알아서 무엇한단 말인가? 성공요인, 실패요인을 모두 알고 그것을 조직에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까지 나와 주어야 했다. 당장 면접 현장으로 가야 하는 취준생들에게 통찰이란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맡겨 두기보다 통찰도 강제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인문학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취준생이  먼저 눈을 주는 것이 직무 스킬이므로 인문학에서 스스로 답까지 찾으라고 한다면 더 안보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영상을 주의 깊게 보자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진 도시의 성공 요인'이 곧 실패요인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혁신은커녕 핵심가치마저 사라지니 제국은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조직 또한 애초에 조직을 형성한 핵심가치를 지키면서 파괴적 혁신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로마로부터 꺼집어 낼 수 있었다. 영상은 마땅히 이러한 메시지를 취준생 스스로에게 찾으라고 하지 말고 직접 제시를 해주는 게 옳아 보였다.      


인문학자들은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인문학에서 그렇게 한 가지를 콕 집어 내야 하냐고.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뭐하러 읽겠는가. 감동만 하는 공부는 나아가지 못한다. 감동과 실천은 다르다. 실천을 위한 공부는 현상에 대한 감동에 이어 분석을 통해 내가 적용할 방법까지 찾아 낼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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