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왜 국호를 조선이라고 지어 과거의 조선을 고조선이라 부르게 만들었을까요?
정도전은 이성계를 유방에 비유하고 자신을 장량에 비유할 만큼 스스로가 조선의 설계자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1384년 정도전과 이성계는 첫 만남을 갖고 고려를 대체할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로 뜻을 모읍니다. 이때 정도전이 표방한 나라는 왕은 군림만할 뿐 통치는 사대부가 맡는 사대부 중심 국가였습니다. 이런 그의 구상은 "유방이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이용하여 천하를 통일했다"고 말할 정도로 공공연했으며 이성계 또한 이런 말을 듣고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건국의 기획자인 정도전의 활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연상할 정도로 폭넓은 것이었습니다. 태조인 이성계를 칭송하는 글을 짓고, 곡을 붙여 노래로 만들고 춤까지 덧붙였습니다. 경국대전의 모태가 되는 조선경국전을 지어 국가의 기본 지침을 만들었고 고려의 역사를 37권으로 편찬하는 고려사 편찬 위원장 역할도 맡았습니다. 고려의 도읍인 개경을 떠나 서울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 북한산 앞에 궁궐을 짓고 시경의 한 구절에서 차용해 경복궁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고려라는 이름 대신 조선이라는 국호를 생객해낸 것도 정도전이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원명 교체기로 주원장이 원을 북쪽으로 밀어내고 명나라를 건국한 상태였습니다. 한반도의 국가들은 신라 이래로 스스로 중국의 속국을 자처하고 있던 터라 새로운 왕이 들어서면 중국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라를 새로 건국한 이성계로서는 임명장과 더불어 국호도 승인 받아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어떤 국호를 만들어야 쉽게 승인을 받을지 정도전의 고민은 깊었습니다. 명나라는 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사실 자체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원나라가 북으로 물러나기 전 직접 지배하던 쌍성총관부를, 명나라는 그들이 승계받아 지배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감정이 좋지 않던 차에 고려에서 친명파로 분류되던 정몽주를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이 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명나라 입장에서는 한반도에 새로운 나라가 들어서는 것보다 자신에게 충실히 사대할 고려의 친명파가 정권을 잡는 것이 더 원하는 그림이었습니다.
어떻게 주원장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정도전은 2500년전 중국 주나라를 떠올립니다.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을 때 무왕은 은나라의 귀족인 기자를 한반도의 조선으로 보내 통치하게 합니다. 조선 제후로 임명한 것입니다. 여기서 착안하여 정도전은 명나라 왕 주원장을 중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무왕에 비유하고 이성계를 기자에 비유하는 재치를 발휘합니다. 나라 이름은 조선입니다. 이성계가 주원장의 책봉을 받아 기자가 그랬듯 조선의 제후가 된다는 발상입니다. 1392년 한명회의 조부인 한상질이 사신으로 조선이라는 국호를 승인받아 옵니다. 그 뒤 고려권지국사로 칭하던 이성계도 왕으로 책봉됩니다.
고조선과 조선, 원래는 모두 조선입니다. 조선이 고조선의 이름을 차용한 것입니다. 구분이 필요하기에 고대의 조선은 고조선이 부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