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깨어 있기》- 법륜지음 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 남조의 번성을 이끌었던 양나라는 무제가 서기 502년에 건국하였다. 48년이라는 치세 동안 구품중정제를 개선하여 인재를 등용하고 문화적 번영을 이끈 그의 특별한 행적 중에 하나는 단연 불교의 보급이었다. 전국에 수많은 절을 지었고 스님을 양성하였으며 경전을 번역하고 간행하였다. 당연히 무제는 충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인도에서 고승 달마대사가 양나라에 건너 오게 되었다. 인도에서 고승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무제는 달마대사를 궁으로 초대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행한 불교 보급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선 이렇게 물었다.
“대사, 이 정도면 내가 지은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이에 달마대사가 말했다.
“무(無), 즉 공덕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달마의 눈에는 겉으로 보이는 절을 많이 짓고 경전을 인쇄하고 스님을 양성하는 것이 실제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대답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제는 달랐다. 내심 자신의 불교 보급에 대한 업적을 칭찬 받고 싶었기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급기야 칼을 빼들고 달마대사를 죽이려 했지만 주변에서 말린 끝에 목숨을 살려주었고 이 일이 있은 후 달마대사는 지금의 허난성에 위치한 소림사에 들어가 묵언 수행에 들어가게 된다. 부처님의 진정한 법을 전하러 왔지만 아무도 법에는 관심이 없고 세속적인 이익만 구하는 데 실망한 것이다.
달마대사가 묵언 수행을 한다는 소문은 이미 돌았지만 그의 명성이 너무나 높았기에 그래도 무언가를 얻을 것이 있겠지 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소림사로 찾아 왔다. 하지만 달마대사가 끝내 입을 열지 않는 것에 실망하여 얼마 버티지 못하고 떠나고 말았다. 그런데 그중에 딱 한 명, 제자 되기를 청한 어느 사람만이 소림사를 떠나지 않고 9년을 버티고 있었다. 달마대사가 아침에 일어나 명상하면 자신도 명상하고 일하면 일하고 예불하면 예불하고, 그 조차도 입을 닫은 채 대사 옆에서 수행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달마대사가 명상을 마친 후 밖을 내다보니 눈 쌓인 바깥에서 그 스님도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감복한 달마대사가 마침내 9년 만에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물었다.
“너는 누구냐”
“혜가 라고 합니다.”
“여기 왜 왔느냐”
“마음이 편해지는 도를 얻고자 왔습니다.”
“너의 마음이 어떠한지 말해 보아라”
“지금 마음이 몹시 불안합니다. 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달마대사는 결정적 한마디를 던진다.
“불안한 마음을 여기 꺼내 놓아라. 내가 편안하게 해주겠다.”
인도에서 고승으로 유명한 달마대사가 그것도 9년 동안의 묵언수행을 깨고 제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겠다고 한다. 혜가는 뭐라고 말했을까? 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케 했느니라”
이들은 대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들의 의사소통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의사소통의 목적은 행동을 끌어 내는 것
우리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청자로 하여금 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스마트폰 그만보고 숙제 좀 해라” 라고 말하는 것은 말 그대로 공부라는 행위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상사가 부하에게 업무지시를 하는 것도 올바른 일을 수행함으로써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의사소통의 성패는 청자가, 화자가 처음에 원한 올바른 행동을 했는가가 될 것이다. 올바른 행동은 언제 나오는가? 바로 화자의 말을 들은 청자 스스로가 문제의 해법을 찾았을 때, 그리고 행동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이다.
다시 달마대사와 혜가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달마대사는 화자로서 어떠한 의사소통법으로 청자인 혜가를 대했을까? 바로 스스로 답을 찾게 한 것이 달마의 소통방식의 핵심이다. 다른 사람같으면 마음이 편안하게 하는 해법을 직접 이야기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달마는
“불안한 마음을 여기 꺼내 놓아라” 라고 말함으로써 혜가가 스스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던 것이다. 꺼내 놓으려면 자기 마음을 보아야만 한다. 꺼내려고 마음이란 것을 처음 보다 보니 지금까지 불안한 마음의 해법을 밖에서 구했던 것과는 달리 해법은 바로 문제가 있는 그곳, 자신의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찰나의 순간에 깨달은 것이다. 깨달았으니 더 이상 꺼내놓을 불안한 마음은 없다. 이것이 바로 의사소통을 통해 청자가 스스로 문제의 해법을 찾고 행동하는 게 하는 원리다.
이미 2000년전에 달마대사가 행한 이 소통의 방식을 이야기하고 보니 최근에 많이 유행하고 있는 어느 소통의 리더십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코칭이다. 코칭의 원리가 달마대사가 혜가에게 행한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코칭의 대가인 존 휘트모어의 이야기를 통해 코칭 리더십의 원리를 살펴보자.
코칭 리더십
존 휘트모어는 그의 저서 《성과 향상을 위한 코칭 리더십》에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의사소통을 코칭이라 정의하고 그 해법으로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해결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질 것을 제시한다. 리더십의 정의는 구성원이 목표를 향해 움직이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기는 언제 부여될까? 움직이는 계기는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그 해법을 자신이 찾았을 때이다. 남이 발견한 문제에 해법까지 정해준다면 또는 문제는 자신이 발견했지만 해법을 남이 정해준다면 동기는 반감되고 만다. 코칭 리더십에서 이야기하는 자각이란 문제와 해법을 스스로 찾는 것이며 책임이란 자신이 찾은 해법을 수행하고자하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각과 책임은 어떻게 생기게 하는가? 바로 질문에 의한 의사소통이다.
다음의 사례를 보자.
p26
<지시형 리더>
수잔 : 우리가 합의한 일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리더 : 분명히 뭔가를 잘못했겠지요. 이 방식을 써보세요.
<코칭형 리더>
수잔 : 우리가 합의한 대로 일을 했는데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리더 : 나는 지금 조지와 미팅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는데 정확하게 언제,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해보세요. 돌아와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미팅 후 돌아온 리더에게 수잔은 이렇게 말한다.
수잔 : 해결책을 찾았어요. 이제 잘 되고 있습니다.
리더 :그래요? 어떻게 했죠?
수잔 : 이것이 문제였어요. 이렇게 접근해봤는데 해결이 되었습니다.
리더 :잘 됐군요. 문제가 생기면 당신의 노력으로 해결가능한 일부터 찾아 보십시오.
사례에서 보듯 지시형 리더는 자신이 해법을 제시했다. 이럴 경우 부하직원은 비록 성과는 냈지만 남이 찾은 해법으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이므로 성취감이 반감된다. 하지만 코칭형 리더는 ‘언제, 어디서’ 라는 힌트만 줌으로써 스스로 해법을 찾게 한다. 자신이 찾은 해법은 실행하고자 하는 책임감도 더 커지고 이루어낸 결과물에 대한 성취감도 훨씬 커지게 된다. 또한 작은 성공을 경험함으로써 자신감도 커지고 문제해결력도 커지게 된다.
이처럼 의사소통은 단순히 화자가 청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리더와 구성원, 부모 자식 사이에서는 자존감 상승, 문제해결력 향상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