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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Dec 14. 2019

아직은 다르다가 아닌 무례하다

미세먼지가 나를 좋은 아빠로 만든다.

토요일 아침, 일기 예보를 보니 하루 종일 미세먼지가 좋음이다가 비가 오고 나서 밤부터  다시 유입된다고 한다. 책을 읽던 아이들이 책에 돈까스가 나왔는지 점심으로 나가서 돈까스를 먹자 한다. 엄마는 냉동실에 있는 것을 튀겨준다고 맞서고 있다. 주말인데다가 내일은 미세먼지 때문에 못 나가겠다 싶어 아이들을 데리고 나섰다.


우리의 이동로는 대개 이렇다. 백화점 건물로 들어가 헌책방으로 간다.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사고 싶은 중고책을 사서 밥을 먹으로 간다. 밥을 먹고 오는 길에 조각 케익이나 마카롱을 사서 돌아 온다.


오늘 첫 번째 코스에서 무례한 사람을 만났다. 헌책방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 편하도록 넓은 책상을 군데 군데 놓아 두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중 한 곳에서 나무 장난감에 물감으로 색칠하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게 미술 프로그램이든 말든, 자기 자식이 놀라운 창의력으로 색칠을 했든 말든 거기는 책방이다. 읽는 사람이 주고객인 곳이다. 조용히 해야 한다. 색칠하는 아이의 고모라는 한 사람이 몹시 놀라고 감격하는 말을 연신 뱉어 낸다. 무례하다. 에티켓이 없는 거다. 그게 내 기준이다. 그래도 참았다. 무례한 사람 때문에 내 기분을 망칠 수는 없으므로.


내가 읽은 책대로라면 내가 그렇게 되고 싶은 모습대로라면 이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해야 된다.


‘아, 저런 사람도 있구나. 저런 사람을 무례하다고 보는 것도 나만의 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기 조카가 예뻐 보이는 것은 당연 한 법. 나도 저럴 때가 있지 않은가?’


언제가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겠지만 오늘은 가서 주의를 주는 말을 하지 않고 내 기분을 망치지 않는 것으로 나를 칭찬하려 한다.


두 번째 무례한 사람은 계산대에서 만났다. 내 앞에서 잔뜩 책을 계산하고 주차 차량 등록에 회원 인증에 할인 받기로 시간을 끌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살 것을 하나 빠트렸는지 일행에게 얼른 가서 집어 오라고 한다. 그 사이에 나는 추가로 더 기다렸다. 그 여성은 나에게 아무런 양해도 구하지 않았다. 무례하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이럴 때도 너그러운 사람은 ‘이미 산 물건을 거의 다 계산 했는데 하나 계산하자고 뒤로 가서 줄 서는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나 같아도 저럴 수도 있겠다’ 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런 상황에서 깜빡한 물건을 가져 오라고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시 줄을 선다. 그래도 참았다. 미세먼지 없는 날을 아이들과 즐기기 위해 나온 이 순간을 무례한 사람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무례하다기 보다 어이없는 사람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들른 돈까스 집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돈까스, 우동, 비빔메밀국수였다. 아이들이 책을 긴 시간 읽은 탓에 점심은 늦어 졌고 배가 몹시 고픈 상태였다. 사람이 많아 음식은 빨리 나오지 않았다. 기다린 끝에 우동이 먼저 나왔다. 그런데 우리 식탁에 우동과 단무지가 담긴 쟁반을 놓더니 ‘잠시만요’ 하고는 다른 손님에게로 갖다 준다. 아마 그쪽이 먼저 주문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상식적으로

‘죄송합니다. 먼저 주문하신 분께 서빙해야 하는데 잘못 왔네요. 저쪽 손님 먼저 드리고 금방 가져 오겠습니다’ 이러고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잠시만요 하고 가더니 아무런 사과도 없이 자기 할 일 하러 간다. 그 순간에 나는 화도 났지만 그 청년이 안쓰러워 보였다. 실수를 대하는 자세, 사과를 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아서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는 보통의 일일 수 있는 이 세 가지에 나는 화가 난다. 무례한 사람들을 참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의 기분을 망치지 않기 위해 참는다. 옳다 그르다가 아닌 다르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라는 고상한 말 때문에 참는 것이 아니다. 무례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나는 행복해야 되기 때문에 참는다.

 무례 조차도 다름으로 받는 경지에 이르고 싶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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