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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 강사 작가 Mar 09. 2020

미꾸라지 국 (추어탕)

장마가 시작되면 어른들은 삽을 들고 아이들은 반도를 들고 들로 간다. 6~7월이 산란기인데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좋아하는 미꾸라지는 장맛비가 내리면 논 사이로 난 도랑으로 몰려 들었다. 겨울에 논의 진흙 속으로 들어가 한철을 나듯이 미꾸라지는 진흙을 좋아 한다. 장마철 농수로는 미꾸라지가 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추어라고도 불리는 미꾸라지를 가을 물고기로 그동안 오해해왔다. 알고보니 추는 가을추가 아닌 미꾸라지 추로 고기어와 가을추가 합쳐진 형성 문자 (鰍) 임을 안 건 불과 얼마 전이다. 추어로 끓였으니 미꾸라지국은 추어탕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그냥 미꾸라지국이라불렀다. 


미꾸라지는 잡아서 집에서 국을 끓여 먹기도 했지만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80년대 당시 스탠 밥그릇에 물 없이 미꾸라지만 가득 담아 2,000원 이었다. 그 단위를 한 사발이라고 불렀다. 한 사발은 매매를 위한 측정단위이기도 했지만 얼마나 잡았는지를 세는 어획량의 단위이기도 했다. 커봤자 15cm가 넘기 힘든 미꾸라지의 어획량을 마리 수로 세기도 그렇고 좁은 논도랑에서 작은 반도로 잡는 고기를 Kg 단위로 세는 것도 적당치 않았다. 저울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었고. 이 때 어림잡는 단위가 사발이다. 눈대중으로 봐서 밥그릇 하나에 들어 갈 만큼이면 한 사발 잡았다고 생각했다. 한 사발은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는 아이들의 체면치레를 위한 최소 단위이기도 했다. 미꾸라지를 잡는 환경은 비가 오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진흙이 가득한 논도랑이었으므로 비옷에 장화로 무장해야 했다. 거기다 반도에 고기를 담을 용기도 필요했다. 얼마나 잡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욕망은 양동이로 표현되었다. 대부분 양동이를 들고 가는데 그때는 일본말에도 사투리가 있었던 터라 양동이의 일본말인 바께쓰를 바게쭈라고 불렀다. 우비,장화,반도,바케쭈 가히 용병이 전투에 나가는 형상이다. 


미꾸라지 잡으러 간다면 부모님은 물에 떠내려 갈까봐 말리시는 경우가 많았고, 그걸 뿌리치고 중무장까지 하고 나선 길이니 한 사발은 잡아 와야 했다. 한 사발은 되어야 4인 가족 기준 한 끼 끓여 먹을 수 있는 미꾸라지국이 되었다. 지나가는 누구든 ‘얼마나 잡았냐’ 보자고 바게쭈를 들여다 보고는 한 사발이다 싶으면 “함 때 묵겠네”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함 때는 한 번의 끼니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두 사발은 많이 잡았다고 인정 받는 양이다. 

당시에 미꾸라지 잡이에도 실력자가 있었다. 미꾸라지를 잡으려면 똑같이 비오는 날에 같은 들이라는 시간과 공간이 동일한 조건임에도 실력차는 존재했다. 당시에는 왜 누군가는 많이 잡는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니 몇 가지 이유가 있는 듯 하다. 첫째는 미꾸라지의 습성을 잘 알았던 것 같다. 같은 도랑이라도 어느 수풀에 가면 많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둘째는 미꾸라지를 반도로 몰아 넣으려면 발을 굴러야 했는데, 그때 우리는 ‘구른다’를 ‘꿀린다’라는 표현으로 말했다. 잘 꿀렸던 것이다. 무작정 물만 튀기며 꿀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고기를 몬다고 생각하고 꿀렸던 것임이 틀림없다. 셋째, 이건 순전히 노력의 문제인데, 더 일찍 오래 잡았던 것이다. 비가오면 남들이 도랑을 훝어서 지나가기전에 새로 내린 눈 위를 가장 먼저 걷듯이 자신이 먼저 잡는 것이다. 그리고 바게쭈가 가득 찰 때까지 집에 안 가는 것, 그것이 비결이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 생각하면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았으면서도 장마가 시작되면 가슴이 설레었던 것은 특별한 장난감이 없었던 시절 미꾸라지를 잡는 그 자체를 하나의 놀이와 모험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오늘 문득 부드러운 얼갈이 배추에 진한 제피가루를 넣은 미꾸라지국이 한 그릇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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