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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Sep 02. 2021

남편의 지갑

다른 집 아이보다 덩치가 월등하게 컸던 아들은 남다른 외모 탓에 항상 모자라는 아이취급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 나는 이다음에 커서 엄마 될 거야” 라는 말을 해서 진짜 모자라는 아인가 하고 깜짝 놀랐다.

“ 무슨 소리야 너는 남자니까 아빠가 되야지 ” 했더니 갑자기 소리 내어 흐느껴 우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아빠 되면 돈 못쓰잖아 난 엄마 될 거야”

나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에 빠졌다.

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를 때 마다 “아빤 돈 없어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아빠의 태도가 화근이었다.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아이는 세심하게 관찰하고 나름 분석하여 엄마가 되어야만 지갑을 들고 다니며 사고 싶은걸 살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남편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지갑을 뒷주머니에 넣고 버스를 타고 앉아서 왔는데 내려서 뭔가 허전에서 뒷주머니를 만져봤더니 거금이 든 지갑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본인이 제일 속상할 상황에 굳이 더 화나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액땜했다 생각하고 잊어버려 아프거나 사고났어봐 더 큰돈 나가잖아 괜찮아 ” 라고 위로 했지만 너무 큰돈이라 마음이 아팠는지 그날 이후로 교통비에 하루 점심값 정도만 넣어 갖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생각에는 아빠가 맛있는 걸 사온적도 별로 없고 늘 아빠는 돈이 없는 불쌍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다.


나는 아이의 충격발언 이후로 남편에게 용돈을 더욱 후하게 주었다.

퇴근시간쯤에는 전화를 걸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사오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아빠가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행복한 아이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고 아빠가 되어도 돈을 잘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동반해서 외출을 할 때는 늘 아빠가 돈을 내도록 했다.


나는 아이들이 다 성장하여 성인이 되도록 살면서

남편의 지갑을 뒤져 본적이 한번도 없다.

그렇게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이미 부부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의 핸드폰은 물론

지갑을 열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서랍장 위에 올려진 남편의 지갑을 보게 되었다.

너무 낡고 초라한 지갑에 돈이라고는 만원 짜리 몇 장과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마추어 바둑 8단을 증명하는 증서가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주름져 있었다.

나는 순간 눈물이 났다.

지갑이 남편의 모습을 대변하듯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하던 모습이 다 사라지고 낡고 초라해져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에 새로 산 지갑에 오만원권 지폐를 몇장 넣어 건네주며

 “ 당신 그동안 돈 벌어 들이느라 수고 많았어 이제 그냥 놀러나 다니슈 ” 라고 큰소리를 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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