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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May 20. 2023

철없던 여고시절

-죄송해요 선생님 (1)-

“ 담임이 너 연못가로 나오래”

종례를 기다리는 아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옆반 반장이 나에게 한 말이다.

아이들은 종례가 늦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했고 나는 종례가 늦어지는 책임을 내가 떠안게 만든 담임선생님 때문에 짜증이 났다.

여고에는 대대로 전해지는 괴담이 있다. 우리 학교에는 짝사랑했던 총각 선생님 때문에 연못에 뛰어들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지곤 했다.

그래서 연못가에 자기보다 예쁘게 생긴 아이들이 앉아 있으면 연못으로 끌어내린다는 이야기이다. 편하게 앉아 있어도 될 것 같은 아이들도 서로 걱정하며 연못가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하필 왜 그곳으로 부르셨는지 모르겠다.


나는 담임선생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너무 싫어서 빨리 3학년이 되고 싶었었다.

나는 원래 수학 시간을 좋아했다. 수학은 답이 명확해서 제일 좋아했고 상대적으로 윤리 시간을 제일 싫어했다.  가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거슬러야 정답이 되는 것도 있었다.


1학년 때는 수학 시간이 너무 좋았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게 아쉬워 수시로 시간을 체크해 볼 정도였다.

열정적으로 가르쳐 주시는 수학 선생님을 좋아했고 수학 공부를 진짜 열심히 했다.

덕분에 전교에서 혼자만 100점을 맞아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니 더욱 공부할 맛이 났다.

2학년이 되어 문과를 선택하게 된 나는 이과 전담인 수학선생님의 지도를 받을 수 없었다.

사립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2월에 새로운 반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담임 밑에 적응 시간을 갖는다.

당시에는 학교 선생님에게도 과외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되기도 했지만 우리 집 형편상 과외는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업에 들어오는 모든 선생님을 내 과외 선생님으로 마음속으로 임명했다.

모든 선생님을 좋아했고 수업 시간에 잘 듣는 것만으로도 다행히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문제는 2학년 때 수학선생님은 내가 싫어했던 담임이었다는 데 있었다. 수업 시간마다 수학과 관계없는 모유 수유 때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둥 입으로 전하고 싶지 않은 음담패설로 거의 시간을 때우다시피 했다. 2학년 수학시간에도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유는 1학년 때와는 정반대로 언제면 수업이 끝나나였다.

그렇게 5월까지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 말을 듣지 않고부터 수업을 점점 따라갈 수 없었다.  가끔 나와서 문제를 풀게 시킬 때마다 “오늘만 무사히... 제발요”를 속으로 기도했었다. 그리고 재수가 없어서 지목당하면 급하게 내 짝의 참고서를 들고나가 뒷면 풀이를 그대로 베껴써놓고 들어왔다. 그렇게 엉망으로 수업을 했더니 첫 번째 중간고사 시험지를 들고 거의 울뻔했다. 그동안은 수학만큼은 자신이 있었는데 거의 찍기로 문제를 풀어야 할 정도였다. 나는 자존심도 상했고 무엇보다 내 점수를 보고 나를 더 우습게 보며 빈정거릴 담임의 모습을 상상하니 미칠 것 같았다. 잔뜩 풀이 죽어 집으로 가자마자 펑펑 울면서 엄마에게 처음으로 무릎을 꿇고 매달렸다. “엄마 나 수학 과외 좀 시켜주시면 안 돼요?”

"문둥이 가시나야 뭐라카노? 학교에서 수업 시간엔 뭐 하고 과외가 우리 형편에 가당키나 하나?”

“혹시 우리 방을 빌려주고 공짜로 한다카믄 몰라도....”


나는 밤새 엄마의 마지막 말에 희망의 끈을 잡고 공짜로 과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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