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공부 May 20. 2023

 선생님 덕분입니다

-죄송해요 선생님 (4)-

1학년 때 나는 우리 반 부반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이후 글에서는 K라고 칭하려 한다)

 하루는 내가 아이들과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반장 네가 지금 빗자루 들고 청소할게 아니라 아이들 감독을 해야지 너 반장 처음 해 보는구나?”

매번 이런 식으로 나의 감정을 자극시켰다. 그러면서도 밥 먹을 때도, 소풍 가서 조 편성 할 때도, 꼭 나를 따라다니는 그 아이가 너무 싫었다. 별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2월 반편성이 되기 전에 갑자기 우리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너 2학년 몇 반인지 내가 알려줄까? 나랑 또 같은 반이야”

(나는 같은 반 하기 싫은 애 한 명만 써내라면 그 아이 이름을 썼을 거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응 2학년 담임될 선생님이 우리 엄마랑 잘 아는 사람이라서 알려줬어”

나는 갑자기 2학년 학교생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2학년반으로 옮겨가게 된 첫날이었다.

그 아이 말대로 나와 같은 반이었고 자기 엄마랑 잘 아는 사람이라던 담임과 활짝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담임은 2학년 반으로 옮겨간 첫날 바로 반장을 선출하겠다면서 아이들 의사를 묻지도 않고  바로 K를 임명해 버렸다. 그리고 부반장으로 어떤 애를 지목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향해 “너는 총무부장 할래?”라고 묻길래

감정을 실어 “아니요”라고 해버렸다. 나는 솔직히 자존심이 좀 상했다.

일주일이 지나 다른 반도 임원구성이 끝나 임명장을 받을 때 더 기분이 나빴다. 1학년때 반장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반장으로 임명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나는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배제된 것처럼 생각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투표가 아니라 선생님의 일방적인 통보로 배제되었다는 것과 자기 엄마랑 잘 아는 선생님이라는 사실로 선생님의 모든 행동이 부정적으로만 보였다.

그래서 계속 삐뚤어진 마음으로 담임을 대했고 수업조차 듣기 싫었다.

그런데 결국은 내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제일 속상했다. 그래서 과외수업을 받으면서라도 원래의 나로 회복되고 싶었었다.


#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2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새로 힘을 냈다. 우리 담임을 뺀 다른 모든 교과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았고 학교생활이 다시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또 한 학기를 망치면서 내린 결론은 나만 손해 볼 짓을 하지 말자였다. 그래서 쓸데없는 소리를 할 때를 제외하곤 담임 시간에도 수업 내용을 잘 듣기로 했다.


내가 갖고 있는 문제집은 수학 정석 하나였다. 당시 학력고사에는 여러 학교 교과서 문제를 응용하여 문제가 출제되었고 대학별 본고사라고 하여 서술형(문제풀이) 문제가 출제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그 학교의 수학 문제를 구해 꼭 풀어보곤 했다.

그런데 어떤 학교 2학기 중간고사 문제가 3줄밖에 안 되는 간단한 문제인데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나왔다. 답답하고 화가 났지만 내 힘으로 꼭 풀어내야겠다는 의지로 거의 밤을 새웠다. 결국 풀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내가 부르는 대로 문제를 받아 적곤 칠판에 머리를 댄 채 혼자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보려 애썼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떠들고 그렇게 수업이 끝이 났다. 결국 선생님도 나처럼 문제를 풀지 못하고 종소리에 맞춰 나가면서 한마디 하셨다.

“나중에 교무실로 와 그때 가르쳐 줄게”

나는 쉬는 시간마다 몇 번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담임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마다 시험지를 들고 교무실로 찾아온 나를 보고 1학년 때 수학선생님이 들어오라고 손짓하셨다.

“선생님! 우리 담임선생님 어디 가셨어요? 나중에 교무실로 오면 알려주신다 하셨는데 계속 안 계시네요?”

“뭔데 가져와봐”

나는 꼬깃해진 시험지를 내밀었다. 문제를 보자마자 어이없어하며

“야 인마 이건 문제 자체가 말이 안 되네 이거 어느 학교야?”

“아 그래요? 어쩐지 안 풀려서 저 이것 때문에 거의 밤샜잖아요”

선생님은 이게 문제가 되려면 이런 조건이 주어져야 한다며 시험지에 조건을 써주셨다. 아마 선생님이 출제하면서 그 조건을 빼먹은 것 같다고 했다.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정말 주일날 만난  친구는 그 문제가 잘못 출제되어 전원 맞는 것으로 처리해 줬다고 신나 했다)

나는 첫째로 내가 못 푼 게 아니라서 기뻤다. 그리고 둘째는 똑같은 수학선생님인데 문제를 보자마자 미스라고 하시는데 왜 우리 담임은 모를까였다. 그리고 교실로 오면서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그래 좋아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이제부터 시간마다 선생님한테 어려운 문제를 질문해야지 그럼 아까처럼 칠판 앞에서 쩔쩔매는 선생님을 보며 그간 내 마음속에 속상했던 앙금이 다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 후로 나는 경시대회문제며 일본 동경대학 입학문제 중에서 문과에 해당하는 문제 등을 풀어보는 재미로 살았다. 그리고 수학 시간만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질문하려고 손을 드는 순간 “개인적인 질문은 이따 교무실로 와서 개인적으로 해”

“아니에요 선생님 애들도 다 같이 알고 싶데요 그렇지 애들아!”

아이들은 일제히 “네”라고 힘차게 외쳐주었다. 그날 선생님은 나의 질문을 칠판에 써두기만 한 채 흑빛이 되어 교실을 나가는 수모를 당했다.


# 연못가로 부른 이유


그날 이후 담임선생님이 계속 내 눈치를 살핀다는 게 느껴졌다. 수업시간에 전처럼 음담패설을 늘어놓지도 않고 성의 있는 수업을 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종례도 잘 안 들어오고 반장을 통해 가라는 전달을 하기 일쑤였다. 그러더니 그날은 굳이 왜 나를 연못가로 오라는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교무수첩과 펜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너 나한테 뭐 섭섭한 거 있니?”

“아니요” 나는 쌀쌀맞게 대답했다.(나는 반장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하기 싫었다)

“그럼 오늘은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해도 되겠니?”

“......”

“사실 나는 서울대를 나오긴 했지만 상대를 나와서 수학과와는 좀 거리가 있단다.

(현재는 경제, 경영학과로 바뀌었다)

그래서 문과반만 맡곤 했지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수학에는 좀 자신이 없어 "

(선생님의 이런 고백이 너무 의외였다)

“지난 몇 달간 네가 의도적으로 어려운 문제만 찾아서 질문한다고 느꼈을 때 솔직히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

나는 갑자기 선생님의 솔직한 고백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그동안 나의 교직생활도 되돌아보고 수업준비도 더 열심히 하려고 애쓰고 말이야

네 덕에 많이 노력하긴 하는데 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니?”

 결론은 수업시간에 교과서 외에서는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제자에게 쉽게 꺼내놓기 어려운 고백까지 해야 하는 선생님의 입장이 처음으로 안쓰럽게 여겨졌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아침마다 학교오기가 싫다고 생각을 했는지를 생각하니 내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절대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과외 선생님이 생긴 듯했다.

선생님은 내가 고개를 끄덕여야 그다음 문제풀이를 하고 나를 의식하고 수업을 한다는 게 느껴지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3학년으로 올라가게 된 날 아이들은 서로 같은 반이 될지 궁금해했고 담임선생님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렸다.  

“만약  지금 담임이 3학년 담임이 된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라며 친구들이 짓궂게 물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럼 바로 전학 가야지”라고 답했다.

전교생이 새로운 반 팻말 앞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맞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교무실 회의를 마치고 선생님들이 각자 자기 반을 찾아 계단을 내려왔다.

설마설마.... 나는 두 손을 모아 기도드렸다.

잠시 후에 내 어깨를 찍어 누르는 힘을 느껴 올려다보니 오 마이갓!!! 그분이 오셨다.

이상하게 저 사람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했을 때 꼭 이런 일이.....


덧붙이며) 얼마 전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번주 스승의 날을 맞아 선생님에 대한 글을 쓰려다 보니 길어졌네요   

      지내고 보니 참 별일도 아니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고 속상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 너무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수학공부에 미친 듯이 매달릴 수 있었어요

     졸업 후에도 저를 학교로 부르셔서 근사한 저녁도 사주시며 평생 저를 잊을 수 없을 거라던 말씀 기억이 나네요.  감히 고백하자면 선생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용기 있는 분이세요.

저도 초임 발령지에서 전공교과가 아닌 수학 과목을 상치교과로 맡게 되었을 때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더 일찍 찾아뵙고 소식 전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공부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