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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Jul 20. 2023

치매 발령이 떨어졌어요

-귓불에 주름이 생겼데요-

“여보 귀 좀 이쪽으로 대봐”

갑자기 남편이 내 귓불을 만져보다 사진을 찍어댔다.

“귓불에 이렇게 대각선으로 선명하게 줄이 생기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데”


나는 그런 내용의 유튜브 방송을 유연히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내 귓불이 그렇게 생겼다는 건 오늘 처음 안 사실이다.


“그러니까 당장 글 쓰고 이런 거  하지 말고 운동이나 다녀”

“아 그리고 아이팟 좀 귀에 꽂지 마 뇌에 그렇게 안 좋데”

(참나 자기에 대한 배려로 시끄러울까 봐 꽂고 듣는 건데...)

“아니 글쓰기, 책 읽기가 얼마나 치매예방에 좋은데 무슨 소리야?”

나는 뭐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을 원하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또 봐!  요즘 화도 잘 내고 목소리가 커져서 걱정이었는데 치매 전조증상이라잖아”

난 어이가 없었다.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자기는 늘 자기 고집만 부리고 내가 뭐라고 하면 순종적으로 말한 적이 없잖아”

“긍정할 수 있는 말을 해야 말이지”

나는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버렸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몸에 가시가 있다고 했다. 늘 아프고 고난의 연속이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게 만드셨다고 한다.  내 몸의 가시는 어쩌면 남편이었는지 모르겠다.  결혼전에는 교회를 같이 다녀서 그점이 맘에 들었고 교회에서 결혼식도 했는데....하나님을 믿느니 차라리 내 주먹을 믿으라는  남편!

방학도 없이 일하는 게 뭐가 좋냐며 남편의 반대로 장학사 시험조차 준비하지 못했다. 학교 다니는 내내 집에서 살림이나 잘하라고  그만 두기를 종용하기까지 했었다. 그 일로 여러 번 다투다 한 번은 끝을 볼 요량으로 심하게 싸운 적이 있었다.

“아니 당신이 나 교원 자격증 따는데 보태준 거 있어? 도대체 왜 그만 두라마라야?”

남편은 가사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는데만  집중하기 위해 이모님의 도움을 받았었다. 나는 후배 교사들에게도 가사로 짜증 내지 말고 외주를 줄 건 주라고 조언한다. 다만 외주를 줘서는 안 되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교육에만 집중하라고 말이다. 중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 “엄마 이제 우리가 다 컸으니까 설거지도 해놓고 청소도 해놓을게요 이제 이모님은 그만 오셔도 될 것 같아요”라고 먼저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비록 이모님처럼 완벽하진 않겠지만 아이들에게 책임감도 주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가사를 도움으로써 가정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아이들은 늘 엄마를 잘 돕고 이해해 준다.


갑자기 지난 세월이 보태져 남편에게 더 화가 났다.


요 며칠 치매 전조증상을 빌미로 자기랑 의견이 달라 뭐라고 하면

“맞네 우리 마누라 자꾸 고집부리고 화를 자주 내는 게.... 큰일이네”라고 하는 남편이 너무 얄밉다.

나는 이제부터 더 열심히 글쓰기, 책 읽기, 운동을 해서 치매를 예방하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났다. 같이 가자는 남편의 말을 뒤로하고 씩씩거리고 나가 캘리포니아산 호두를 1+1으로 사고 카레가루를 3 봉지 샀다. 치매에 좋다는 걸  핑계로 당분간 카레밥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남편이 TV 보는 거실 옆에 앉아 아이팟도 꽂지 않고 목사님 설교말씀도 크게 틀고 이어서 K-MOOC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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