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나의 교단 이야기(3)-
학교에는 이런저런 행사가 많다. 특히 관내 수업발표 때는 관내에 있는 모든 학교 선생님뿐 아니라 교장, 장학사등 참석인원이 많아진다.
학교 근처에 마땅한 식당도 없어서 학교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하라는 교감선생님의 지시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학교일을 돕는 것도 교사의 일이라 아이들과 함께 육개장을 만들어서 대접하기로 했다. 퇴근 후 며칠 동안 엄마에게 육개장 만드는 방법을 전수받고 실습해 보고 그 양의 몇 배로 하면 될지 꼼꼼하게 기록하여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연구수업을 하는 선생님 못지않게 점심시간을 지켜 밥상을 차려내야 하는 나는 며칠 동안 거의 잠을 편히 잘 수 없었다. 일주일 내내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대로 아이들과 함께 먹음직한 육개장을 만들어 냈다. 다행히 맛이 있었는지 칭찬이 이어졌다. 함께 고생한 아이들도 너무 기뻐했고 맛있는 간식도 챙겨주었다. 그 후로 며칠 동안 통근길에 쓰러져 잠이 들어 정류장에 못 내릴 정도로 긴장이 풀리니 온몸이 아팠다. 하지만 덕분에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며 교장 교감선생님이 칭찬해 주셔서 힘은 들었지만 보람은 있었다.
며칠 후 스승의 날 행사가 있었다.
운동장에 모여 조촐하게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꽃을 달아주고 노래를 불러주는 자리였다.
아침 일찍 학교운영위원장의 호출로 교장실로 불려 갔다. 스승의 날 행사에 자기가 냉면을 보낼 테니 삶아서 냉면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순간 참았던 설움이 폭발했다.
“이건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 운영위원장도 교장 선생님도 당황하셨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점심을 대접한다고 미리 연락을 받은 터라 나는 가사실에 들어가 혼자 울었다. 잠시 후 가사실에 배달된 재료를 보고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기왕 하게 된 거... 사랑의 수고를 한다 생각하고 참고 잘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달랑 계란과 면만 잔뜩 있는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냉면을 패대기쳐버렸다.
교감 선생님이 쌩하고 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가사실로 따라 들어오려다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 미안해하셨다. “그냥 면이나 익혀서 요기나 한다 생각해... 너무 화내지 말고”
“화 안 나게 생겼어요? 아니 육수는 뭘로, 어떻게 하냐고요”
"가정과는 스승도 아닌가요? 뭔 스승의 날 행사한다고 저는 맨날 이런 일만 해야 해요?"
"그러게..... 내가 말렸는데도 운영위원장이 지난번에 보니까 너무 잘하더라며 큰소리치지 뭐야?"
학교 기사님이 자기 집 텃밭에서 오이를 따서 가져오셨지만 맹물에 다시다를 잔뜩 풀어 만든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냉면이 만들어졌다.
그 후로 나는 모든 학교행사에서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지 않게 되었다.
# 뷔페 상차림과 함께 파티를
당시 학교는 푸세식 화장실에서 수세식으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조종례시간마다 화장실 쓰는 법을 가르치라는 공문이 수시로 내려왔다.
아이들이 변기를 올라타고 볼일을 보느라 끙끙대기도 하고 변기에 신발자국이 남기도 할 정도였다.
나의 평소 생각은 학교는 사회보다 한 발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만약에 교장이라면 사회에서 통돌이 세탁기를 쓴다면 학교는 드럼식을 써보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께 갖고 있는 예산을 그냥 쓰지 말고 모아두었다가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기구를 사서 아이들이 사용해보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행정실에서는 학교에 필수로 비치해야 하는 품목을 우선 갖춰야 해서 나의 의견대로 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아이들에게 체험하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내 힘으로 해볼 만한 건 뷔페상 차리기였다. 아이들에게 아무리 책을 들고 설명해도 한번 상차림을 해보고 먹어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교과서대로 초대장을 만들고 방과 후 운동장 한편에 뷔페상을 차리기로 했다.
부모님들께도 늦은 귀가를 미리 알리고 끝나는 시간에 학교로 오시면 맛있는 간식을 드리겠다고 전했다.
아이들과 함께 파티 음식을 준비해서 뷔페상을 근사하게 차렸다.
그리고 남자친구도 초대하라고 했다. (이성 간의 교제까지 연계한 수업이었다)
대부분 옆반 남자아이들이었다.
나는 초대받은 사람은 빈손으로 오면 안 되고 부담 없는 간단한 선물을 꼭 가져오고 초대에 거절할 의사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는 게 예의라고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은 남자친구 초대를 하라니까 쑥스러워하면서도 너무 재미있게 음식도 만들었다.
집에서도 농사일로 바쁜 엄마대신 일을 많이 해본 아이들이라 잘 설명해 주면 제번 근사하게 잘 만들어냈다.
6조로 나눠 각조에서 한 가지씩 맡기로 했다.
카나페, 샌드위치, 고구마맛탕, 김밥, 감자 샐러드, 떡볶이등 조별 레시피를 만들어주었더니 제법 그럴듯한 음식들이 잘 만들어졌다. 여기에 내가 만든 화채까지 합하니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다.
초대받은 남자아이들은 길가에 핀 꽃을 묶어 연습장종이에 둘둘 말은 투박하지만 감성적인 선물도 있었고
자기가 돈 주고 산 학용품등 아이들 수준에 맞는 선물을 가지고 여자친구에게 내미는 손길이 너무 예뻤다.
아이들은 자신이 먹을 만큼 음식을 덜어서 먹는 것도, 접시를 들고 이동하면서 친구들과 자연스레 이야기하는 분위기에 처음에는 어색해하더니 나중에는 너무 재미있어했다.
결국 우리 반 아이들 수업에, 옆반 아이들 초대니 1학년 전교생의 파티였다.
끝까지 남아서 함께 해준 교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늦은 밤 물먹은 솜뭉치같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막차에 올랐지만 이런 경험을 처음으로 해본다며 신기해하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