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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Sep 04. 2023

60대 부부의 여행은요...

-사진은 못찍어도 마음속 저장은 확실하게-

“엄마! 온통 아빠 엽사만 잔뜩 찍었네 ㅎㅎㅎ 이게 뭐야?

그리고 음식 사진도 실물보다 더 못 찍어서 이상하잖아”

아이들이 궁금해 갈 것 같아 이동하면서 이렇게 맛있는 거 먹고 잘 논다며 가족방에 사진을 올렸다.

딸은 즉각 반응하며 인스타에 올리기는 어려운 사진들만 가득하다는 평이다.

아들은 엄마 아빠가 활짝 웃으며 다니는 모습이 좋다고 그래도 칭찬을 해준다.


매일 시원한 곳에서 잘 쉬고 때 맞춰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면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평소 잘 놀아보지 못한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4일이 지나니 평생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때마다  뭘 먹지?라는 고민은 오히려 더 커졌다.

 과연 맛있어서 먹고 기분이 좋을지 아니면 돈이 아까워 짜증이 나지는 않을지.....


또 우리 보미가 (애완견) 밥도 안 먹고 울면서 집안을 뺑뺑이를 계속 도는 통에 딸은  일도 못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 더 마음이 쓰였다.

엄마 얼굴 보고 진정하라고 보여준 영상통화에서 아기가 곧 죽을 것 같이 힘이 없고 눈물이 그렁그렁 한걸 보니 더 안타까웠다.

밥은 물론이고 그렇게 좋아해서 자다가도 일어나서 달라던 스콘조차 안 먹는다니 너무 걱정스러웠다.

요즘들어 잠시 경락마사지를 받으러 혼자 나가는 한시간도 매일

 "엄마 보미 울려고 기모으고 있어" 이런 문자를 받고 설마 했는데 이 정도일줄은 상상도 못했다.

잠시 엄마 찾다가 없으면 언니와 잘 있으려니 생각한게 큰 오해였다.

 너무 울어서 목도 다쉬고 매일 현관문만 바라보고 밤에 졸면서도 잠을 안자려고 눈을 뜨고 누웠있단다.

남편도 걱정이 되는지 내 눈치를 살피며 그냥 돌아가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어온다.

내 계획은 이게 아니었는데....

(산다는 게 아무리 계획을 잘 세워도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낚시도 많이 해보고 내 주위에서 나만 고기도 잡아봐서 ....나는 만족하는데 당신 카페나 팥빙수는 집에 가면 더 좋은데 많지 않아?”

딸은 이번주는 다 비었으니 괜찮다고 여태 버틴 거 좀만 더 버티면 된다고 더 놀다 오라고는 했다.

엄마 사고 싶은 것도 다 사고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빙수도 먹고 오라 했지만 우리는 결국 그냥 하루 전에 짐을 쌌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 여행도 아니고.... 애가 죽게 생겼는데 그냥 갑시다”

딸을 놀라게 해 주려고 우린 거제도에서 잘 노는 것처럼 문자를 보내고 금요일에 서울 가는 차가 무지 막힌다며 새벽에 출발했다.


공황을 극복하고 왕복 800Km를 잘 달려준 남편도 대견하고 20년 넘는 애마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남편이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숙제는 있다. 과민성 대장 증상으로 화장실과 붙어있어야 안심이 되는 탓에 숙소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점은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먹는 즐거움보다 배 아픈 고통이 훨씬 커서 맛집을 다 찾아다니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

남편은 이번 여행을 통해 자신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해심 많은 좋은 아내를 잘 만난것 같다는 뜬금없는 고백을 해왔다.


건어물만 조금 사들고 아침 일찍 들어선 우리를 보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두 딸들을 보니

하룻밤 숙소비를 버렸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조막손이유? 카드에 현금 빵빵하게 넣었는데 겨우 이거밖에 안 쓰고

건어물도 좀 사 올 거면 많이 사 오지 저게 뭐야? “라고 구박을 하면서도 반가움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너도 우리 없으니까 힘들다는 거 알았지? 보미 그냥 크는 줄 아니? 엄마아빠가 잘 돌보니까 네가 마음 편하게 일하는 거지”

나는 갑자기 딸과 남편한테 더 당당해졌고 목청이 커졌다.


(사진과 동영상은 보면 엄빠 걱정할까봐 안보여줬는데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4박5일간의 고통이 전해져서 다시는 애완견두고 어디 못갈것 같아요 ㅠㅠ)

졸려도 눈을 감지 않는 아이 ㅠㅠ

새벽 6시까지 현관문 바라보며 울어서 목이 쉬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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