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의례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그 계절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구분하여 정리하는 일이다.
사실 말이 쉽지 정리가 쉬운 일은 아니다.
옷마다 다 사연이 있고 그때의 기분이나 입고 다녔던 때의 모습이 떠올라 잘 안 입는 옷이라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살 빼서 입어야지.... 유행이 다시 돌아올 거야 등
그래도 상대적으로 빠르게 정리가 되는 옷은 대부분 홈쇼핑이나 인터넷으로 감정 없이 샀던 옷이다.
딸은 입으려고 찾으면 없다고 자기 옷이 정리의 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해서 가급적 손을 대지 않는다. 남편도 20년 전 옷도 나중에 다 입을 수 있다며 못 버리게 한다. 어쩜 둘이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똑같은지....
결국 만만 한 건 내 옷이다.
어제도 그동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지 않고 지나간 옷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헌 옷 00을 불렀다. 아파트 옷수거함에 그때그때 넣어도 되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모아둔 것이 큰 박스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20kg가 안 넘으면 기름값도 안 나온다며 확실히 옷이 많은지 몇 번을 체크한다. 우리 집 큰 박스에 가득하고 넘치니 당연히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게다가 이불까지 무료수거라고 한다. 거위털 이불인데 여러 번 빨았던 이불도 함께 내놓았다.
간당간당 신발까지 합해서야 간신히 20Kg으로 맞췄다. 다음에는 더 모아놓고 연락하라고 약간 짜증스러워한다. 8000원을 받았다. 아이스크림 값이라도 나왔으니 다행이다. 아니 돈을 내고 버려야 하는 이불까지 생각하면 만원쯤 받은 셈이다.
헌 옷을 정리하고 시원한 마음에 냉커피까지 마시니 기분이 좋다.
갑자기 예전에 우리 반 아이들과 고물을 모아 피자를 사줬던 생각에 웃음이 났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물도 돈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활부장이 하는 일에 매달 한 번씩 집에서 엄마가 버리는 고물을 가져와서 모았다 파는 일을 더 맡겨주었다. 학교에서는 1년에 연중행사로 녹색장터를 열기도 한다.
집에서 안 입거나 사용연령이 지나 쓸모없게 된 장난감 게임기등으로 모아 반별로 장터를 정해주고 팔아서 남은 이익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내는 것이다.
그 행사의 연장으로 우리 반의 특별 녹색장터는 한 달에 한 번씩 집에서 고물로 버리려는 것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책이나 헌 옷, 안 쓰는 프라이팬등이다.
잘못 오해하면 집에 있는 재화를 선생님이 갖는다는 오해를 할 수 있어서 나는 아이들이 가져와 판 고물값이 2만 원이면 나는 돈으로 2만 원을 내는 형식이다.
그러면 4만 원으로 아이들과 의논해서 간식 먹는 날을 정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많이 가져오면 내가 그만큼 더 돈을 많이 내주는 형식이다.
그 돈으로 생일 파티도 하고 학교에서 우유를 얼려 우유빙수도 만들어먹곤 했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것이 늘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우리 반 아이들도 나처럼 그런 기억이 조금이라도 생각났으면 좋겠다. 오늘 헌옷을 정리하면서
이제 20대가 된 그때의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