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를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초보운전’이라는 푯말이라도 붙어있으면 이해심을 가지고 크락션에서 손을 살며시 떼곤 한다.
우리 아이들도, 학생들도 저마다 ‘진로’라는 표지판을 찾아 헤매며 힘겹게 인생길을 가고 있다.
부모로서 교사로서 그들이 초보운전자임을 알면서도 쉴 새 없이 뒤에서 잔소리라는 클랙슨을 누르고 있지는 않았나 반성해본다.
나는 거북이같이 느린 아들과 토끼와 같이 약삭빠른 딸을 키워낸 엄마이다.
두 아이를 키워보니 내가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제각기 달랐다.
당연히 아이마다 발전해 가는 속도도 달랐다.
첫 아이 때는 우리 아이가 정상적인 속도로 잘 성장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또래 아이들과 비교를 많이 했었다. 우리 아이는 걷지도 못하는데 벌써 능숙하게 걸어서 물건을 가져오는 또래 아이들을 보며 억지로 아이를 일으켜 세운 적도 있었고, 글씨를 빨리 못 깨우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집안 구석구석에 낱말 카드를 크게 붙여 놓기도 했었다. 반면 딸은 자기 돌상 위에 놓인 떡을 들고 다닐 정도로 빨리 걷기 시작했고, 또래보다 말문이 빨리 트여서 말이 어눌한 오빠를 자꾸 놀려대서 둘이 싸우기 일쑤였다.
내 경험상 아들은 엄마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훨씬 느리고 엉뚱해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더 화나고 실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 결론은 엄마의 속도를 기준으로 하지 말고,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오래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것도 많다. 말문이 트이면 “이건 뭐야? 저건 뭐야 ?” 하고 종일 사물의 이름을 많이 물어본다.
나에겐 너무 당연해서 “아니 그것도 몰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모든 게 다 신기하고 궁금하다. 아이가 조금 성장하면 “엄마 왜 그래?”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그럴 때 엄마는 바로 대답해 주지 말고 “너는 왜 그런 것 같아?”라고 질문을 되돌려 주는 게 좋다.
아이의 답이 너무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화내지 말고 아이의 대답에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 주는 게 좋다.
아들이 어릴 적에 하늘을 쳐다보며 “엄마! 그런데 구름은 왜 둥둥 떠가죠?”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요즘 같은 때였다면 스마트 폰을 꺼내 바로 답을 알려 줄 수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백과사전을 찾아야 하는 시절이었다. “집에 가서 알려 줄게!”라고 말한 뒤에, 아들과 함께 백과사전과 여러 책을 보며 답을 찾았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놀랄만한 교육적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날 이후 아들은 궁금한 게 생기면 혼자 이책 저책을 펼쳐서 답을 찾기 시작했고, 책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을 나에게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아들은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느렸지만 다소 엉뚱한 생각을 표현하여 가족을 웃게도 울게도 했다. 하루는 아빠가 뜨거운 찌개 국물을 떠먹으면서 “아~ 얼큰하고 좋네.” 하니까 저녁에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 꼭 지기를 틀며 “엄마, 얼큰하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먹는 걸 너무 좋아해서 자기 나이보다 4살 정도 위로 보이는 아들은 밥도 한자리에서 두 공기씩 먹어서 평생 비만으로 살까 걱정되었다. “아들! 밥 많이 먹으면 나쁜 사람 되는 거야!”라고 밥을 적게 먹이려고 거짓말을 했더니 얼마나 밥을 많이 먹고싶었는지 유치원에 가서 장래 희망을 물어보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쁜 사람이요!”라고 대답하여 선생님을 놀라게 한적도 있었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해석방법으로 세상을 배워 나간다.
엉뚱한 대답을 해도, 숙제를 혼자 힘으로 잘하지 못해도, 소지품도 늘 잃어버려도, 그 실수 들을 용서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우리 부모의 할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