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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Jun 26. 2024

그 많은 얼음은 누가 다 먹었나?

-어른들의 눈에만 보여요-

“아이씨!! 제발 얼음을 꺼내 먹었으면 물 좀 채워 넣어라 제발!”

언제나 똑 소리 나게 자기 할 일을 잘하는 후배 선생님이 있었다.

수많은 장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잔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모두 합당한 말이고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녀 특유의 사투리 억양에 신경질 적인 말투가 반감을 일으키곤 했다.

그래도 나에게 성격은 안 좋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 VS 성격은 좋은데 다소 무능력한 사람 중 누구랑 일을 하겠냐고 하면 나는 전자가 좋다.

나와 평생 같이 살 것도 아니고 업무적으로 부딪히는데 성격이 아무리 좋아도 무능력한 사람은 나에게 좀 버겁다. 물론 사람이 그렇게 구분되어지지는  않는다. 게중에는 일도 못하면서 성격까지 안좋아서 함께 학년을 맡기 꺼려지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일하는 게 즐거웠다. 물론 한 가지라도 그냥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 없기에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럽긴 하다.

다 같이 밥을 먹고 정리를 할 때도 쓰레기 분리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어김없이 호출해대고 과일 먹고 쓰레기통에 대충 버려두면 초파리 생긴다고 기어코 범인(?)을 잡아내고야 만다.

요즘 같이 더운 여름철에는 그래서 교무실이 더 시끄러웠다.


한 학년 교무실에 나를 포함해 17반의 담임들이 함께 생활할 때였다.

냉장고 한 대에 18명이 먹을 얼음은 늘 부족했다.

나는 냉동실 얼음통을 네개를 더 사다두었다.

그럼에도 수업을 마치고 시원한 냉커피 한잔을 먹고 싶어 냉동실을 열어보면 빈 얼음통이 꽂혀 있을 때가 있다.

누가 얼음만 쏙 빼먹고 물을 안 채워두고 갔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 때 살짝 화가 나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딸이 커피 먹는다는 소리를 뒤로하고 여행짐을 싸느라 바빴다.

아들딸이 아빠의 생일을 맞아 고성으로 2박 3일 여행을 보내주기로 한 것이다.

지난번 거제도에 갔을 때처럼 우리 보미가 엄마 찾고 밤새 울고 스트레스받아서 병이 날까 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들이 집에 와서 재택근무를 하면서 보미와 함께 놀아주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들이 3일간 머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결국 갈비찜도 하고 장조림에 멸치볶음도 새로 해놓고 불고기도 재워뒀다.

안 그래도 매일 사 먹는 아들이 집에 와서도 배달음식을 먹는 게 싫어서이다.


남편은 여행 떠나기 전에 힘들어서 쓰러지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암튼 그래서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대충 할 일을 하고 여유가 생겨 냉커피 한잔 먹으려고  냉동실 문을 열었다.

어제부터 미처 신경을 쓰지 않았더니 딸이 아침에 냉커피를 타먹고 얼음을 채워두지 않아 얼음통이 거의 비어 있었다.

갑자기 매일 여름마다 얼음 가지고 다투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나이 먹은 선생님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까짓 거 대충 ~ 나이 먹은 사람들이 채우면 되죠 안 그래유?”

이상하게 젊은 사람들 눈에는 그런 게 잘 안 보이나 보다.

우리 딸도 밖에 나가면 얼음만 쏙 빼먹고 돌아서는 얄미운 동료가 될수도 있을것 같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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