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유지하는건 누군가의 봉사와 희생이다-
"뭐라고? 오늘 네가 저녁 담당이잖아 갑자기 그러면 어떡해! 몰라!”
씩씩대며 전화를 끊고도 분이 가시지 않는 동료(동료라기보다 한참 어린 동생 나이) 교사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신랑이야? 에구... 기왕 집에 못 올 거 기분 좋게 해 주지 그랬어”
옆에서 하도 크게 소리 질러서 나도 모르게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이럴 땐 나도 모르게 꼰대가 되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마디 거들게 된다.
“아니 오늘 저녁 식사 담당인데 학년 회식인 걸 깜빡했다며 아무것도 안 해놓고 저보고 혼자 밥 먹으라잖아요”
“ 그러니까.... 자기도 같은 교사인데 얼마든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잖아 그게 뭐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닌 것 같은데 ”
“ 둘이 가사 일을 나눴는데 늘 핑계를 대고 안 해서 안 그래도 화가 났는데 또 저러잖아요”
나는 부부가 가사 일을 반씩 나눠서 하자는 의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운 세대이다.
모든 사람들이 완벽하게 공평한 세상은 없다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가 있어야만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이고 비교적 민주적이고 공평하다는 학교 일도 마찬가지이다.
3월에 업무분장이 발표되고 나면 한 번씩 불만을 터트리며 작은 소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요즘은 교사의 업무를 줄여주기 위해 학교마다 행정 실무사를 배치하여 공문 처리 등 교사의 업무 경감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 학년제 담당교사같이 대외적인 활동을 주관하고 기획하는 일은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내 의지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고교 학점제같이 처음으로 시행되는 일을 주관하는 부서는(교육과정부) 더욱 어렵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서 길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업무가 생기는 것은 참 부담스럽다.
나는 교사 연수에 가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남들이 하기 싫어했던 그 일이 나의 경쟁력이다"
학교에서 학생부장, 학년부장은 3D 직종이라고 불린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모든 시간이 학생부장과 학년부장의 업무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3D에 해당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내 책도 나올 수 있었고 학부모 연수 강연자로 설 수 있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부 중 누군가는 더 희생하고 더 봉사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가정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동료 중에 운명을 점쳐주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선생님이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가늠하고 살고 있다.
또 항상 어려운 일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결국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모두 필요한 일이라 믿고 있기에 특별히 어떤 일이 생길까?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분은 내 미래까지도 너무 궁금해하셨다. 왜 그렇게 궁금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웃기는 일이지만) 나의 출생 연월일 생시를 집요하게 물어봐서 재미 삼아 알려주었다.
점술가를 찾아보고 온 다음날 나에게 참으로 어렵게 말을 꺼냈다.
“ 있지.... 자기는... 남편이 자기 덕으로 산데 ”
“아 그래요? 그럼 저에게 더 많은 능력을 주시려나 보네요 ”
나는 굳이 봉사나 희생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사랑은 결국 상대적으로 능력이 더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