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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공부 Oct 09. 2022

20년 만의 가족여행

-양양 남애항-

“아빠! 콜밴 타고 가면 운전 신경 안 써도 되니까 일단 그렇게 한번 가보는 게 어때?”

남편은 사실 공황장애 환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공황이 오면 고장 난 스위치라도 달린 듯 모든 기능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자신의 병을 극복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집이 편하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거의 포기하고 살았다. 비행기는 물론 장거리 여행도 못하는 남편 때문에 우리 집에서 가족 여행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엄마 아빠가 둘이 슬슬 여행이나 다니고 즐겁게 살아야 할 때에 꼼짝도 못 하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신박한 방법으로 여행을 제안해왔다.

“아빠! 기사님께 휴게소마다 쉬어가자고 부탁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딸의 제안이 맘에 들었는지 남편은 전과는 달리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양양 남애항에 가서 아들과 낚시도 하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회도 실컷 먹고 오기로 했다.

여행을 앞두고 매일 유튜브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펜션 입소시간이 3~4시 정도라서 그전에 강릉 중앙시장도 들러 소문난 맛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동안 가족여행이 힘들었던 또 하나의 요인인 애완견도 함께 하는 여행이라 애완견을 동반할 수 있는 숙소 중에서 고르려니 주변 식당가에도 애완견 동반이 가능한지를 살펴야 하는 등 여러 가지를 신경 써서 숙소를 정해야만 했다. 오랜만의 여행에 들떠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하며 아빠를 위해 낚시에 필요한 모자며 장갑 등을 준비하는 자상하고 애교 많은 딸 덕분에

남편도 여행 날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8월의 장마나 휴가철을 지나 9월의 여행은 순탄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9월에 11호 태풍 힌남노가 지나고 또다시 14호 태풍 난마돌의 영향으로 바람이 불고 경기도까지는 비교적 좋은 날씨였는데 강원도로 넘어서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다행히 강릉 중앙시장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쳤다.

밴을 세워놓고 장을 보려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져 유튜브를 보며 꼭 먹어보리라 마음먹은 맛집을 다 찾아다니지는 못했다.

그래도 궁금했던 아이스크림 호떡을 찾아 먹어보았는데 소프트 아이스크림 한 덩어리에 호떡을 담아주는 그냥 아는 맛이었다.

소문나서 줄 서서 먹어야 한다는 닭 강정도 그렇고.... 먹는 건 역시 유튜브로 볼 때가 가장 맛있는 것 같았다.


# 숙소

양양 숙소는 거실에서 바로 바다가 보이는 뷰 맛집이었다. 5성급 호텔 숙박비와 맞먹는 비싼 가격에 더하여 애완견의 숙박비로 1일에 3만 원씩을 추가 지불해야 했다.

숙소에 가보기 전에는 우리 애완견 보미도 한 생명체로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그런 점마저 좋게 생각했다.

그런데 2박 3일에 배변패드 2장에 애견 매쉬 해먹 하나 있는 게 전부여서 좀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사진으로만 봤을 때와 달리 침대는 너무 딱딱해서 허리가 아팠고 애완견 동반 숙소인데 침대가 너무 높아 우리를 찾느라 밤새 왔다 갔다 해서 온 가족이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딸이 애완견을 위해 거실에서 함께 잠을 청했지만 소파도 편하게 누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정말 잠자리는 최악이었다.

또 엄마 아빠를 위한 히노키탕이 딸린 방이었지만 3층이라 그런지 샤워기 물이 시원하게 나오지도 않았고 문을 열어보니 뭔가 깔끔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더구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개모차를 들고 3층까지 오르내리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아침마다 어렵지 않게 일출을 감상할수 있고 거실에서 파도치는 바다를 볼수있는 뷰맛집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다시 가고 싶은곳은 아니었다.


# 낚시


우리가 남애항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남애항 방파제에 서서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숙소는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지켜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깝고 방파제가 바다 한가운데까지 이어져서 낚시하기가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들과 함께 저녁 회감을 마련해오겠다며 큰소리를 치고 길을 나섰다.

얼마 후 방에서 바라보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남편과 아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무슨 일인가 걱정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씩씩대며 돌아왔다.

누군가 이 태풍에 낚시하는 사람이 있다며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서있는 뒤편까지 물이 튈 정도였지만 방파제 주변에 높게 쳐진 펜스가 있어서 안전하다 생각했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쫓겨나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남편이 얼마나 머쓱했을까 생각하니 차라리 핑곗거리가 생겨 체면 유지는 된 셈이다.

다음날은 날씨가 맑아 아침부터 아들과 함께 서둘러 낚싯대를 챙겨 나갔지만 결국 우린 주변 횟집에서 맛있는 회를 실컷 사 먹었고 저녁에는 속초까지 가기 싫어서 대개를 배달시켜 먹었다.

# 아들과 딸


“아빠 또 여행 가고 싶어? 이번에 태안으로 한번 가볼까? 강원도보다 거리도 더 가깝고

낚시하기도 좋대. 숙소는 진짜 좋은 곳으로 내가 봐 둔 데가 있어 "

남편은 공황을 극복하고 나름 성공적으로 다녀온 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11월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는 아들은 강원도 아야진 방파제에서의 낚시를 추천하고 숙소를 중요시 여기는 딸은 태안 여여재로 가자고 한다.

아무 데면 어떠랴 언제나 엄마 아빠를 생각해주는 든든한 아들, 딸과 함께하는 여행인데....


하루 종일 조잘조잘 종달새처럼 수다스러운 딸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씩 거드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둘이 서로 의지하며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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