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저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봐 주지 않았어요.”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는 자주 부모와 교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쉽게 짜증을 내기 일쑤고, 방에 틀어박혀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부모의 말에 짜증 섞인 “알았어.” “됐어.”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고, 선생님의 애정 어린 관심에도 “몰라요.”라는 무성의한 답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의 서늘한 태도에 상처를 받아 더 이상 다가갈 생각을 못하고 물러서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먼저 다가서야 한다. 말하기 싫어할 때는 거리를 두고 묻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금 소개할 이야기는, 아이들의 퉁명스러운 태도 이면에 얼마나 여린 마음이 숨어 있는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4월쯤 되면 학교에서는 학교폭력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그때 많은 제보가 들어오는데, 어느 해보다 유독 1학년의 동민이에 대한 제보가 집중되었다. 선생님들은 그 아이가 엄청 무섭고 폭력적이라는 그간의 관찰내용을 나에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동민이와 상담하기로 했다. 상담실로 들어선 아이를 보는 순간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로 다른 학생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에 큰 주먹은 나를 당황케 했다. 하지만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침착하게 차를 타서 건넨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민이의 긴장을 풀고 마음 문을 열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를 늘어놓았지만, 동민이는 방어적인 자세로 수동적인 대답만 했다.
“그런데 왜 때렸어? 선생님은 네가 그 아이를 때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가 궁금해.”
나의 질문에 동민이는 순간 멈칫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선생님, 아무도 저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봐 주지 않았어요. 그냥 너는 나쁜 애라고만 했지.”
순간 나는 무서운 외모의 골칫덩어리의 문제아가 아니라, 마음이 여리고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울부짖음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했다.
동민이의 말을 들어보니, 집에서 아빠한테 늘 맞는다고 했다. 동생은 늘 시험성적이 좋은데, 자신은 공부를 못한다고 아빠가 너무 심하게 차별한다는 것이다. 아빠는 동민에게 “넌 내가 이미 포기했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는 것이다. 아빠에게 너무나 화가 나니까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친구들을 때리고 먹을 것을 빼앗아 먹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부모님과 만나 이야기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동민이의 어머니도 아버지의 폭력에 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 아버지를 만났다. 동민이의 어머니로부터 말을 전해 들은 동민이 아버지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었다. (가정사정을 여기에 다 적어놓을 수 없어 생략합니다.) 나는 동민이가 얼마나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는지 설명해 드리고, 동민이에게 많은 관심과 애정 어린 사랑의 눈으로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동민이는 퇴학 처분을 면하고 학교봉사 7일 처분을 받았다. 맞은 아이 쪽 부모가 이 아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화가 누그러지셔서 선처해 주신 덕분이었다. 학교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동민이는 자신이 괴롭혔던 아이들에게 사과했고 깊이 반성했으며, 이후에는 다른 아이들이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나의 물음에 “그날 이후론 아빠한테 한 번도 안 맞아봤어요.”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모든 학교폭력이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건 아니지만, 이 일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때때로 아이들은 자신이 아프니 제발 돌아봐 달라고 문제를 일으킨다. 그 상처를 봐주고 쓰다듬어 주면 문제행동을 없애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신이 알게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